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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학교 졸업하고 군대까지 갔다 오니 밥벌이를 해야 했다. 좋다는 한 증권회사에 어떻게 취직이 됐는데 다녀보니 별 재미가 없었다. 증권회사에서 직원들이 하는 업무 중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따위는 아예 없었던 것이다. 사실 증권회사의 일만은 아니다. 업으로 하는 직장생활에 내가 하고 싶은 일 따위가 있을 턱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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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상 ‘직장 일의 재미없음’에 실망하고 있을 때 눈에 띈 것이 방송 일이었다. fm 방송 듣는 걸 좋아했던 나로서는, 저런 음악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보는 pd라는 일은 할 만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말하자면 일반적인 ‘회사 다니는’ 게 싫어서, 방송사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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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 보니 확실히 증권회사 다니는 것과는 달랐다.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되고 업무 추진 현황이나 실적 보고서 같은 것도 안 써내도 되고, 무엇보다도 ‘프로그램’이라는, 구체적인 실체를 내가 만들어내고 있다는 실감이 있었던 것이다. 프로듀서(producer), 제법 멋진 이름이군, 이라며 철없는 감상까지 갖고 있었을 정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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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이야 있었지만, 어쨌든 pd로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십수년이 꿈같이 지나고, 어쩌다 보니 그만 데스크 자리에 앉아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잘 아시다시피, pd로서는 데스크가 된다는 것만큼 팍팍한 일도 다시없다. 데스크가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일선에서 프로그램을 ‘프로듀스’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생산하는 사람’에서 일개 ‘책상(desk)’으로 신분이 격하된 셈이니 팍팍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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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부장이라는 직위를 받고 한 1년 일을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놀라운 건, 결국 먼 길을 더듬어 다시 옛날의 그 ‘회사원 생활’로 되돌아온 느낌이라는 사실이다. 보고서와 회의와 모니터와 그 모든 ‘책상물림’ 작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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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의 성격을 각인시킬 수 있는 중요한 기획들을 해 내야 한다는 점이 있긴 하지만, 모르는 누군가가 곁에서 내가 일하는 꼴을 지켜본다면 확실히, “응, 이 사람은 대한민국 회사원이군”하고 쯧쯧, 혀를 찰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나로서도 혀를 찰 노릇인 것이, pd가 되려고 방송사에 들어왔는데 어느새 회사원이 되어버린 신세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pd 노릇이란 겨우 십 삼사년을 했을 뿐이니, 인생의 선택이란 것이 이렇게 허무할 수도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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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경력 관리는 확실히, 일반적인 ‘회사원’들과는 달라야 한다. 차장 되고 부장 되고, 넥타이 매고 서류 결재하는 스타일은, pd들의 것이 아니다. 대중과의 접점을 통해 현실 감각을 가져왔다는 것이 pd들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장점은 방송 제작을 통해 다시 그 대중들에게 돌려져야 한다.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형태로 말이다. pd 개인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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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야 아무려면 어떤가. 대(大) pd도 좋고 제작전문 pd도 좋으니, 나뭇가지 모양의 조직표 중간에 끼어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순수한 pd 직종도 보장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십수년 동안이나 영화를 찍다가 드디어 부장이 됐다는 영화감독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pd의 전문성도 제작 현장에서 계속 강화되고 풍부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될 때 pd는 멋진 이름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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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 cbs 편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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