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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영국발 신자유주의의 대모인 대처 전수상은 자신의 기나긴 재임기간 내내 공영방송 bbc에 대한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엄청난 수신료를 받으면서도 정부에게는 눈곱만큼의 고마움도 표시하지 않는 이 조직이 마음에 들 이유란 도무지 없었다. 고마움은 커녕, bbc는 영국이 아일랜드에서 저지른 과오를 만천하에 밝히는 한편, 대영제국의 아스라한 유산 가운데 하나인 해외 영토(포클랜드 섬)를 침입한 적(아르헨티나)에 대항하여 자신의 모국을 일방적으로 옹호하지도 않았다. 당연히도 대처정권에게는 bbc가 영국 땅에서 사라지는 것이, 반대 정당인 노동당이 사라지는 것보다도 훨씬 바람직한 일이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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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꿈은 실현될 수 없었다. 보수당을 지지했던 절반 이상의 영국인들조차 bbc 없는 텔레비전, bbc가 사라진 영국을 생각한다는 것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버킹엄 궁전에서 모습을 감추는 일만큼이나 생소한 일이었다. 게다가 1997년에 등장한 노동당 블레어정권은 보수당보다도 훨씬 bbc에 친화적인 정치적 멘털러티를 지니고 있었다. 오히려 bbc는 더욱 강해져 갔다. 수신료 징수 체계는 더 굳건해졌고, 상업방송 itv에게 내주었던 선두 채널의 자리도 점차 장악했다. 그러나, bbc는 정권을 가진 이들이 좋아할 만한 조직은 아니었다. 명분이 부족한 이라크전을 둘러싸고 한판 붙어버린 bbc와 블레어 정부 사이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이 틈을 비집고 보수우파의 오랜 꿈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칙허장을 넘어(beyond the charter),” 수신료를 폐지하고 약해진 bbc를 시장에 던져 넣으려는, 영국 보수우파의 밑그림이 담긴 보고서의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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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 보고서 이전까지만 해도 “별일이 없는 한 현 체제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게 2006년으로 예정된 bbc 칙허장 갱신을 둘러싼 일반적인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그때와 여러모로 사정이 다르다. 요컨대, 이 보고서를 발간한 시기가 정치적으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고, 잘하면 다음 총선에 보수당이 내걸 유효한 깃발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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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보고서에 대해 정치계와 방송계는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bbc와 거친 한 판을 벌여 승리를 낚아챈 노동당 정부로서는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현재의 갈등을 무작정 끌고만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bbc가 적당히 백기만 들어준다면 bbc를 적절히 순치시키는 것으로 끝맺는 것이 더 나았다. 독립적이고 강한 bbc가 영국 정부의 변함없는 입장 이라는 조웰 문화부 장관의 최근 발언은 이러한 노동당 정부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제2야당인 자유민주당 역시, 수신료가 사라지고 장기적으로 민영화하게 될 bbc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고, 강한 bbc의 라이벌인 itv나 채널4, 심지어 시장주의 보수당에 가장 친화적인 위성방송 bskyb까지도 현재의 bbc체제에 큰 불만 없음 이라는 메시지를 내보내면서 데이빗 엘스타인식의 급격한 변화에 일단 고개를 젓고 있다. bbc와 노동당 정부의 갈등을 이용해 bbc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던 보수당수 마이클 하워드가 이런 분위기를 무시할 리 만무하다. 때문에 보고서를 참조할 수는 있지만, 다음 총선에 수신료 폐지를 정책으로 들고나올 계획은 없다는 요지의 발표를 함으로써, 해당 보고서로부터 보수당을 한 발자국 떼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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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국민들은 정부나 정당조직들보다 bbc를 더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허튼 보고서 파문기간 동안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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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란, 여론이 변하는 과정에서 언제든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역시 그렇게 고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수신료 폐지와 bbc분할-민영화 등의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고개를 힘차게 가로 젓지만, bbc를 오프콤의 규제권 아래에 놓는 등의 제안에 대해선 묘하게 유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정책 관련자들의 입장이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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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bbc의 독립 규제기관인 bbc 경영위원회가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예측은 이제 거의 상식이 되었고 그것이 결국 bbc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최소한 지금으로서는, 현대 영국이 탄생시킨 가장 훌륭한 뉴스조직이자 가장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방송기구인 공영방송 bbc에 적대함으로서, 자칫 공공의 적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될지도 모를 위험까지 감수할만큼, 소신(?) 있는 정치인이나 집단은 아직 그리 흔치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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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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