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는 타인, 참을 수 없는 불편함
상태바
선 넘는 타인, 참을 수 없는 불편함
OCN ‘타인은 지옥이다’, 낯선 고시원에서 만난 경계 없는 사회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19.09.20 10:5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OCN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OCN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는 웹툰 특유의 내려 보는 구조가 갖고 있는 긴장감이 압권인 작품이다. 스크롤을 내리면서 갖는 다음 장면에 대한 불안과 긴장은 <타인은 지옥이다>에서 등장하는 고시원의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더욱 증폭된다. 

고시원이라는 공간은 타인과의 경계가 애매하다는 점 때문에 불편함을 준다. 가만히 있어도 옆방 사람의 숨소리가 들리는 이 곳은, 구획은 되어 있으되 여러 사람들이 함께 누워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더군다나 옆방에 누워 있는 이들이 전자발찌를 찬 강간범이거나 조직폭력배이거나 기분 나쁜 웃음을 습관적으로 터트리는 이상한 쌍둥이라면 어떨까. 말 그대로 ‘지옥’이 아닐 수 없을 게다. 

사실 이 공간이 부여하는 ‘경계 없는 불편함’이라는 상징성은 꽤 의미심장한 면이 있다. 고시원이라는 공간으로 극화되고 상징화된 것이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도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이면 짐짝처럼 타인들과 몸을 다닥다닥 붙어 있어야 하는 ‘지옥철’이 그렇고, 회사에서 ‘가족’이니 뭐니 하며 무시로 경계를 넘어 들어오는 불편한 상황들이 그렇다. 

이런 경계를 넘어오는 일들은 때론 끔찍한 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하는데,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은 단적인 예다. 남녀가 함께 사용하는 화장실은 불편함에 머물지 않고 범죄의 공포까지 드리운다. 

OCN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OCN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그래서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OCN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는 사실 초반부터 너무 잔혹한 장면들이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물론 후반부에 이르면 이 고시원의 실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지만, 직접적으로 잔혹한 장면을 보여주기보다는 그 불안감과 불편함을 전달하는 게 이 드라마의 메시지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대신 <타인은 지옥이다>가 고시원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사회의 이야기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극 중 윤종우(임시완)가 다니는 선배 회사의 이야기를 보다 전면에 드러내면 메시지가 훨씬 더 풍부해질 수 있다.

실제 <타인은 지옥이다>는 윤종우의 선배 신재호(차래형)가 뜬금없이 윤종우의 여자친구를 대상으로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을 하는 모습을 통해 이런 인물들이 고시원의 살인마들과 뭐가 다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신재호가 윤종우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 사적으로는 선후배 관계지만 공적으로는 회사 사장과 직원이라는 그 미묘한 관계를 설정해놓고 그 선을 넘어야할지 말아야할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상황이다. 가깝다고 느껴 선을 넘으면 신재호는 자신이 사장이라는 걸 드러내며 “어디다 대고 형이야?”하고 되묻고, 그래서 사장님이라고 호칭을 바꾸면 “편하게 하라”는 식으로 윤종우를 불편하게 한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확실한 선이 없을 때 생기는 불편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 회사 선배라는 박병민(김한종)은 새로 들어와 관심을 받는 윤종우를 경쟁자처럼 여기며 업무를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모른다고 몰아세우는 방식으로 지켜야할 선을 넘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윤종우가 타인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욕설을 하는 상상을 하는 건, 그 역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에게 타인들은 지옥이지만, 그 역시 타인들에게 지옥이 되어간다. 존중 없는 관계가 만들어내는 악순환이다.

사회적으로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선을 지키는 태도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 먹고 살기 힘들어 생존이 우선이던 시절에 경계 따위는 전혀 존중되지 않았다. 심지어 타인마저 ‘우리가 남이가’라며 무시로 경계를 넘어오는 무례도 용인됐다.

하지만 합리적인 관계와 개인이 소중해지는 가치관의 변화 속에서 인간관계의 적당한 거리감과 존중은 중대한 사안이 될 수밖에 없다. 타인이 지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강희 2019-09-24 22:52:45
칼럼 너무 공감되네요. 항상 타인은 지옥이다 웹툰과 드라마 보면서 느꼈던 부분을 정확히 긁어주신 느낌이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