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으로 다시 읽는 ‘성폭력’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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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드라마에 담긴 성폭력, 성차별 요소 부각

▲ KBS <마녀의 법정>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미투 운동이 법조계, 문화계, 정치권까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새삼 주목하게 되는 드라마가 있다. 미투 운동이 본격화되기 전 작년 말 방영됐던 KBS <마녀의 법정>이다.

속물 여검사가 성범죄 특별 전담부 검사로 발령되면서 벌어지는 수사법정 드라마. 이 드라마의 첫 회에 등장했던 에피소드는 놀랍게도 이 여검사에게 당연한 듯 행해진 검찰 내 성추행이었다. 툭하면 성추행을 일삼으며 요직에서 늘 배제하는 상사에게 이 여검사는 이렇게 일침을 가했다.

“내가 부장님을 흥하겐 못해도 망하겐 할 수 있죠. 어차피 나도 못 들어가는 특수부 부장님도 못 들어가야 공평하지 않겠어요? (발로 정강이를 걷어차며)웁스 쏘리. 죄송한 김에 야자타임도 잠깐 하겠습니다. 야 오수철. 만지지 좀 마. 너 왜 내가 회식 때 맨날 노래만 하는 줄 알아? 니 옆에 앉기만 하면 만지잖아. 그리고 굳이 중요한 일도 아니면서 굳이 귓속말 하면서 귀에 바람 좀 넣지마. 무슨 풍선 부니? 아 맞다. 너 처음에 회식할 때 내 얼굴 뽀뽀하면서 딸 같아서 그랬다고? 어우 이걸 친족 간 성추행으로 확 그냥.”

사실 지금처럼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다시 보면 이 장면은 ‘범죄’ 그것도 검찰 같은 법집행 기관에서 일상화된 성추행과 성폭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장면이지만, 당시만 해도 이 장면은 통쾌한 사이다 한방을 날리는 코믹한 시퀀스 정도로 다가왔다.

우리가 미투 운동 이전에 성폭력에 대해 얼마나 둔감했는가를 이만큼 잘 드러내는 사례도 없을 게다. 당시 <마녀의 법정>에서는 회식 자리에서 찾아온 기자의 다리를 주무르고 어깨에 손을 얹고, 결국 피해서 나온 그 기자를 쫓아가 강제로 입맞춤을 하는 부장 검사의 범죄를 담았다. 이 드라마는 그래서 검찰 내 성폭력을 폭로하며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서지현 검사의 전조 같은 이야기로 다가온다.

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도 방송사 PD가 작가를 강간하려는 장면이 등장해 시청자들이 공분한 적이 있다. 결국 그 사실을 알게 된 방송사측에서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선배 작가까지 동원해 이 작가를 회유하려 한다. 지금 같은 상황이었다면 미투 운동을 통해 이런 사실을 폭로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드라마 속 피해자는 결국 스스로 일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린다. 이 드라마도 어찌 보면 이런 사건이 비뚤어진 권력 시스템 속에서 관행처럼 일어나고 결국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패배적인 관점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 tvN <또 오해영>

그런가 하면 멜로드라마에 공식처럼 등장하는 과격한 스킨십이나 다소 강압적인 키스신 같은 것들도 자칫 잘못하면 성폭력을 미화하고 나아가 여성들의 ‘N0’를 ‘NO’로 받아들이지 않는 착각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멜로 드라마들, 이를테면 <상속자들>이나 <응급남녀>, <또 오해영> 같은 작품들 속에서 이른바 ‘박력 키스’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강제 키스다.

잘 생기고 능력도 있는 남자주인공이 피하는 여성을 잡고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는 여지없이 뮤직비디오 같은 아름다운 음악이 깔린다. 그리고 여성은 그 남자주인공에게 새삼 사랑을 느낀다…하지만 이것이 과연 현실일까. 성폭력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런 장면들이 멜로드라마에 채워지면 성폭력에 대한 불감증을 부지불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지적을 하면 혹자는 말한다. 그저 드라마이니 드라마로만 보라고. 하지만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가 아니다. 인간의 선망과 욕망의 결핍을 대리해주는 드라마를 통해 대중들은 자신도 모르게 학습되는 부분이 생긴다.

오히려 드라마를 그저 드라마로 보지 않는 것이 무뎌진 감성과 감수성을 깨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일이라 치부했던 일들이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미투 운동을 통해 드라마를 만드는 이들이 다시금 깊게 생각해봐야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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