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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치유’는 이제부터 시작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화해치유재단’... 늦게나마 '민족 존엄' 지킨 해산 결정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l승인2018.11.22 13: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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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위안부 지원 화해·치유재단 해산 결정 발표를 앞둔 21일 오전 서울 중구 재단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있는 모습.ⓒ뉴시스

[PD저널=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문재인 정부가 지난 21일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추진하고 이를 위한 법적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 시절 위안부 할머니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굴욕적으로 추진된 ‘화해‧치유재단’은 반발과 분열, 민족적 수치심 논란만 키운 끝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 아래 다양한 의견수렴 결과 등을 바탕으로 재단 해산을 추진하게 됐다"며 "여성가족부는 앞으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존엄 회복을 위한 정책 추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회복을 정책의 최우선으로, 유엔이 결의한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존중하겠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를 위하고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내세워 만든 게 ‘화해‧치유재단’인데, 무엇이 잘못돼서 이렇게 그 기능과 존재감을 상실하고 해체라는 결말을 가져왔는가.

가장 우선적으로 지적되는 문제는 역시 박근혜식 ‘유체이탈화법’의 결과를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강행했다는 점이다. '화해·치유재단'은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 출연금 10억엔으로 2016년 7월에 출범했다.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행정으로 당시에도 비판을 받았고 세월이 흘러 문재인 정부에서 다각도로 조사한 결과도 대동소이했다. 그런데 윤 전 장관은 '위안부 합의' 비판 여론에 대해 "반대하는 (피해) 할머니들이 있지만, 고마워하는 분이 더 많이 계시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안부 할머니들로부터 “어느 나라 장관이냐”는 비판까지 받은 윤 전 장관은 "4분의 3정도 되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살아생전에 아베 총리가 사죄·반성하고 책임을 통감한다는 전제 하에서 (위로금을) 수령하게 된 데 대해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들 하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교묘한 말장난이다. 객관화할 수 없는 ‘4분의 3 정도’라는 수치를 앞세우고, 사죄 반성도 하지 않는 아베 총리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건 논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아베 총리는 사죄한 적도 없고 반성한 적도 없다. 앞으로도 사죄하지 않을 것이다. 종군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강제징용자들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는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다. 가해자가 사죄도 않고 반성도 않는데, 피해자가 엎드려 절받기 식으로 돈 몇 푼에 민족의 혼을 바꾸는 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나라 팔아먹기’가 아닌가.

▲ 지난달 30일자 KBS <뉴스9> '5년 넘게 걸린 선고...배후엔 김앤장' 보도 화면 갈무리. ⓒKBS

지난달 30일 KBS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그동안 일본 전범기업 편에 서서 우리 사법부와 행정부를 쥐락펴락했던 법률 대리인은 바로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이었다. KBS는 기자 리포트에서 김앤장의 고문을 지낸 윤 전장관의 이력을 언급했다.

“2014년 전범기업 신일철주금의 변호인인 김앤장이 대법원에 낸 상고이유서입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줄 경우 대외 신인도 추락과 외교 정책의 혼란을 경고합니다.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됐다는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2년 뒤, 김앤장은 대법원에 외교부 의견서를 빨리 받아달라고 공문을 보냅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외교부가 18쪽 짜리 의견서를 냈는데, 뜯어보니 자료 대부분이 김앤장의 상고이유서와 일치합니다...당시 외교부 수장은 윤병세 장관, 장관이 되기 직전까지 김앤장의 고문이었습니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 전 장관은 이런 의혹에 대한 질문에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르겠다”, “답할 수 없다”는 식으로 답변을 사실상 거부했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한때 국력이 약해서 혹은 탐욕스런 외세의 침략으로 국가가 수난에 빠지고 민족이 고난의 질곡을 헤매야 할 때도 있다. 프랑스 역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침입으로 잠시 식민지배 시절을 보낸 적이 있다.

프랑스가 어떤 식으로 독일의 식민지배를 청산 했는가는 언론에서도 자주 언급되지만 한 가지만 강조하고자 한다. ‘반민족행위’를 한 사람은 그가 공직자는 물론 심지어 민간 신분의 언론인까지 철저하게 단죄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일간신문 <오주르디>의 편집인 쉬아레즈는 "우리의 땅을 수호하고 있는 것은 독일인"이라며 ‘히틀러를 찬양했다’는 이유로 총살당하고 재산까지 몰수당했다. 수필가 겸 문학비평가 브라질라쉬는 "프랑스 노동자는 독일전쟁에 마땅히 파견되어야 한다"며 ‘독일의 침략을 정당화했다’는 이유로 사형당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색출과 처벌은 40년 간 계속 됐다. 이는 1964년 통과된 '전쟁 범죄에 관한 시효 제거를 규정한 법률'에 의한 것으로, 반민족, 반인륜 범죄에 대한 시효 자체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을 지라도, 또 다시 민족 반역자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드골 당시 대통령은 반민족처벌의 대의를 분명히 했다.

전쟁을 치르지도 않고 600만명이 학살당한 유대인들은 지금도 지구 끝까지 추적해 유대인 학살범을 이스라엘 법정에 세운다.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처벌은 공소시효를 없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시는 민족 학살 같은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후손들의 의지이기도 하다.

반민족행위자, 반인륜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는 건 세계적인 추세다. 한국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당하고 파면당한 박 전 대통령 시절 최장기 장관 기록을 세우며 ‘한일 관계 악화’ 우려를 명분으로, 수치스런 재단 만들기에 앞장 선 윤 전 장관. 법적 처분은 김앤장을 앞세워 무력화시킬 수 있을지 모르나 역사의 평가와 피해자 할머니들의 분노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민족정신을 올바로 지키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몫이다.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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