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말팔초’ 방송사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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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말팔초’ 방송사의 풍경 
휴가 떠난 동료 대타로 매년 라디오 프로그램 맡아보니
떠난 자의 빈자리 크게 만들어도, 대충해서도 안되는 '대타자'의 미덕  
    
  • 박재철 CBS PD
  • 승인 2019.07.31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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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부스의 모습. ⓒ픽사베이
라디오 부스의 모습. ⓒ픽사베이

[PD저널=박재철 CBS PD] 칠말팔초(七末八初)면 대한민국 엑소더스가 시작된다. 한날한시에 태어나지 않았어도 휴가만큼은 알람시계처럼 이때에 맞춰져 있다.

성수기 웃돈의 무게를 지그시 감내하며 여행지 정보부터 폭풍 검색, 순차적으로 숙소와 교통편을 발 빠르게 예약한다. 들뜬 마음인지 바쁜 마음인지 지켜보는 이의 눈에는 구분이 안 간다. 허겁지겁 출근하듯 그렇게 출발한다. 일단 길에 오르면 어떻게든 시작이 되는 게 여행이고 휴가려니 한다. 매번 다른 듯 같은 느낌이다. 

“올해는 이것으로 갈음하자” 가족끼리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휴가 계획은 따로 세운다. 그러면서도 동상이몽 하듯 한 차에 조용히 합승한다. 택일의 이점이 없는 칠말 팔초는 더운 날씨보다는 유치원이나 학교, 학원 스케줄 때문이리라. 

피서(避暑)란 더위를 피한다는 뜻인데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폭염’ 속으로 자진해 들어가는 걸 보면 교육의 힘을 절감한다. 우리나라 교육은 땅값뿐만이 아니라 휴가까지도 지배한다. 

방송사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즈음 대타 물색이 연례행사로 자리 잡힌 지 오래다. 대타(pinch-hitter)는 ‘지정된 타자를 대신해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말하는 야구용어인데, 언제부턴가 모든 영역에서 사용된다. 말해 무엇할까마는 누군가의 자리를 대신해 주는 일은 좀처럼 표가 안 나는 일이어서 꺼리게 마련이다. 

기존 업무에 더해 가욋일이 생기는 셈이니 호의적이기 쉽지 않고, 잘해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노을 물들 듯 자연스레 마음을 물들인다. 프로그램 색깔과 분야에 맞춰 라인업을 짜야 하니 대타 배정을 맡은 데스크 입장에서도 수월찮은 일이다. 

품앗이처럼 상부상조하면 그나마 나으련만, 가만 보면 매번 휴가 가는 사람과 그 자리를 메우는 사람이 압핀에 고정되듯 세트로 정해져 있다. 가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탁하기 미안하고 머물러 일을 받아 하는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계면쩍다.

세상이 결코 공평하지 않음을 이런 소소한 일에서도 확인하게 된다. 비혼주의자들이 돌려받지 못할 부조금을 매번 ‘축 결혼’이라 쓴 봉투에 담을 때의 기분 같달까. 

어찌해 대타 배당이 마무리되면 마뜩치 않은 표정을 감춰가며 “충분히 리프레시하고 와~” 마음에도 없는 덕담까지 건넨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온도계의 수은주마냥 불만지수가 올라간다. 

신입이나 초짜 진행자라면 자신의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입증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동료 제작자의 심사는 좀 더 복잡하다. 기존의 흐름으로 가야 된다는 ‘원칙’과 이참에 내 맘 대로 가보자는 ‘변칙’이 다툼을 시작한다. 어느 정도의 노동력을 투여하면서 대타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가져갈지에 대한 가늠도 들키지 않게 저울질하게 된다.

일찍이 ‘불가원(不可遠) 불가근(不可近)’이라 했던가. 한마디로 어중간한 거리에 서란 말인데, 다년간의 대타 경험으로 미뤄 보건대 대타석에 들어서는 나의 태도는 이를 살짝 비튼 ‘불가성(成) 불가패(敗)’다.

기존 제작자의 자리를 성공적으로 대체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기존 프로그램을 끝 간 데 없이 망치지도 말자는 심정이랄까. 떠난 자의 허전함을 수묵화의 여백처럼 살려줘야 복귀의 환대가 완성된다. (“왜 이제야 왔니?”) 그렇다고 제작자의 빈자리를 너무 크게 만들면 대타자의 수고스러움이 도매가로 산정된다. 땀 흘리고 노임(勞賃) 대신 욕 듣는 케이스다.(“왜 이제야 가니?”) 마라톤으로 치자면 ‘페이스메이커’ 정도의 역할이 대타자의 숙명이지 싶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프로그램의 일정한 흐름을 지속시키다가 기꺼이 빠져주는 자세.    

대타만 할쏘냐? 난간에 매달려 장난치다 떨어지려는 아이의 옷자락을 잡는 심정으로 나 역시, 산적한 업무에서 떠날 시간을 황급히 잡아보지만 매번 그렇듯 헛되이 놓친 빈손이다. 올해도 어김없다. 

“한 세상 떼어 메고/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길이 보전하세로/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중>

애국가 종료 후 스크린에 담길 영화가 그럭저럭 볼 만하길 기대하는 시적 화자의 마음으로 대타할 프로그램 홈페이지를 여기저기 살펴본다. ‘불가성 불가패’만을 되뇌는 칠말 팔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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