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지역MBC 사장들이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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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 청산'과 '지역방송' 재건 이행해야

[PD저널=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한예종 방송영상과)] 두 가지 중요한 시도, 새로운 변화가 진행 중이다. 하나는 서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이고, 또 하나는 그 바깥 지역에서 주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움직임이다. 우선 두 번째 이야기부터 하면, 지역 MBC 문제를 성찰적으로 접근한 다큐멘터리 <소수의견>이 최근 제작 방송되었다. 말 그대로 문제적인 프로그램이다.

무려 16명의 지역MBC PD가 참여했다고 한다. 짧은 제작 과정이 어찌 순조로웠겠나. 여러 난고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자신의 과거를 비판적으로 짚어가려는 반성의 진심이 원동력이었을까. 프로그램은 완성되어,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동시간대에 방송이 된다, 많은 이야기, 중요한 내용들을 담았다.

대단한 결과다. 의미 있는 노력이며, 지역의 PD들로서는 감격할만한 성과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프로그램이 문제적인 이유는 그 시작점에 있다. 기획에 착수하게 된 착잡한 심경에 있다. 최근 <PD저널>에 전우석 경남 MBC PD는 <소수의견>이 만들어지게 된 연유를 다음과 같이 짧게 기술했다.

파업 이후, MBC의 반성을 다룬 프로그램에 지역MBC와 관련된 내용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지역MBC 공동기획’을 제안했다. 약한 긍정의 대답을 하고선 함께 살고 있는 후배 김현지 PD에게 얘기했다. 그녀는 카페라떼를 단숨에 들이켰다.

우리가 잘못했다. 용서해 달라. 앞으로 잘 하겠다. 친구로 돌아 갈 테니, 애정 갖고 지켜봐 달라. MBC의 이름으로 작성된 이 반성문에 지역MBC의 반성, 지역 MBC 행적에 대한 고백은 없었다. 서울이 곧 한국으로 통하는 현실에서 의식적 반성의 노력조차 지역 소외의 무의식을 초월하지 못한다.

결국 부재한 타자의 기억과 생략된 타지의 기록은 지역의 주체들과 지역이 나서 작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역 공통 체험을 내용으로 한 대안적 텍스트의 공동제작. 지역 MBC 10년의 과거와 불안한 현재, 미확정적인 미래를 조명한 <소수의견>은 바로 이런 일종의 ‘억압된 것의 귀환’이다.

이름 그대로, 지배체제로부터 배제된 소수자 의견으로 기술된, 부끄러움의 보고서다. <소수의견>의 기획은 그 자체로 ‘촛불’과 파업 직후 지역 MBC, 지역방송이 처한 상황을 징후적으로 표현한다. MBC토론의 담화에 짙게 베인 서울 중심주의, 그 일방적이고 비대칭적이며 강압적인 지배구조의 현실을 메타 비평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문제적이다.

과연 반전은 가능한가. 지역 PD들의 감정과 의식의 결정체인 <소수의견>은 오랫동안 주변부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온 지역 MBC 문제를 중심부에 다시 새길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인가. 지역 MBC는 <소수의견>이 노정한 문제들을 극복하고 새로 출발할 수 있을까. <소수의견>이 내놓은 중대 시험, 어려운 테스트의 목소리는 누구를 향하는가.

▲ 16개 지역MBC가 공동기획한 <소수의견> 방송 화면 갈무리.

첫 번째로 꼽은 변화인 지역 MBC 사장 선임의 의미를 바로 이런 동향과 관련시켜 짚어볼 수 있겠다. 새로 뽑힐 지역 MBC 사장들도 이 아래로부터의 움직임, 지역 소수자-제작자들의 결기에 합세해 지역MBC를 진정한 지역방송, 힘찬 공영방송, 자율적 공적영역으로 세울 수 있는가. 그럴 결단과 용기와 의식, 능력을 갖추었는가.

다행히 이번에는 절차가 좀 달랐다. 서울에서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낙하산 인사방식이 아니었다. 임원추천후보위원회라는 서울과 지역 사이 일정한 합의제 방식이 마련됐다. 구체적으로 노사 동수의 임원추천위원회가 구성됐고, 노측 대표 위원은 다시 서울과 지역 동수로 정해졌다. 지역에 대해 아무 생각 없는 서울 사람들은 걸려졌을 공산이 크다.

선임된 사장에 대해서는 중간평가도 예정되어 있다. 지역MBC 구성원의 목소리와 지역 시청자들의 평가를 반영할 시스템이 일정하게 마련된 셈이다. 아래로부터의 여론을 의식한, 의미 있는 제도 변화다. 광주와 울산, 춘천 등 11곳 지역MBC에서 선임이 완료된 사장들은 이런 재평가의 만만치 않은 미래가 대기 중이다.

한편 대구와 대전의 경우 해당 지역사 출신이 사장이 됐다. 대전MBC 신원식 사장은 보직 국장 임명동의제 등에 대해 바로 노동조합과 합의했다. 대구MBC 박명석 사장도 취임 전 “지역MBC로서 역할을 못 한 부분을 최대한 제자리로 돌리는 데 역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분명한 변환, 긍정적인 변화의 약속이다.

그 약속을 지키는 일만 남았다. 서울에서 내려간 다른 지역 사장들 또한 이들과 다르지 않은 책무를 부여받는다. <소수의견>에서 드러난 지역 제작자의 의지에 조응해 망실된 공영성과 공정성을 일궈내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성과 독립성·자율성까지도 새로이 세워내는 과제다. 그 성적을 갖고 냉정히 평가받을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 지역MBC 사장은 서울의 추악한 꼬락서니를 고스란히 복사한 비리와 무능, 처세와 권능의 자리였다. 굴욕과 복종 그리고 야합의 인사 발령지였다. 서울의 권력에 충성을 서약하고 일신의 영달만 꿈꾸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일시 파견된 지역MBC 사장실에서 적폐의 네트워크를 키운다. 지역방송 문화를 더욱 좀먹고, 지역사회 파괴를 계속 부추긴다.

5.18 당시 북한군 개입이 사실이고 전두환은 멋진 사람이라 발언했다가 민주화 단체들로부터 탄핵 받은 자가 앉았던 자리. 공영방송 지키려는 제작자들에게 ‘메롱’이라는 이해불가의 유치한 언행을 일삼던 자가 꿰찼던 지역MBC 대표이사 감투. 함량미달의 사고능력, 부진한 판단력을 갖고 윗선만 봐준다면 집요하게 버틸 수 있던 사장 타이틀.

실속과 허명의 자리를 포기할 수 없는 자들이 안동, 제주MBC 등 몇 군데에서 버티고 있다. 적폐인사의 해임이 불가능하게끔 방해하는 자도 끈 떨어지지 않은 채 지역MBC 이사로 활약 중이다. 모두 서울 일방주의와 뒤얽힌 구체제의 산물이다. 쫓겨난 전직 사장들은 또 얼마나 많은 적폐의 아류들, 구태의 쓰레기들을 곳곳에 쌓아놓았을까.

지역 제작자들은 작심하고 <소수의견>을 만들었다. 이제는 새로 뽑힌 사장들이 재생의 계획을 공개할 차례다. 지역MBC에 쌓인 적폐를 어떻게 정리할 테며, 지역MBC는 어떻게 지역공영방송으로 재건축할 것인가. ‘서울MBC’와의 관계는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 사회에는 무엇을 약속하고 거꾸로 무엇을 요청할 텐가.

<소수의견> 이후 지역 MBC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그 기대에 부합해 사장들 또한 구태의연하지 않은 프로그램을 내놓을 때다. 지역 MBC 재생 계획을 지역 구성원은 물론이고 서울 MBC와 최승호 사장, 그 외의 사람들에게 공통의 이름으로 당장 내놓아야 한다. 2018년, 지역MBC 사장은 그런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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