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제주 4‧3
상태바
끝나지 않은 제주 4‧3
금기어 취급 받은 제주 4‧3... 국방부 71년만에 유감 표명했지만 특별법안은 1년 넘게 국회 계류
  • 정길화 MBC PD
  • 승인 2019.04.03 12: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제71주년 4·3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지석 부근에 동백꽃이 핀 가운데 희생자 유족이 찾아와 절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정길화 MBC PD·언론학 박사] 목하 제주 4‧3 71주년이다. 1997년 대선에서 DJ가 당선된 이후 1999년에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됐고, 2002년 노무현정부가 들어서면서 2003년에 '제주4‧3 진상조사 보고서'가 발간됐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4‧3을 국가 폭력에 의한 학살이라고 사과했다. 3일 국방부는 제주 4‧3 71년 만에 "제주4·3특별법의 정신을 존중하며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를 표한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실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오랜 기간 제주4‧3은 금기어였다. 명칭도 '사태', '항쟁', '학살', '사건', '반란'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면서 우리 사회의 길항과 대립이 반영됐다. 지금의 ‘제주4.3’은 일종의 타협적 명칭으로 보인다. 엄혹한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정치권은 물론 언론, 학술 등 공론의 마당에서 4.3에 대한 논의는 실종됐다. 지금은 누구라도 4‧3을 말할 수 있지만 이 도도한 공론의 돌파구는 문학에서 가능했다. 그 출발점은 1978년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한 세대가 지난 뒤에야 문학적 형식을 빌려 비로소 나온 이 작품은 1949년 1월에 조천읍 북촌리에서 벌어진 집단학살을 다루었다. 이후 현길언, 오성찬 등 제주 출신 문인들이 묻어두었던 4·3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진행된 일련의 4‧3 논의는 문학에 빚을 졌다. 한맺힌 역사를 개인과 가족의 서사로 내면화하여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이런 사례는 최인훈의 <광장>, 김원일의 <겨울골짜기>, 윤흥길의 <장마> 등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1999년 MBC는 현대사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시작했다. 국민의 선택으로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면서 그러한 토양을 제공했다. 그 첫 편이 제주4.3이었다. 왜곡되고 은폐된 한국 현대사의 진실을 찾는 이 프로그램의 출발점을 제주4.3에서 찾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제주 4‧3’편은 4‧3을 다룬 프로그램으로 지상파 전국방송의 효시다. 픽션의 영역임을 내세울 수 있는 문학에서 먼저 4‧3을 소환하고, 이후 이것이 <여명의 눈동자>와 같은 드라마로, 그리고 <다큐멘터리극장>, <인물현대사>,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같은 다큐멘터리로 확장된 것이다.

제주4‧3에서 시작한 현대사의 진실 찾기는 여순 사건, 반민특위, 보도연맹, 또 다른 민간인 학살 사건 등으로 이어졌다.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인식과 공유의 전국화가 이루어지고 진상규명, 명예회복 등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국회에 제출된 제주4·3특별법 개정안들은 1년 3개월째 표류하고 있다고 한다. 이 법안은 제주4·3유족회와 법학자 등의 의견을 모아 제출한 것이다. 아직도 역사에서 교훈을 못 얻는다는 것인지 안타깝다. 제주4‧3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