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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목탁 소리가 빚어낸 입체음향

[무소음세상 21] 전등사 템플스테이 안병진 경인방송 PDl승인2018.12.03 15: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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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안병진 경인방송 PD] 눈이 내렸다. 첫눈인데 제법 눈송이가 크다. 눈이 쌓이기 시작하며 나의 근심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템플스테이만 가려고하면 이렇게 눈이 오고 추워지나….’

지난해 겨울 녹음하러 봉선사에 갔던 날이 떠올랐다. 광릉수목원 비밀의 숲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봉선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해야만 한다. 새벽 예불 때부터 발가락이 오그라들더니 아침 숲 소리를 녹음하던 순간에는 온몸이 그대로 ‘스테이’가 됐다. 이러다 템플의 망부석이 되어 영원히 숲 소리를 듣게 되는 게 아닌가…. 그날의 통증이 되살아났다. 나미아비타불.

“피디님, 오늘 전등사 가는 거... 맞죠?”

“‘유지방’ 씨, 우린 전생에 죄가 많은가 봐요.”

강화 전등사에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었다. 절밥은 많이 먹어도 금세 배가 고프다. 방을 배정받고 내복을 챙겨 입었다. 따뜻하다고 해서 아내가 몽골여행 다녀오며 사준 낙타털 양말도 신었다. 양털에 거위털이며 낙타털이며 꾸역꾸역 챙겨 입으며 혼자 쓴웃음이 났다. ‘나를 비우고, 나를 만나는 시간’ 템플스테이를 소리로 소개하며 온갖 동물 털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관세음보살.

눈이 녹아 사찰의 땅이 온통 진흙탕이 됐다. 그나마 바람이 불지 않고 기온도 뚝 떨어지지 않아 다행이다. 사물 소리부터 녹음을 시작했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이들이 돌아가며 범종을 타종한다.

하지만 나의 눈은 옆에 있는 전등사 보물, 중국 철종에 자꾸 가 닿는다. 중국 북송기 숭명사의 범종이 일제강점기 시절, 중국에서 공출되어 이곳 전등사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 사연이 기가 막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일제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온갖 철제들을 공출해 녹였는데, 이때 사찰과 교회의 종들이 많이 사라졌다. 전등사에 있던 범종과 불기들도 모두 공출당해 당시 부평 조병창으로 끌려갔다. 해방 후 전등사 주지께서 이를 찾아 나섰다가 뜻하지 않게 중국에서 공출당해 제물포까지 건너 온 숭명사종을 발견해 전등사로 가져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중국종이 전등사에 있는 이유이다. 그 파란만장한 종소리를 담아보고 싶었지만 허락을 받지 못해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 전등사 대웅전 ⓒ‘유지방’

저녁 예불을 드리고 108배를 했다. 108배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방석을 걷어치우고 맨바닥에 일부러 ‘쿵쿵’ 소리를 내며 엎어지는 걸 반복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 때문에 소리가 신통치 않다. 참선도 소리가 없는지라 스님께 청해 죽비를 몇 대 얻어맞으며 녹음했지만 뭔가 부족하다.

땅이 질펀해 아침에 마당을 비질하는 소리, 울력도 담을 수 없게 되었다.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라 그런지 이런저런 풀벌레 소리도 없이 절은 고요하다. 이제 믿을 것은 새벽을 깨우는 목탁 소리, 도량석뿐이다.

새벽 3시. 다시 온갖 동물들의 털을 뒤집어쓰고 방을 나오니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기지개를 켜며 다가온다. 사찰의 새벽 소리를 녹음해보려 일부러 일찍 일어났는데, 이 녀석이 자꾸 따라다니며 ‘야옹’ 소리를 낸다. 휘영청 달은 밝은데, 고양이 밥 달라는 소리 말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새벽 4시. 멀리서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목탁이 울리기 시작한다. 고요하던 절간이 작은 목탁 소리에 울린다. 스님은 염불을 외며 경내를 걷기 시작한다. 약사전을 지나고 대웅전을 지나더니 소리만 들리고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스님을 따라 가면서 녹음할까요?”

“아니요 여기에서 그냥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전등사 밤의 소리 녹음.ⓒ안병진 PD

사운드 엔지니어 ‘유지방’은 내게 소리를 낮추라는 표정을 짓고는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마이크를 양팔에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이 아름드리나무 같다. 멀어졌던 목탁소리가 다시 점점 다가온다. 염불소리도 들리기 시작하더니 저 아래에서 스님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를 보면 혹시 놀라기라도 할까봐 몸을 틀어 어둠속으로 들어갔다.

소리가 온다. 맑고 청아한 목탁 소리가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작은 나무가 어떻게 이렇게나 큰 소리가 되어 쩌렁쩌렁 세상을 깨울까. 발소리와 염불소리 그리고 목탁소리가 우리를 스쳐 지나가 다시 작아 질 때까지 숨을 죽인다. 아름다운 소리다.

소리는 크지만 크지 않은 소리다. 부드럽고 우아하다. 소리를 듣고 일어났는지 하나둘 방에 불이 켜진다. 목탁소리는 다시 우리 뒤를 돌아 멀리 나간다. 마을 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아! 입체음향이 따로 없구나. 공간을 돌며 ‘발’로 입체음향 믹싱을 해내는 스님의 엄청난 내공에 나와 유지방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감탄한다. 이렇게 좋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던가. 

“발로 믹싱해도 5.1 채널 이상 하시는 군요.”

“스님이 살아있는 돌비(Dolby)시고 DTS 시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안병진 경인방송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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