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팬심 폭발한 라디오 PD의 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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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팬심 폭발한 라디오 PD의 일일
‘기생충’ 개봉 앞두고 지난 17일 SBS ‘최화정 파워타임’에 출연한 봉 감독 만나 보니
  • 김훈종 SBS PD
  • 승인 2019.05.21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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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이 지난 4월 22일 열린 영화 '기생충' 제작보고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봉준호 감독. 제72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영화 '기생충'은 5월 30일 개봉한다.ⓒ뉴시스

[PD저널=김훈종 SBS PD(<최화정의 파워타임> 연출)] 

07시 43분.

드디어 D-DAY. 봉준호 감독이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출연하는 날이다. 정우성, 김혜수, 전도연, 송혜교, 이정재, 하정우, 문소리 등등 내로라하는 무비스타들을 스튜디오에서 만나봤지만, 이번엔 왜 이리 떨릴까? <지리멸렬> VHS 테이프를 들고 안절부절 못 하는 내 모습이 싫다. 그냥 확, 덕밍아웃 해버릴까? 팬심을 빙자해 사진도 찍고, 손때 묻어 누렇게 변색된 VHS테이프에 싸인도 받아낼까? 아니야, 내 사심을 채우면 안 되지! 아무렴, 그렇고 말고!

11시 20분.

봉감독의 신청곡을 체크하며 미리 들어본다. 최우식이 부른 <소주 한 잔>이다. 전작 <옥자>에서 호흡을 맞춰본 정재일 음악감독의 곡에 봉 감독이 작사를 했단다. 아! 욕이 나온다. 역시 ‘야잘잘(야구는 원래 잘하는 선수가 잘한다는 의미)’이다. 작사까지 이리 잘 하면 반칙이란 생각이 들지만, 뭐 세상이 그런 거지! 시나리오 쓰던 필력이 어디 가겠나?

12시 55분.

화정 누나가 잠시 후 봉 감독이 출연한다는 예고 멘트를 날리는데, 도통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만나면 뭐라고 인사를 건네야 할까? ‘비록 제 인생 가운데 <살인의 추억>은 없지만 <플란다스의 개>는 길러봤고, 적어도 인생에서 <괴물>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기생충>처럼 <지리멸렬>한 삶은 절대 살지 말자‘ 가 제 인생의 모토이고, <마더>와 함께 <설국열차>를 타고 해외여행 가보는 게 꿈입니다.’ 음...꽤 괜찮은데.

13시 1분.

봉준호 감독 입장. 수 없이 되뇌던 나의 인사는 단답형으로 끝난다.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헐.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13시 15분.

초반부터 꿀목소리의 봉 감독이 페이스를 올린다. 함께 출연한 최우식 배우가 토크를 이끌어 갈 줄 알았는데, 웬걸! 초반부터 빵빵 터트리는 봉 감독이다. “저는 어떤 역할이 어울릴 것 같아요?”란 화정 누나의 질문에 “수줍음 많은 지자체장”이란 답이 날아온다. 역시 예리하다. 화정 누나는 이뤄놓은 업적에 비해 너무 샤이하다. 근데 어떻게 알았지? 잠깐 사이에.

13시 35분.

칸 영화제 초청이 벌써 다섯 번째란다. 평생에 한 번 초청 받기도 힘든 영화제인데, 영화감독들의 로망인 영화제인데, 파주에 있는 아웃렛 가는 것 마냥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그래도 거기서 평가받는 일이 떨리긴 한다고 덧붙여서, 그나마 용서가 된다. “사실 아무리 자주 가도 떨려요. 마치 뜨겁게 달궈진 거대한 프라이팬 위에 알몸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랄까요.”

14시.

봉 감독은 칸을 향해 떠났다. 끝까지 겸손하고 젠틀하다. 남의 집 배달 우유를 상습적으로 훔쳐 먹는 신문사 논설위원, 도색잡지를 보다가 제자에게 딱 걸린 근엄한 교수, 만취해 노상에서 용변 보려다가 경비원 아저씨에게 걸린 엘리트 검사. 그의 데뷔작 <지리멸렬>에 등장하는 인물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지리멸렬한 구석이 하나 정도는 있지 않을까 예상했다. 하지만, 한 시간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나의 팬심만 괜스레 두터워졌다. 젠장! <기생충>은 언제 개봉인지 뒤적뒤적.

‘야식으로 나온 비빔면이 불면 맛없으니까, 테이크를 조절한다’는 감독이 뭐 이리 영화를 잘 찍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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