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의 마지막 연인', 지독한 쓸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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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여자는 빛나는 눈을 가졌다. 강렬하고 욕망으로 가득한 눈. 자기애와 자신감이 엿보이는 눈. 여자의 이름은 리디아.

남자는 깊은 눈을 가졌다. 약간은 어둡고 부드러운 눈. 소망과 갈망이 엿보이는 눈. 남자의 이름은 아비드.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끌리고 말았다. 그림 때문에 먼 길을 온 남자는 외딴 곳에서 아버지와 살며 호기가 느껴지는 여자에게 강렬한 매력을 느꼈고 그림 때문에 먼 길을 온 남자에게서 여자는 고요함과 부드러움을 느낀다. 그렇게 운명에 이끌리듯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지만 이렇다 할 기약도 그 어떤 마음을 담은 말도 건넬 길 없이 남자는 돌아온 길을 가고 여자는 그 곳에 남는다.

아비드는 평론을 쓸 기회를 얻고 좋은 평가를 받아 일과 삶의 반경을 넓혀가고 그러던 중 리디아 아버지의 부고를 듣는다. 그림이 고가에 팔리는 것도 아니고 홀로 남은 리디아가 걱정이 되던 차에 리디아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된다. 돈이 많고 나이가 좀 있는 상대. 아비드는 그런 리디아의 모습에 당황하지만 그 자신도 돈이 있는 쾌활한 집안의 상대를 만나 결혼한다.

그렇게 운명은 또 한 번 두 사람을 갈라놓는 듯 하지만 공연장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직감적으로 서로에게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거칠 것 없이 자신들의 감정과 욕망에 이끌린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격정적인 사랑은 조금씩 서로의 영혼을 갉아먹고 두 사람의 애틋한 마음은 조금씩 서로를 옭아매어 버린다.

▲ 영화 <스톡홀름의 마지막 연인> 스틸컷.

오랜만에 만나는 멜로드라마다. 꽤나 흥미로운 영화라고나 할까.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단지 운명적인 두 사람의 사랑 운운하는 것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리디아와 아비드의 영혼이 무척이나 닮아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닮은 영혼은 또한 10여 년의 시간 속에서 평행선처럼 달려가며 서로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듯이 살아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리디아에 집중하게 된다. 1900년대 초 ‘여성’이라는 존재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사회적 변화를 맞게 되며 어떻게 여성들의 자아가 발현되고 확장되어 가는지를 가늠하게 되는, 작지만 단단한 열쇠들이 이 영화 곳곳에 장치되어 있다. 그것들은 리디아라는 존재를 통해 보여지며 멜로드라마라는 외피 속에 담겨있는 서브텍스트로서의 역할을 해준다.

북유럽의 콘텐츠는 우리에게 신선하고 색다르게 다가온다. 비교적 우리에게는 덜 알려진 세계. 어딘가 창백하고 고요하며 강인한 이미지가 그려지는 세계. 낮이 짧은 날이 많고 밤의 세계 또한 다른 그 곳. 그 길고 추운 밤 덕분에 우수한 소설들이 많이 나왔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북유럽은 신비하고 묘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스웨덴의 대문호 얄마르 쇠데르베리의 소설 <시리어스 게임>이 원작이다. 리디아와 아비드의 감정선을 섬세하고 격조 있게 묘사해 변화하는 시대상과 어우르는 작가의 필력은 워낙 정평이 나 있고 탄탄한 플롯과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인 두 사람의 이야기이기에 이미 두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던 작품이다.

세 번째로 영화화된 이 작품은 론 쉐르픽의 각본을 바탕으로 페닐라 어거스트 감독이 연출을 했는데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인 사랑과 독립적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리디아 그리고 리디아와 운명으로 엮인 아비드의 이야기를 섬세하고도 세련되게 그려내었다.

그렇게 아비드와 리디아의 감정을 중심으로 이끌리던 영화의 마지막은 끝내 지독한 쓸쓸함을 남기고야 만다. 자신의 속에서 몰아치는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이라는 존재. 그러나 그럼으로 인해 어쩌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또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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