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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pd로서 삶이 햇수로 8년째 접어든다. 그저 반복되는 스케줄과 불면의 밤, 그리고 돌보지 못해 먼지가 수북한 일상들이 밀린 청구서처럼 널브러져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나 싶다. 가끔 힘이 들 때가 있다. 아들 구실, 사람 구실 제대로 하면서 살고나 있는지. 이따금 걸려오는 가족이나 친구들 전화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에게 나는 바쁘다는 말을 반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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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믿는다. 이 일을 하면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들, 작은 감동과 되돌아오는 기쁨들이 존재한다. 힘든 일상을 견뎌내게 하는 일종의 진통제.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띄어쓰기 없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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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이런 pd들의 삶을 오해하곤 한다. ‘친하게 지내는 연예인은 누구냐’, ‘돈도 많이 벌겠다’, 또는 ‘스태프들에게 호령하는 권력의 맛은 어떠냐’ 라는 식의 질문을 던진다. 아마도 그들은 영화나 tv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폼 나게 ‘큐’ 사인을 주는 모습만을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직업이든지 이미지와 실상은 다른 법이다. 하지만 우리 pd들 만큼 외양과 괴리되는 직업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저 새벽 편집기 앞의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한없이 고독하고 쓸쓸한 존재들, 냄새 절은 몸뚱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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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pd들에 대한 이런 일반인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힘을 들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실제로 돈과 권력을 누리고 있는 pd들이 있을까 싶다. 있더라도 부럽지 않다. 오히려 내가 생각하는 문제는 pd가 pd 자신에게 가지는 몇 가지, 하지만 치명적인 오해들이다. 그냥 떠오르는 몇 가지만 이야기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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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카메라가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특정인물의 인터뷰나 기자회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디어 스크럼(media scrum)이란 게 있다. 마구잡이로, 때로는 무례하게 달려든다. 그저 방송용 카메라, 취재용 카메라라는 이유로, 국민의 알 권리를 들먹인다. 물론 촬영하거나 취재할 수 있는 권리는 중요하다. 하지만 권리와 권력을 혼동할 때가 많다고 본다. 최근에도 그런 씁쓸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실제로 다른 팀의 촬영이 미리 약속되어 있던 한 공연장에서 모 pd가 무조건 자신이 촬영을 해야 한다고 막무가내식으로 생떼를 쓰며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카메라를 가지고 올 테니까 알아서 하라고. 권력은 상하의 위계질서 상에서 존재하지만 권리는 권리들 속에서 평등하게 존재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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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악인(惡人)과 악역(惡役)에 대한 혼동이다. 자세히 거론할 필요는 없다. 이미 알고 있다. 흔히 pd들은 타인들에게 악랄하고 예의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오히려 프로그램에 대한 열정과 치열함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제작현장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난관들은 있다. 그리고 모두가 지쳐 포기하려고 할 때도 있다. 그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악역(惡役)일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악인(惡人)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계속 지나온다면 우리의 길은, 흔적은 온통 상처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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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우리의 노동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다. 몇년전 한 pd가 이 칼럼을 통해 지적한 바 있다. 우리 pd들이야말로 자신의 노동에서 오는 ‘소외’와 프로그램에 대한 ‘열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주 특별한 노동자가 아니냐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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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근한 예를 들자면, 열악한 제작시스템이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노동강도와 인간적인 한계를 오직 pd의 사명감과 열정만으로 헤쳐 나가려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 어쩌면 누구보다도 우리 pd들은 칼 맑스(karl marx)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모른다. 그는 노동(work)과 일(labor)를 구분시켜 주었다. 우리의 노동(work)은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활동이며, 단순히 개인적 신념과 사명감만으로 수행하는 일(labor)이 더 이상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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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가 결코 폼 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직업은 아니라고 믿는다. 오히려 그런 시선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제작현장에서 타인들에게 예의를 지키고 싶다. 시쳇말 같지만 지킬 것은 지키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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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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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호/ebs 참여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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