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법남녀’, 망자에게 말 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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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없는 사회'에 던지는 ‘법의학’의 의미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MBC <검법남녀>는 검사와 법의관이 주인공이다. 이전에 법의학을 소재로 한 CSI류의 드라마가 없었던 건 아니다. ‘과학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형사물과 스릴러물은 꽤 많았다. 하지만 <검법남녀>처럼 법의학의 세계를 깊게 파고들어가는 작품은 드물다.

<검법남녀>의 특징은 이 드라마가 취하고 있는 이야기 구조를 통해 잘 드러난다. 사건이 벌어지고 용의자가 지목된다. 하지만 그 용의자는 결코 자신이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부인한다.

하지만 많은 정황 증거들이 그 용의자가 범인이라는 걸 말해주고 사건은 그렇게 끝날 것처럼 위기로 치닫는다. 그 때 법의관 백범(정재영)이 사체를 통해 발견한 증거들로 모든 상황이 뒤집힌다. 결국 진짜 범인이 붙잡히는데, 그것은 ‘망자가 자신의 사체로 남긴 마지막 증언’ 덕분이다.

본래 법의학이 ‘망자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주는 학문’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자신의 몸에 난 흔적들을 통해 마지막 이야기를 건넨다. 법의관은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다. 그럼으로써 그 망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진실을 밝혀낸다.

▲ MBC <검법남녀> ⓒMBC

<검법남녀>가 보여주는 검시 과정의 디테일은 의학드라마가 보여주는 수술 과정과는 또 다르게 우리의 시선을 끈다. 의학드라마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메스를 대지만, <검법남녀>는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사체의 장기들을 하나하나 떼어내고, 뼈를 잘라낸다. 물론 그 과정은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지만, 시청자에게는 섬뜩함이 전해진다. 이 섬뜩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우리가 대하는 죽음이 너무나 피상적으로 치부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누군가 죽음을 맞았다는 소식을 듣지만 그것이 진짜 어떤 의미인지는 실감하지 못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외면하려 한다. 죽음은 아픈 일이고 또 우리 누구 하나 피할 수 없는 일들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마치 죽음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려 한다. 우리의 삶터와 떨어진 공간에 위치해 있는 공원묘지들이 그 증거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공원묘지가 공원의 역할을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그러니 이렇게 멀리 있다고 여겨졌던 망자가 매 회 검시실 위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그 소리를 듣는다는 게 섬뜩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때는 “죽으면 다 끝”이라며 모든 걸 죽음으로 덮었던 진실들이 법의관에 의해 드러날 때 우리는 섬뜩함과 동시에 어떤 통쾌함을 느낀다. 그건 두려운 일이지만 망자의 마지막 이야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검법남녀>의 이야기는 단순한 면이 있다. 무고한 사람이 범인으로 몰리게 되지만 결국 ‘망자의 증언’으로 진실이 밝혀진다는 구조다. 그래서 같이 일하던 형사 차수호(이이경)가 범인으로 몰리기도 하고 심지어 주인공인 백범이 범인으로 구속되어 추궁을 받기도 한다. 가까운 이들의 위기를 그려내 드라마에 긴장감을 높이고, 법의학을 통해 뒤집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그래서 다소 뻔해 보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가 가진 미덕은 우리가 죽으면 다 끝이라 치부하고 지워내려 하는 망자의 이야기를 들으려 애쓰는 부분이다. 우리 사회에 그토록 많았던 사건 사고들은 망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연 끝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애썼을까. 그래서 제대로 된 진실을 규명하려 했을까. 혹 망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던 게 비슷한 사고가 벌어지는 이유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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