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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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의 '살아남은 아이들'

[PD저널=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아침 8시, 여의도 국회 앞. 맞은편 빌딩숲 사이로 해가 뜬다. 출근을 서두르는 발길들이 천막 앞을 지난다.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한종선과 최승우는 이 시간이 제일 좋다. 밤새 추위에 떨며 칼잠을 잤는데 아침 햇살은 얼마나 따스한가. 무심한 사람들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두 사람의 농성을 곁눈질해 주지 않는가. 주전자에 물을 끓여 커피 한잔 나누면 하루를 버틸 넉넉한 마음이 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한 지난 11월 7일 농성을 시작하여 만 1달이다. 이번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과거사법을 처리해 진상규명의 물꼬를 틀 때까지 물러서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천막도 튼튼하게 지었다.

하지만 추혜선 정의당 의원 등 극소수 의원만 관심을 표할 뿐 다른 의원들을 마주칠 일은 거의 없다. 그들은 자랑할 일 있으면 정문으로 걸어 나오지만, 대개는 욕 먹을 일만 있으니 뒷문으로 차를 타고 출입한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는 무심하고, 정문 앞 천막의 겨울은 이가 덜덜 떨리도록 춥다.

513명이 억울하게 죽어 암매장된 형제복지원 사건은 필시 이 사회가 팽개쳐 놓은 가장 야만스런 유산일 것이다. 학살자 전두환은 대통령에 올랐지만 정당성이 없으니 아첨하는 무리들의 힘을 빌어 체제를 유지했다.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도 그 체제에 기생한 인물이었다. 연 20억원의 국가보조금을 타 내기 위해 12,000명의 생사람을 사냥하듯 잡아서 사육했다. 영문도 모르고 잡혀 온 사람들은 강제노역에 동원되어 맞아죽거나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와 질병 속에 방치된 채 죽어갔다.

1984년, 한종선과 최승우도 끌려왔다. 각각 9살, 14살이었다. 이 어린 것들을 도대체 왜 잡아왔을까? 국고보조금을 타려면 머릿수를 늘려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종선은 아버지와 누나도 함께 끌려왔고, 그 후유증으로 가정이 풍비박산났다. 이 천인공노할 패륜 범죄에 대해 아무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은 채 오늘까지 왔다. 두 사람은 살아남았지만 사는 게 아니었다. 망가진 세월을 돌이킬 방법은 없었다. 다만, 진실을 내 손으로 밝히고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이 겨울, 국회 앞 천막 농성은 그렇게 시작됐다.

▲ 2016년 4월 27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중 한명인 한종선 씨가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들의 아픔을 함께하는 따뜻한 격려방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리 반갑지 않은 방문객도 있었다. 11월 말, 구청 직원들이 들이닥쳐 농성장을 철거하려 했다.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태극기 할아버지가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한종선은 “사람 죽어 나가는 꼴 보고 싶으면 철거하라”며 저항했고, 구청 직원은 “우리는 법을 집행할 뿐”이라고 맞섰다. 실랑이 끝에 구청 직원은 천막에 철거 계고장을 붙이고 돌아갔다. 더 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아 천만다행이지만, 농성 중인 두 사람은 또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날 한종선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죽고 싶은 생각보다 살고 싶은 열망이 더 큰데, 상황이 자꾸 죽을 수밖에 없게 몰아갑니다. 저 하나 죽는다고 변할 것이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저 자신이 잘 알지만,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농성장까지 불법이라며 빼앗는다면 마지막 남은 쓸데없는 목숨이 왜 필요할까요?"

이어지는 말은 우리 모두를 질책한다. "과거의 공무원들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으면서 지금의 공무원들은 '그건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합니다. 그 논리가 내 안에서 너무나 화를 불러일으킵니다."

기계처럼 움직이는 영혼 없는 공무원은 혹시 나 자신이 아닐까? 우리 PD들이 독재체제에 순응하며 방치했기에 형제복지원 사건 같은 희대의 범죄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우리가 "이미 방송한 아이템"이란 이유로 외면했기 때문에 진상규명이 끝없이 미뤄지고 있는 게 아닐까?

구청 직원은 다음날 농성장을 찾아와 "형제복지원 검색해 보니 얼마나 심각한 사건인지 알게 됐다"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한종선은 분노와 적대감을 내려놓기 위해 구청 직원을 천막 안으로 초대했고, 차분한 대화를 통해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날 밤, 한종선은 페이스북에 썼다. "세상에 힘들고 지치는 순간은 너무나 많지만 좋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 덕분에 오늘 하루도 이렇게 웃을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몸담았던 MBC가 급속히 정상화되고 있다. 최종 결정을 기다리는 세 명의 사장 후보들은 공영방송에 대해 “억울한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방송, 기계적 중립에 머물지 않고 약자의 편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방송”이라는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MBC의 카메라는 마땅히 국회 앞 농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민의의 전당인 국회와 상처 입은 민심이 나란히 놓여 있는 국회 앞 풍경은 이 겨울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사족. PD 본능을 어쩔 수 없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꿈을 꾼다. 제목이 먼저 떠오른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국회 앞의 두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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