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곡을 찌르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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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곡을 찌르는 질문
[라디오 큐시트] ‘뻔한 답'은 틀에 박힌 질문에서 출발...프로그램 성공 여부는 어디에서 갈리나
  • 박재철 CBS PD
  • 승인 2019.06.10 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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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박재철 CBS PD] 화살이 과녁에 정확히 꽂힐 때 묘한 쾌감이 인다. 질문이 답을 향해 다가가면서 정곡을 찌를 때도 비슷한 감정을 유발한다. 어찌 보면, 화살과 과녁의 관계는 질문과 응답의 관계를 닮아있다.

그러나 세상사, 질문과 답의 일대일 대응만으로 보기에는 복잡다단하다. 틀에 박힌 질문이 뻔한 답으로 향해 갈 때 진부터 빠지는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닐 테다. 오히려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는 것, 그 자체가 이야기를 만든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좋은 이야기가 되려면 무엇보다 질문이 좋아야 한다. 질문에 상응한 답을 못 찾더라도 질문 스스로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있다면 서사는 몰입감을 준다. 몇 편의 특집을 제작하면서 깨달은 것은 특집의 성공 여부는 내 질문이 그 힘을 지니고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5년 전 헌법을 소재로 특집 제작을 할 때도 그랬다. 기획의 첫 단계는 질문 구성이었다. 헌법을 가지고 나는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헌법은 접혀진 책이다. 좀처럼 펼쳐지지 않는다. 헌법은 중요도에 비해 일상적 존재감이 덜하다. 물과 햇빛이 그렇듯. 또한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첫머리로만 기억된다. 고전이 책 제목과 저자로만 읽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듯이.

헌법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좀처럼 펼쳐지지도 않고 존재감도 덜하고 알고 있다는 착각마저 일게 한다. 그래서 묻게 된다. 헌법, 정말 중요한 것일까? 실제로 우리의 삶과 얼마나 밀접한가? 아니, 우리는 도대체 헌법을 왜 알아야 하나?”

이렇게 질문을 던져 놓고 보니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좀 뻔하지 않을까 싶었다. 헌법이 중요한 그럴 듯한 이유는 한둘이 아닐 것이고 그 이유로부터 헌법을 알아야 할 당위를 이끌어 내는 일은 자칫 지리멸렬해질 수 있었다. 거기다 우리네 삶을 규정하는 헌법 조항을 130개 중에서 찾아 몇 가지 실례로 풀어내는 일에는 제작자로서 별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

새로운 질문이 필요했다. 9번의 개정을 겪은 굴곡진 우리 헌법사를 되돌아볼 때 누구나 가질 법하지만 그동안 좀처럼 제기되지 않았던 질문은 무엇일까. 나는 ‘헌법의 가치’보다는 ‘헌법의 무능’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유신정권에서도 헌법 1조 1항과 2항은 바뀌지 않았다. 이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에서도 그 조항은 불변이었다. 그 시대는 공화국의 의미도 주권의 거처도 공허했던 시기가 아니었던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헌법의 내용들, 그런데 누가 헌법의 권위를 신뢰하겠는가.

헌법이 이렇게 선언적이기만 하고 무능력한데 우리는 왜 헌법을 귀히 여겨야 할까. 막연한 의무감이 아닐까. 독재시대에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관공서 팻말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헌법의 이상적인 문구들과 겹쳐지지는 않나. 이렇게 현실과의 엄청난 괴리에도 불구하고 헌법은 왜 금과옥조의 권좌에 앉아 있어야 하나. 우리는 왜 헌법을 알고, 왜 지켜야 하나.

이런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는 과정을 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나의 역량 부족으로 특집은 좌충우돌과 시행착오가 복병처럼 도사린 제작이 되고 말았다. 나의 질문은 결국 과녁에 꽂히는 화살처럼 깔끔하게 답을 찾아 마무리되지 못했다.

취재의 크고 작은 구멍들을 여기서 구구절절 되짚어보기는 낯 뜨겁다. 다만, 취재 중 나의 물음에 수긍이 갈만한 답을 건네준 어느 헌법학자의 말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나의 주요 질문인 ‘헌법의 무능’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우리 헌법에 87년 항쟁 이후에 신설된 조항이 있습니다. 바로 119조 2항 경제 민주화 조항입니다. 권력 구조만이 아닌 경제적 분배 문제를 헌법 조항에 넣은 것은 상당히 진보적인 조치입니다.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반영인 셈이죠. 근데 헌법의 정신과는 달리 빈부 격차는 날로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게 헌법의 문제인가요? 현실의 문제인가요? 성경처럼 살지 않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경의 잘못인가요. 사람의 잘못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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