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인데 고성' KBS 산불 리포트로 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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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소수노조 "단순 실수 아니야" 보도자료 배포....근본 원인 대신 취재기자 제물 삼은 '언론 플레이' 공방

▲ ⓒ KBS

[PD저널=이미나 기자] 지난 4일 강원도 고성과 속초 일대에서 일어난 산불의 파장이 KBS 내홍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 강릉에서 소식을 전한 취재기자가 리포트 말미에 현재 위치를 "고성"이라고 잘못 말한 사실을 KBS노동조합(이하 KBS노조)이 외부에 알리면서 다분히 의도성이 있는 의혹 부풀리기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지난 11일 오후 KBS노조가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등 일부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4일 산불 피해 소식을 전하던 취재 기자는 고성이 아닌 강릉국 인근에서 현장 연결을 하면서, "지금까지 고성에서 KBS뉴스 OOO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KBS노조는 "심각한 취재 윤리 위반 사례"라며 "윗선에서 현장에 있는 것처럼 하라는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해 강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해당 건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일보>는 KBS노조가 보도자료에 함께 실은 기자의 사진을 일부 모자이크 한 뒤 그대로 싣기도 했다. 자유한국당도 "역대급 '사기방송'"이라며 양승동 KBS 사장을 해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KBS 내부에서는 기자의 사진까지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한 게 부적절했다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교섭대표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KBS본부)는 지난 9일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에서 강원영동지부장이 해당 기자를 대신해 상황을 설명하고 잘못을 시인했음에도 KBS노조가 의혹 부풀리기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KBS본부는 12일 성명을 내고 "어떤 이유에서건 취재 기자의 실수는 분명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재난방송 시스템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재발방지를 위한 해법을 찾는 일"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KBS전국기자협회와 KBS기자협회도 성명을 내고 "KBS노조는 사측의 책임을 묻겠다는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에 배포하고, 이미 앞선 공방위에서 모두 제기됐던 문제였음에도 새로운 이슈인 마냥 포장했다"며 "해당 기자가 중계 참여를 하는 장면까지 사진으로 제공했는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고 나은 노동조건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할 노동조합의 자세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성명이 게재된 KBS 내부 게시판에서도 "경영진을 공격하는 노조는 봤어도 들어온 지 몇 년 안 된 직원을 대상으로 '언론플레이'하는 노조는 처음 봤다" "열악한 지역국의 장비, 인력이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다" 등 KBS노조를 질타하는 반응이 줄을 이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해당 기자가 소속된 KBS강릉국의 반발이 거세다.  

황인중 KBS본부 강원영동지부장은 <PD저널>과의 통화에서 "취재기자가 의도적으로 잘못을 회피하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음에도 이런 보도자료가 배포됐다는 데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낀다"며 "강릉국 보도부에 한 명 남은 KBS노조 조합원도 납득할 수 없다며 12일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KBS이사회는 지난 4일 산불 재난방송을 점검하는 긴급 이사회를 열고 경영진의 보고를 들었다. 경영진이 TF팀을 꾸려 매뉴얼을 개선하고, 부족한 재난방송 역량을 보완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사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며 재난주관방송사로서 KBS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도 출신인 문건영 이사는 "(재난방송을 할 때)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할지, 무엇이 필요하다고 느낄지 고려해 달라"며 "(방송을 보면서) '화재가 과연 서울에서 났으면 어떻게 보여 주었을까' '지역의 일은 남의 일이라는 느낌이지 않나' 생각했다"고 질책했다.

강형철 이사 역시 "불 난 것은 이미 모두가 아는데 불길만 보여주는 미시적 화면이 무슨 의미가 있나.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불길은 어떻게 내려오고 있는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며 "중앙 중심의 인식 때문이다. 매뉴얼만 고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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