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1 - 남북이산가족 특집 [MBC다큐스페셜-상봉]
상태바
제작기 1 - 남북이산가족 특집 [MBC다큐스페셜-상봉]
방송 그 이후 - 40만 이산가족의 한과 소망
박정근
  • 승인 1998.04.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ontsmark0|48년의 긴 이별 그리고 48시간의 짧은 만남. 누구는 일부러 짜맞춘 한 편의 소설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담을 수 없었던, 소설보다 안타까웠던 진실들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분단의 비극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이 순간 이 자리에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tv매체의 특징은 즉각적인 반응에 있다. 그리고 피부에 와 닿는 감각처럼 가감없이 와 닿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때로는 방송 내용보다 더 진하게 가슴을 울리는 경우가 많다. 이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1년에 한 두번 가던 임진각에 방송 이후론 매일 출퇴근하다시피 한다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어느 이산가족의 전화에 당사자는 물론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가족의 아픔이 함께 전해왔다. 또 술에 좀 취한 듯 수화기를 울리는 한 할아버지의 비통한 호소 - “현미는 유명인이고 다른 쪽 가족 또한 성공하여 저렇게 고향의 혈육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나이 여든을 바라보는 나와 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은 도대체 어떡해야 되는 거냐”. 언뜻 ‘반세기를 넘긴 이산가족의 문제는 바로 국민에 대한 국가의 직무유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하소연할 데 없어 심야의 방송사 사무실을 두드리는 전화벨 소리 사이로 떠올랐다. 그리고 시청자의 한 마디가 가슴에 앙금처럼 남았다. 바로 “나라가 하는 일이란 국민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이 아니냐. 그런데 부모 형제 한번 만나고 싶다는 데, 그것도 바다 건너 먼 나라가 아니라 금만 넘으면 바로 고향이 저긴데 50년이라니 도대체 이건 어떻게 된 나라인가” 하는 말이었다.남북 이산가족찾기 특집 mbc 다큐스페셜 ‘상봉’의 제작은 미리 설정한 몇 가지 원칙에 의하여 제작되었다. 첫 번째 원칙은 어떤 이데올로기나 체제 우위의 비교보다도 이산가족의 아픔을 우선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남북 누구나 공감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자칫 북 체제에 동조하는 듯한 오해를 줄 수 있는 내용들도 과감히 살렸다. 그 밑바탕에는 그 정도는 포용하고 이해해 줄 시청자들의 수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동시에 북에 남겨진 두 가족들을 위한 제작진의 배려이기도 했다. 다행히 혈육의 못다 이룬 애절한 정은 이 모든 우려를 불식시켜 주었다. 핏줄은 이념보다 강했다. 동시에 이산의 아픔만큼이나 더 큰 고통으로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어려운 생활상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또한 벗을 수 없었다.사실 방송이 나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가장 큰 난제는 북한에 거주하는 가족들의 신변 안전에 관한 문제였다. 특히 방송에서 육하(六何)로 소개된 올해 91세의 김종성 할아버지는 ‘반공’을 학교 교훈으로 삼을 만큼 워낙 철저하게 살아오신 분이시라 아무리 자식들과 손자들이 설득하고 mbc가 북쪽 가족의 신변안전을 보증한다 해도 만에 하나의 가능성 때문에 방송은 절대 안된다는 것이었다. 사전에 가족들에게 방송 내용을 시사할 기회를 드리고 많은 노력을 들여 오해와 걱정을 풀어드린 덕에 방송은 무사히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 할아버지는 감동적이었다는 한 마디로 인사를 대신했다.더불어 프로그램 이상으로 의미있는 일이라면 바로 방송에 출연한 북한 거주 이산가족들의 확실한 신분보장과 관련 내용을 방송해도 좋다는 공식적인 의사를 북한 당국으로부터 확인받은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이르도록 애를 써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문제는 방송 이후 유관단체들의 질시와 무고, 그리고 사실과 다른 소문의 양성으로 당사자들이 선의의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에는 보호해 줄 일이 있는 반면, 경계해야 할 일도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보호 받을 일이고, 어떤 점이 경계해야 할 일인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양식을 바랄 뿐이다.그리고 새 정부 들어 이산가족의 문제가 중심과제로 떠오르면서 상봉을 주선하는 단체들이 많이 나서고 있다. 반가운 현상이다. 반면 이를 새로운 수익 사업으로 여기는 국내외 단체들로 인한 부작용도 적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 단체에 대한 신뢰도와 투명성의 보장 등, 정부 관련 부서의 책임있는 대응과 서비스가 어느때보다도 절실하다고 본다. 정부는 1996년 12월 이산가족 문제를 전담할 부서를 통일부 인도지원국 내에 설치하고 이산가족 문제를 전담하면서 이산가족 교류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산가족의 입장에서는 아직도 많은 게 미흡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이산가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관련 부서의 보완이 필요하고, 나아가 이산가족들도 그들 중심으로 정보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소식지의 발행 등 나름대로의 자구책도 필요하다고 본다.방송이 나간 다음날 중국 베이징에서는 남북회담이 열렸다. 경유야 어찌하든 3년 8개월만에 열린 남북회담에서 북측이 촉구하는 대북 비료지원에 곁들여 남측의 우선 과제로 상정된 이산가족 문제는 반세기를 기다려온 이산가족들의 가슴을 들뜨게 하기에는 충분한 사건이다. 어쩌면 남북 관계는 지금까지의 상호 의존적 적대관계에서 벗어나 비로소 민족간 화해와 교류, 평화로 나가는 첫 도정에 있는지 모른다. 남북간 화해와 교류를 통한 상호 신뢰는 서로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고 있는 군비축소의 계기가 되고, 나아가 서로의 장점을 수용한 경제교류로 인하여 북쪽은 기아로부터 남쪽은 imf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현재 이산가족의 숫자는 40만 3천명 수준이다. 그나마 이들도 앞으로 5년 내지 10년이 지나면 그 때까지 생존할 이산가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남북 이산가족을 이어주는 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한과 소망이다. 1세들이 사라지면 모두 남남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간 우리 역시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다.끝으로 이번 프로그램의 작가인 김혜주 씨는 이산가족 2세이다. 그래서 힘든 줄 모르고 마치 신들린 것처럼 함께 일하고 함께 울었다. 그런데 마냥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딸을 한 때는 한심한 듯이 바라보시던 부모님들께서 방송 이후 딸의 직업이 참 대견하고 장해 보인다는 말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세상은 어쩔 수 없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도 가족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무능한 가장으로 지탄받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도 참 대견하고 장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꿈일까?|contsmark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