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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얼마 전에 한 시민단체가 주최한 심포지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발제자와 토론자를 포함하여 모두 9명의 패널이 준비한 행사에 귀를 기울이고자 참석한 일반인은 9명이 채 되지 않았다. 패널들이 어떻게 보면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더 자주 얘기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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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심포지엄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것이 공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작은 공론장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9명도 안되는 참가자들 중 몇몇은 인터넷뉴스 기자들이었고, 이 행사의 내용은 그들을 통해 공중에 알려진 것이다. 따라서 이날 논의된 담론들은 사회적으로 유포되고 방송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에 새로운 관념의 층위를 보탠 것이다. 담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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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과 현업 pd들이 토론을 하는 와중에 깊이 깨달은 사실 한 가지는, 누가 담론을 지배하는가하는 것이었다.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매체인 방송과 그 안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들은 어떻게 보면 제작 그 자체에만 매몰된 나머지, 얘기를 만들어 지배적인 것으로 유포시키는 힘 즉 담론의 힘으로부터 멀어진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자. pd들의 담론이탈현상은 확성기를 들고 소리를 치지만, 정작 자신과 방송에 대한 얘기는 속 시원히 얘기할 수 없는 상황과 은유적으로 연관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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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엔 수많은 방송관련 담론들이 존재한다. 방송은 공영적이지 않다, 방송이 저질이다, 방송이 선정적이다, 공정하지 않다 등등…. 수많은 담론 중에 방송의 자기시각은 많이 반영돼 있는 것 같지 않다. 왜 방송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해 온 것일까? 물론 최근에는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의 등장으로 방송이 자신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지만, 지배적인 담론의 차원으로 끌어가기에는 아직도 힘이 벅차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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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힘은 단어의 탄생에서부터 시작된다. 가령 방송의 공영성이라는 화두를 생각해보자. 공영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가장 많은 언설을 관장하는 그룹은 아마 공영성을 전공한 학자일 터이다. 그 학자가 연구한 외국의 공영성 관련 제도, 공영성의 역사 등은 방송을 제작하는 pd들은 물론이고 방송사 경영자들의 사고와 사회적 행동의 반경을 제한하는 범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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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방송현상을 둘러싼 새로운 단어가 탄생할 때마다 마찬가지이다. 즉, 수용자의 접근권을 뜻하는 액세스(access)권이라는 개념이나,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디지털시대의 편재성을 뜻하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등의 개념 등은 이 개념을 만들어내고 이것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사람의 정치적 성향이나 이데올로기적인 정향성을 반영하고 이것이 어느 정도의 실천력을 동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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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둘러싼 수많은 제도적인 실천이나 기술 역시 담론으로 간주할 수 있다면, 지금 방송관련 담론을 만들고 유포하는 것은 방송 외적인 영역이 주도하고 있음을 목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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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송에 대한 담론의 최고 생산자는 신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참고하는 자원들은 수많은 방송관련 단체와 학자, 시민단체, 방송프로그램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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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방송환경의 열악함과 사회적 관계에서 방송이 처한 부조리한 위치 등에 대해 수없이 울분과 분노를 토로했지만, 바뀐 것이 많지 않은 이유는 다른 데에 있지 않다. pd들이 담론 투쟁에서 지배적 담론을 생산하고 유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pd들이 자신들의 손에서 벗어난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환경 아래서 프로그램을 열심히 만들고 ‘프로그램으로 말하려고’ 노력해 온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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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문제는 다시 담론이다. 방송이 방송을 더 활발히 얘기해야 한다. 방송관련 학회나 세미나, 공청회, 심포지엄에 더해 pd들 스스로 공론장을 만들고, 자신의 제작경험이나 방송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언설들이 하나의 조그마한 권력으로 방송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방송 pd들이야말로 이렇게 해서 결정되어진 환경에서 ‘프로그램으로 말해야 하는’ 사람이고, 방송에 가장 정통한 우리 사회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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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들이 다시 담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푸코도 이런 말을 했다하지 않는가. “담론이 권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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