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보도, 피해자 책임론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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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보도, 피해자 책임론 확산”
서울YWCA 주최 ‘미투운동과 언론보도’ 토론회, "기계적 균형 보도는 성범죄 해결 걸림돌"
  • 김혜인 기자
  • 승인 2018.03.20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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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김혜인 기자] 미투운동에 힘입어 정치·언론·문화계 등 전 분야에서 성범죄를 고발하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지만, 되레 언론의 보도 때문에 2차 가해를 받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0일 서울YWCA 주최로 열린 ‘미투(#Me too)운동과 언론보도’ 토론회에는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미투운동을 보도하는 언론이 보도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아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고 있고, 이로 인해 ‘피해자 책임론’이 확산된다고 지적했다.

윤 이사는 “최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문제를 지적한 김지은 씨의 폭로를 두고 언론에서는 “왜 여성을 수행비서로 했을까‘에 대해 다룬 기사가 나왔다”며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애초 수행비서가 남성이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에서 나온 기사로 전형적인 책임 전가“라고 지적했다.

▲ 20일 열린 '미투 운동과 언론보도' 토론회 ⓒPD저널

이날 토론회에선 가해자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쓰는 보도의 문제점도 도마에 올랐다. 성폭력 의혹을 받은 연극연출가 이윤택 씨가 자신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공개 사과한 지난 2월 19일, 대부분 언론은 가해자 측 입장만 대변하는 제목을 썼다.

윤 이사는 “사실관계가 확인되기 전에는 가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진실인 것처럼 보도하지 않아야 된다”며 “가해자의 논리로 성폭력 사건을 설명하는 것은 서로의 성욕으로 인한 실수라는 식의 기존 인식을 강화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언론의 가해자의 반론권을 위한 기계적 균형 보도는 성범죄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토론회에 참가한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 대다수는 자기를 드러내려 하지 않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기방어를 한다. 어느 순간 가해자 말이 옳은 말이 돼버린다”며 “기본적으로 반론권이 중요하지만, 균형이 안 맞게 보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 20일자 <동아일보> 5면 톱 기사.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 역시 언론이 가해자 입장을 그대로 받아쓰고 마치 ‘진실 공방’을 벌이는 것처럼 묘사하는 보도가 문제라고 했다.

박 기자는 이같은 문제가 두드러진 보도로 20일자 <동아일보> ‘[단독]안희정 “내가 이렇게까지… ”친구에 토로, 부인-아들과 열흘 칩거’ 보도를 꼽았다.

박 기자는 “해당 기사는 가해자를 옹호했고, 가십성으로 성폭력을 다뤘는데, ‘안 전 지사는 밤에 술을 마셔야 잠을 청할 만큼 속죄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식의 가해자를 옹호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며 "이 기사를 쓰기 위해 기자 3명이 붙었고, 단독을 붙였으며 많은 이가 이 기사를 봤다”고 꼬집었다.

이어 박 기자는 “2차 피해뿐만 아니라 성폭력 근절하고 성차별을 없애야 하는 언론이 '사건 중심적'으로, 단순 흥밋거리로 사안을 다룬다는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로 기사를 작성하는 '어뷰징 기사'의 폐해도 언급됐다. 

박 기자는 “미투운동 보도의 경우 온라인 뉴스팀이 주로 논란을 만든다”며 “검색어가 올라오면 이와 관련된 과거 정보들을 짜깁기해서 기사가 나오는데, 이런 기사는 조회 수가 1분 당 몇천건이 나오기 때문에 자극적인, 2차 가해 보도들이 양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는 당장 시도할 수 있는 해결책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왔다. 

박정훈 기자는 “우리가 왜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는지 이유부터 되돌아봐야 한다“며 ”(성 관련 기사는) 특수성이 있고 고민할 지점이 필요하기에 ‘성폭력 전문기자’를 두거나 언론사별로 성폭력 보도 관련 내부 평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여진 상임이사는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최근 한국기자협회 임원진과 간담회를 갖고 언론의 역할을 당부했다”며 “기자들의 자성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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