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귀성길에 오른 라디오 애청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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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귀성길에 오른 라디오 애청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생방송’ 맡았지만...뜨거운 청취자들의 반응에 뿌듯하기도   
  • 김훈종 SBS PD
  • 승인 2019.09.12 10: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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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1일 오후 경찰헬기에서 바라본 서평택JC 인근 서해안고속도로 하행선에는 극심한 교통정체이 빚어지고 있다.ⓒ뉴시스(경찰헬기 조종사 = 서울청 항공대 이용길 경감)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1일 오후 경찰헬기에서 바라본 서평택JC 인근 서해안고속도로 하행선에는 극심한 교통정체이 빚어지고 있다.ⓒ뉴시스(경찰헬기 조종사 = 서울청 항공대 이용길 경감)

[PD저널=김훈종 SBS PD] 안녕하신지요. 설에 이어 다시 뵙네요. 올해도 귀성길, 귀경길에 SBS에 주파수를 맞춰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부터 다소간의 푸념과 하소연, 홍보가 대차게 이어지오니, 풍성한 한가위를 맞아 너그러운 마음으로 들어주세요. 

SBS 라디오PD에게 웬만해선 일어나지 않는 일,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음반 가게에서 신보를 구입하는 일이지요. 하루에도 1m씩 쌓이는 CD도 버거운데, 내 돈 주고 음반을 구입하는 일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문 일이랍니다. 도리어 오래된 LP를 사는 경우는 왕왕 있지만요. 

둘째, 일주일 이상의 장기휴가입니다. 보통 프로그램 두어 개씩은 담당하는 SBS 라디오PD들에게 열흘짜리 유럽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렵습니다. 필자만 해도 <최화정의 파워타임> 연출에, <씨네타운 나인틴> <여행본색>이란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프로그램 일정을 조정하고, 미리 큐시트를 작성하고, 노래를 편집해 놓고, 대타 PD에게 각종 진행사항과 큐점은 어딘지, BG는 언제 빼야하는지, 미주알고주알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논문 한 권을 선사해야 하지요. 앓느니 죽는다고, 절로 ‘휴가 안 가고 말지’라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과 추석 쇠기가 있습니다. 설과 추석엔 ‘무조건 생방’이지요. SBS 라디오센터에서 ‘삼대독자라 나는 생방을 못합니다. 차례 지내러 가야해요.’ 혹은 ‘시댁이 꼭 차례를 지내요. 저는 추석 전날엔 부산에 도착해 전을 부쳐야 해요.’ 따위의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답니다. 무려 20년 세월 동안 말이지요. ‘비겁한 변명입니다’라는 배우 설경구의 차진 대사를 듣고 싶지 않은 건지, 라디오PD의 사명감에 젖어서인지, 아무튼 그랬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차례 지내러 내려가 전 부치기 싫었는데 생방송만큼 좋은 핑계가  없겠구나’라는 색다른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아이구! 저도 참 눈치도 없지요. 경남 고성이 고향인 후배에게 설이나 추석 때마다 “형이 대방 해줄게. 마음 편하게 맡기고 고향 내려가”라는 선심을 썼으니 말이지요. 그럴 때마다 마음만 받겠다던 후배 녀석이 참 기특했는데, 갑자기 <유주얼 서스펙트> 엔딩씬 마냥, 그 모든 명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머릿속이 시원하게 정리됐습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엔 생방송을 진행합니다. 염치없지만, 부탁드립니다. 낮 12시엔 <최화정의 파워타임>으로 주파수를 맞춰주세요. 차례를 지내본 지 언제던가. 떡국을 씹어본 지 언제던가. 장탄식이 나오려다, 쏙 들어가는 이유는 유독 명절에 라디오를 많이 듣기 때문입니다.

명절 생방송을 마치고 나면 사돈에 팔촌까지 연락이 종종 옵니다. ‘최화정DJ는 어쩜 목소리가 그대로니!’ ‘네가 담당하는 프로그램은 왜 이렇게 광고가 많아? 광고 듣다가 시간 다 가더라.’ 평소 라디오가 있는 줄도 모르던 청취자들도 지루한 차 안에서 주파수를 맞춰보게 됩니다. 한우나 홍삼선물이 쏟아지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막히는 길 위에서 공감해주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그리워서 라디오를 켜는 것이겠지요.  

“화정 언니. 남편이 음복하다 만취해서 여섯 시간 내내 독박 운전 중이에요. 남편 좀 혼내주세요.” “아내가 면허가 없어요. 의정부에서 남원까지 운전하고 있습니다. 길은 왜 이렇게 막히는지, 졸려 죽겠어요. 신나는 노래 부탁이요.”

김영민 교수의 명칼럼 제목처럼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목 놓아 외치고 싶은 청취자들이 많으실 겁니다. 대관절 추석이 뭐길래, 이 긴 시간 코피 터지게 운전하며 고향을 찾아가는 걸까요.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어차피 가는 길,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드린다는 보람에 꾸역꾸역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 추석도 쉬지 못하시는 기차 기관사, 소방관, 경찰관, 톨게이트 직원, 편의점 직원, 의사, 간호사 분들에게 ‘파이팅’을 외쳐드리고 싶네요. 

추신. 휴게소에서 ‘소떡소떡’과 핫바 꼭 챙겨드시구요, 마음의 양식도 쌓으시지요. 졸저 <어쩐지 고전이 읽고 싶더라니>가 나왔습니다. 따끈한 신간입니다. 여기서 책장사를 하려니 낯이 뜨거워지지만, 워낙 좋은 책이라서요.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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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대한민국국민이다 2019-09-13 00:29:19
청와대가 감성마케팅을 그만 둘 때가 됐다.
지금 나라가 대통령이 라디오에 대고 이런 소리나 할 상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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