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피사체를 담는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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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피사체를 담는 사진관
'한겨레' 사진기자 출신 임종진 작가가 기획한 '나는 간첩이 아니다' 사진전
  • 이은미 KBS PD
  • 승인 2019.11.07 12:1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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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인 김순자 할머니가 아이들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 ⓒ이은미
1979년 '삼척고정간첩단' 사건에 연루됐다가 2013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김순자 할머니가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나는 간첩이 아니다' 전시회에서 관람하러 온 아이들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  ⓒ이은미

[PD저널=이은미 KBS PD] 그를 처음 만난 것은 6년 전, KBS <문화 책갈피>를 제작할 때였다. 로버트 파카의 사진전을 다루게 되었는데 한국의 종군기자를 찾다가 ‘임종진 기자’를 알게 됐다. 그는 이미 <한겨레>를 퇴사한 후였다. 강북의 작은 빌라를 사무실로 사용하면서 일반인들에게 사진촬영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사진관 이름도 ‘달팽이 사진관’. 종군기자라면 총알도 피해 다니고 로버트 카파처럼 사교성과 허세도 적당히 있을 줄 알았는데, 웬 달팽이람. 

  그 당시에도 문화프로그램은 가난했다. 미술 코너를 격주로 제작해야했고, 연예인 출연자의 스케줄 때문에 정해진 시간 내에 촬영하려면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임종진 작가는 말도 느릿느릿, 사진 찍는 과정도 느렸다. 속으로 ‘아...빨리 작가님이 MC에게 사진 잘 찍는 법을 알려 줘야, MC가 사진 한 컷을 짠하고 찍는 것으로 코너가 결말을 맺는데...’, ‘아, 여기서 이 멘트 나와야 하는데...’ 급한 마음을 몇 번을 억누르다가 참을 수 없어 임종진 작가에게 슬며시 물었다. “그런데 사진은 언제 찍나요?” 

 그의 대답은 예상을 깼다. 오늘 사진을 찍어야 하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그는 사진보다 대화하고 친해지는 과정을 더 중요시했다. 당시에는 사진 붐이 불어서 선유도나 대학가를 가면 출사 나온 사람들이 많았고, 노점상을 하는 노인들이나 삶의 애환을 담은 흑백 사진을 찍는 것이 트렌드였다.

필자 역시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사진동호회에 가입했을 정도니까. 카메라 장비를 구매하고, 렌즈를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자랑이었고, 출사 가는 것이 멋이었던 때. 그런 때에 오히려 임종진 작가는 도둑 촬영하듯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피사체에 대해 애정도 없고 친밀감도 형성되지 않았는데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무례한 것이라고 했던 말, 촬영 자체보다 과정을 강조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결국 한나절 임종진 작가를 따라다녔지만, 그가 사진을 찍는 장면은 하나도 담지 못했다. 오히려 작가가 포장마차 아줌마, 택배 아저씨, 어설프고 낡은 카메라를 가지고 온 수강생들과 느릿느릿 이야기하는 모습만 많이 담았다. 그와의 동행은 애초에 생각했던 프로그램 코너의 결말을 바꾸게 만들었다. MC가 나름대로의 사진을 찍으며 마무리 하는 것에서, 결국은 사진 한 컷도 찍지 못하고 다시 가방을 싸는 것으로...물론 코너 마무리를 바꾸기 전에 MC와 촬영감독과 함께 내 생각의 변화를 이야기했는데, 모두 동의해줬고 지금도 ‘현장의 느낌’대로 결론을 수정한 것은 잘했다는 생각이다. 

오는 17일까지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리는 '나는 간첩이 아니다' 포스터.
오는 17일까지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리는 '나는 간첩이 아니다' 사진전 포스터.

그랬던 그가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장은 구 남영동 대공분실, 현재의 민주인권기념관이다. ‘나는 간첩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오는 17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인데, 간첩 누명을 쓰고 감옥 생활을 했던 5명의 70~80대 어르신들이 찍은 사진을 전시했다. 작가마다 두 개의 공간을 채웠다. 첫 공간은 고향의 밭이나 동네 우체국, 비행기에서 찍은 구름 사진, 손주들과 함께 하는 평화로운 일상의 사진이 걸렸다. 두 번째 전시 공간은 과거에 고문을 받던 남영동 대공분실의 창살, 계단, 서대문 사형소처럼 어두운 사진들로 채워졌다.  

 한 인물의 사진 작품이 상반된 분위기로 나뉘는 것을 보고 궁금증이 생겨, 사진 설명을 읽으며 다시 전시실을 돌았다. 5명의 작가들 중에는 가족이 간첩 조작사건으로 연루되어 사형당하거나 수감생활을 한 분들도 있다. 사업가부터 유학생, 주부, 직장인까지 그냥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10개의 방을 다 보고 비디오 영상이 나오는 작은 방이 있어 잠깐 의자에 앉아 쉴 참이었는데, 먼저 와 계셨던 한 할머니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바로 간첩으로 누명을 쓰고 감옥생활을 김순자 할머니였다. 나이도 우리 친정엄마의 언니뻘 되고 말씀도 조곤조곤 잘 하시는, 그냥 길에서 마주치는 보통의 할머니다. 그런 보통의 할머니가 피해자라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하긴 피해자라고 해서 겉모습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선입견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우리의 대화 내용을 듣던 중학생들이 할머니 얘기를 같이 듣고 싶다고 해서 학생들에게 공간을 양보했다. 

 시대가 그나마 좋게 바뀌고 있어서인지 억울했던 일들은 하나씩 밝혀진다. 그만큼 이제는 억울했던 사연들이 예전만큼 이슈도 안 된다. 아무래도 주제가 무겁다 보니 전시회 관객도 많지 않았다. 임종진 작가에게 전시회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처럼 오랫동안 그분들의 이야기들 들어주고,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고문의 기억을 덜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을 것이다. 어르신들에게 카메라를 건네면서 온오프만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프레임의 구도도, 데드라인도 중요하지 않다. 임 작가가 ‘달팽이 정신’으로 그 분들과 사진을 찍으러 다녔을 것을 상상해본다.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제작현장에서 나는 또 사람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러다가 싫은 소리를 듣고, 영혼없는 사과를 하고는 또 다시 렌즈를 다른 방향으로 튼다. 다음 촬영 현장에서 나는 달팽이 정신의 미학을 발휘할 수 있을까. 왠지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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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범 2019-11-08 02:51:53
재밌게 읽었습니다.

정구영 2019-11-08 14:07:18
로버트 파카X→로버트 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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