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를 탐내는 사람들
상태바
문화재를 탐내는 사람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 1천억원 보상 요구...문화예술품 도난 사건의 가장 큰 문제는 훼손 여부
  • 이은미 KBS PD
  • 승인 2019.08.21 1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에 그슬린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뉴시스
불에 그슬린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뉴시스

[PD저널=이은미 KBS PD] 전시장에 갔다가 작품보다 더 흥미로운 구경을 한 적이 있다. 아니다. 흥미롭게 구경했다고 하기에는 심각한 일이었다. 모처럼 한산한 전시관에서 큐레이터에게 요즘 미술 트렌드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한 중년의 여인이 큐레이터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더니 지하 전시실로 내려가는 것이다. 외모를 보고 사람을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평일 낮에 미술작품을 보러 오는 중년 여성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과 심각한 태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하긴 미술관 오가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따로 있을까.

 1층의 전시작품을 모두 보고 지하에 마련된 전시실로 내려갔다. 아까 마주친 그 중년 여성이 여전히 또 다른 딱딱한 표정의 남성 서너 명과 불상 앞에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걸 보니 뭔가 대단한 고미술품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설명이라도 들어볼 겸 불상 옆의 문화재를 보는 척, 슬그머니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데, 잠시 자리를 비웠던 큐레이터가 깜짝 놀라 또 다른 작품을 보여주겠다며 다른 쪽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알고 보니 그 관람객들은 문화재청 소속 공무원이었다. 그 불상은 오륙년 전 한 사찰에서 도난당한 문화재라고 한다. 이 전시장에서 도난품을 봤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하러 온 것이다. 큐레이터는 웃으면서 “오늘 좋은 구경하시네요”라고 농을 던졌다. 아닌 게 아니라 도난 작품이라고 하니 왠지 영화에서나 보던 구경거리가 생긴 것 같았다. 한 세트로 없어졌던 불상들이 몇 년간 자취를 감췄다가 이제야 하나씩 낱개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부터 갤러리와 박물관은 도난을 당해도 신뢰가 무너질까봐 쉬쉬하는 편이라 수사도 작품 회수도 어렵다고 했다. 

 미술품이나 문화재 절도는 분명한 범죄인데, 낭만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다른 도둑보다 예술적 소양이 있어 보인다고나 할까. 20년간 미술품을 훔쳐 집에서 혼자 감상해온 프랑스인 도둑. 나폴레옹 집권 때 뺏긴 ‘모나리자’를 다시 훔친 루브르 박물관의 이탈리아인 페인트공. 이들의 죄라면 예술을 사랑한 죄밖에 없어 보인다. 아니다, 아니다. 큰일 날 소리다. 필자가 잠시 동안이라도 이런 환상을 갖게 된 것은 영화 <도둑들>이나 <오션스 트웰브> <종횡사해> 등에서 미술품 훔치는 주인공들이 멋져 보인 탓이라고 핑계를 대본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문화예술품 도난 사건은 영화처럼 낭만적이지도, 구경거리 정도로 흥미진진하지도 않다. 절도범들이 훔친 작품은 제대로 보관되지 않고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 장물이라는 것을 속이기 위해 작품의 조성 시기와 소장처가 적혀 있는 부분을 오리거나 긁어내기도 한다. 도난품이 아니어도 작품 원작자의 후손들이 일부러 소장자의 이름이 적힌 부분을 긁어내는 경우가 있다.

KBS <TV쇼 진품명품>을 연출했을 때 접한 의뢰품 중 한 서첩은 조선시대 학자가 쓴 글씨 모음집이었는데, 돈이 궁했던 학자의 후손들이 서첩을 팔면서 작품 일부를 긁어낸 흔적이 있었다. 지워진 부분은 수백년 전 원작자가 지인에게 선물했다는 내용과 소장인의 서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었는데, 조상의 글씨를 판다고 친척들에게 욕 먹을까봐 후대사람들이 인위적으로 훼손한 경우였다. 

 이슈가 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도 이런 식으로 훼손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소장자는 천억원을 주면 팔겠다고 한다. 천억원이라는 금액은 문화재청 관계자가 지나가는 말로 1조의 연구 가치가 있겠다고 툭 던진 것에서 시작된 것 같다. 어떻게 상주본이 현 소장자의 손에 들어갔는지 밝히는 것도 이전 소장자가 사망해 불가능해 보인다.  

 문화재청의 수사가 끝나면 도난품으로 판명된 불상은 어떻게 되냐고 큐레이터에게 물었다. 불상은 환수조치 되고, 중간에 불상을 구입하거나 판매한 사람들은 민사사건으로 법정에서 싸우게 될 것이라도 한다. 그런데 이 분야 법조인들이 적어 그 과정 역시 쉽지 않다고 한다.

법조계뿐만 아니라 방송가에도 문화예술 전문PD는 전무하다. 아니 문화예술 프로그램 자체가 지속적으로 편성되지를 않는다. 문화예술 분야가 비주류이고 남들이 주목을 덜 받아서인지 악용되기 쉽다는 문제도 있다. 힐링을 주기도 하지만 속이기 쉬운 것도 예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예술은 어렵고 문화예술 프로그램 제작도 어렵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