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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와 서지현, 그리고 무명 구성작가

포스트저널리즘 시대의 저널리스트 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한예종 교수)l승인2018.01.31 1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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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한예종 방송영상과 교수)] 그는 역시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어. 모두 사람들이 그의 인터뷰 실력에 재차 감탄했지. 문화예술 분야 사람과의 인터뷰는 좀 재미없다는 평을 듣지만, 이번 JTBC <뉴스룸> 여검사와의 스튜디오 대담에서 인터뷰의 정석을 다시 보여줬어.

상대로 하여금 쉽지 않은 말을 믿고 풀어갈 수 있도록 대화를 이어가는 솜씨가 돋보였어. 누구는 논변과 외모를 말하지만, 사실은 신뢰가 그의 가장 큰 힘인 게 확실해.

이번 인터뷰는 그의 저널리즘이 재차 부각되는 순간이야. 평소 철학이 빚어낸 당연한 소득. 늘 인터뷰를 TV저널리즘의 훌륭한 무기, 중요한 양식으로 여겨오던 그였잖아. 손 앵커에게 인터뷰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누군가와 질문 주고받는 대화기술 따위가 아냐. 타자와의 언어활동·담론과정을 통해 주관적 내면의 진심을 발굴하고 객관적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그럼으로써 독자의 관여와 판단까지 유도하는 하나의 저널리즘 그 자체야.

다른 모든 언론사들이 지레짐작으로, 혹은 관성으로 '피해자가, 더구나 현직검사인데 나서겠냐'는 선입견과 단정 아래 '둘둘 한 두 꼭지 말면 된다'는 매너리즘으로 사건을 대하던 순간, 이 방송사는 당사자를 스튜디오에 불러냈다. 앵커는 절제와 품위를 잃지 않고 필요한 질문을 던졌고, 피해 당사자인 현직검사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꾹꾹 누르며 검찰 내 성범죄를 고발한다.

페이스북에 SBS의 한 기자는 “전기충격 같았다”고 탄식과 자괴를 내뱉었어. 타사 앵커의 인터뷰 기량이 아니라 인터뷰 철학을 향한 존경과 인정의 표식으로 읽히지. 그래. 그의 저널리즘은 유별나. 고민을 계속하지. ‘내러티브 혁신팀’을 만들어 뉴스 구성의 모든 요소들을 해체해보는 중이라지. 수십 년 봐온 1분 30초짜리 리포트에서 벗어나는 실험. 기자들과 함께 모방하고 변형해 새로운 걸 창안하는 방법론을 답습하며 말 그대로 ‘열공’ 중이라는 거야.

▲ 지난 29일 방송된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가 서지현 검사와 인터뷰를 있는 화면 갈무리. ⓒJTBC

지적받은 단독 문제도 손 보고, 내친 김에 또 다른 선정주의까지도 살펴보겠다지.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저널리즘 철학이 지닌 가장 매력적이고 인상적이며 중요한 대목은 실상 못 보는 듯 해. 그는 이렇게 저널리즘의 본령을 강조하지. “저널은 그냥 기록이다. 일기인 셈이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놀라운 혜안이야. 저널은 일기쓰기. 무얼 갖고 어떻게 일기 쓸지, 그 형식과 내용을 사유하는 게 다름 아닌 저널리즘. 맞아. 진리는 이렇게 늘 평범해.

물론 일기라는 형식에는 글쓴이의 관점이 끼어들 수밖에 없고. 또 하나의 기록인 인터뷰도 마찬가지야. 민주주의와 인본주의에 대한 그의 소신이 바닥에 깔리겠지. 그 철학과 이념이 거꾸로 어제와 같은 역사적 인터뷰를 만들어내는 거고. 검찰 남성권력체제 안에 짓밟혀 온 어느 여성의 이야기를 진부한 리포트가 아닌 이야기로 구현해내는 포스트저널리스트.

그렇다면 이 앵커 앞에 앉은 그 사람은 누구지? 수치를 감내하며 고통을 차분히 언어로 표현하는 인터뷰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여러 카메라가 돌아가는 가운데 수많은 시선들을 의식하면서도 진심을 전한 서지현 검사. 그는 이중의 의미에서 소설가야. 조곤조곤 자신의 목소리로 8년 전 그날의 악몽을 기술하지.

그녀가 검사 신분이 아닌 이 낮은 세상 속인(俗人)으로 다가와 전하는 건 결코 낯설지 않은 저 검사세계의 뒤틀린 성추행. 쉽게 노출 안 되던, 권력세계의 은밀한 타락상이었어. 남성 검사 중심의 공동체에서는 약자, 소수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이 발설하는 결정적 내부 고발, 발설된 추태 내용에 모두가 경악했어.

그 전달방식에 또 놀랐지. 그녀는 앵커의 질문에 소극적으로 답하는 인터뷰이가 아니었어. 과거를 복기하고 사실을 확인하며 부인하는 자들을 추적했지. 프로페셔널 기자보다 훨씬 더 나은 아마추어 저널리스트로서 진실 찾기에 나섰어. 그렇게 얻어낸 내용을 작은 이야기, 거악 고발의 내러티브로 옮겼지. 용감한 포스트저널리스트는 이제 자체 진상규명한 내용을 갖고, 앵커와 대면해 한 편의 생생한 TV저널을 완성했어.

사실 그녀는 텔레비전에 나오기 전 자신이 목도하고 체험한 권력의 부정·비리의 현장을 말 그대로의 소설 행태로 우선 기록에 남겼지. 일기라고나 할까? 얼마나 고통스러운, 혹은 고통을 씻어내는 작업의 시간이었을까. 허구의 문체는 거짓과 부인, 은폐, 가식의 높은 벽에 둘러싸인 그녀가 택한 고육지책의 저널리즘 스타일에 불과해. 역사가 입증시켜줬지. 소설은 허구의 장르이면서도 동시에 훌륭한 현실의 저널리즘이 된다는 것을.

허구는 거짓이 아냐. 유명 작가의 소설들을 봐. 그녀의 아마추어 픽션처럼 이곳저곳에 사실의 알갱이들을 박아 두고 있지. 자칫 지워질 기억의 진실, 진실의 기억들을 붙들기 위해서야. 도망치지마라, 악몽의 진실이여! 벗어날 수 없다, 저주의 폭력범. 그 치열한 작가가 마침내 자신의 작은 이야기를 들고 세상에 나선다. 물론 끔찍한 소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지.

뉴스 스튜디오에서 서 검사가 손 앵커와 마주 앉아 인터뷰를 나눈 건 결코 우연이 아냐. 용기 있는 소설가‧저널리스트가 자신의 출현을 기다려 저널리스트와 만나 대화체 저널을 함께 쓴 포스트저널리즘 진화의 역사적 순간이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간에 인터뷰에 능한 프로저널리스트는 소설에 익숙한 아마추어 저널리스트와 마주치게 되어 있었어.

그래, 저널리스트 현실의 중대한 변곡점이지. 그걸 깨달아야 해. 서 검사가 고발하는 내용에 분개하지 않으면 안 돼. 수치심을 느끼고, 반성해야 해. 그러면서 만약 스스로를 저널리스트라 부른다면 두 사람의 대화가 가진 형식적 의미에도 경악해야 해. 이번 일은 내용과 형식 두 가지 사건적인거야. 충분히 문제적이지. 과장이 아냐.

아직까지 이해가 잘 안 돼? 아직도 저널리즘 패러다임의 변화가 낯설고 어리둥절해? 그러면 큰일인데. 관습에 갇히면 현실이 안 보여. 틀에서 탈피해야 돼. 더 이상 기자가 저널리스트인 시대는 끝났어. 리포트가 곧 저널리스트는 아냐.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무력한 ‘언론인’을 대신해 수도 없는 작가와 만화가, 가수, 시민, 대중들이 아마추어 저널리스트로서 진실을 실행하고 있어. 그런 포스트저널리즘의 시대야.

최근 익명의 방송작가가 행한 포스트저널리즘의 또 다른 예를 한번 살펴 봐. 그건 단순한 고발이 아냐. 고통스러운 일기며 고통의 기록이야. 손 앵커가 말하는 일기로서의 저널이지. 깊은 생각을 가졌을 저 무명의 구성작가는 소설의 형식 대신에 르포르타주의 스타일을 택했을 뿐이야. 보다 단도직입적으로 시민사회·운동단체조차 안 움직이는 방송사와 PD들의 비리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야.

너무나 서글픈 폭로였어. 부끄러운 진상 고발. 진실을 외치면서도 막상 내부 비리는 외면해 온 소위 ‘비판적 언론’에 대한 아마추어 포스트저널리스트들의 반란이 아니면 뭘까? 자신의 체험을 기초로 “시사고발 프로그램, 너희를 고발한다”라며 진실 주창의 프로그램을 역 고발하는 구성작가. 이렇게 손석희, 서지현, 무명작가는 포스트저널리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 이제 감이 와?


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한예종 교수)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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