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언론개혁 그리고 물 타기 - 국정감사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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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흔히 부부싸움에 결론이 안 나는 이유는, 한 쪽이 어떤 문제를 제기하면 다른 쪽에선 그에 대해 대답하지 않고 그냥 “그럼, 당신은 뭘 잘했어?”하며 또 다른 문제를 들고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토론이 이뤄지고 생산적이 논쟁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문제 설정(problematique)’이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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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토론프로그램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이러한 ’문제설정‘에 사회자나 토론 참가자들이 집중하면서 곁가지로 흐르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토론 상대자가 주제와 다른 문제를 들고 나옴으로써 논점을 흐리고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경우 토론프로그램은 중구난방이 되는데, 이를 ’물 타기‘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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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칠레의 대표적인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의 <뮤직 박스>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아버지가 과거 나치 활동으로 여러 사람에게 고소를 당하자 살아남은 나치 세력들이 고소인들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증거들을 딸에게 제공한다. 결국 딸의 양심적인 결심이 없었다면 아버지의 파렴치한 잔학 행위들은 영원히 은폐될 상황에 이른다. 부끄러운 과거를 덮고 부조리한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 기득권자들이 잘 쓰는 수법이 바로 ‘물 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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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질곡인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정통성을 세우자는데, “그럼 네 아버지는 친일 안 했냐?”며 물 타기를 한다. 사회가 변해야한다고 말하면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비리를 들춰내어 논지를 흐린다. 앞의 논지와 뒤의 사항은 분명 다른 영역임에도 둘을 섞어서 결국 앞의 주장을 희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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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언론개혁의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 근본 취지는 몇몇 언론사 소유주가 실질적인 편집권에 영향을 미쳐 여론의 흐름을 왜곡하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의사소통에 위해(危害)를 가져오는 언론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른바 ‘방송개혁’ 이야기가 나왔다. 신문개혁을 하려면 방송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영방송을 축소하고 민영화해야 ‘친여’, ‘어용’ 방송이 줄어들거나 없어진다고 한다. 그리하여 편집권의 독립과 민주적 의사소통이라는 논점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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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과거 정권의 압력이 방송사 속속들이 미치던 시절, 그 때 tv에 얼굴을 내밀고, 그 때 방송을 좌지우지하던 사람들이 지금 ‘방송개혁’을 소리 높여 외치는 모습을 보자면 차라리 연민이 앞선다. 그렇다고 ‘당신들은 깨끗한가?’라며 물 타기를 할 생각은 없다. 또한 87년 민주항쟁 이후 만들어진 pd연합회나 언론노조의 방송독립을 위한 노력, 관제사장 거부투쟁으로 시작된 90년 4월 방송민주화운동, 제작자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장치인 편성위원회를 둘러싼 99년 방송법 파업 등에서 흘린 땀과 희생에 대한 역사적 안목을 가져달라고 요구할 생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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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언론개혁의 문제 설정을 제대로 해달라는 말이다. 우선 시민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언론개혁을 논의하고, 이후 방송 구조에 문제가 있다면 다른 차원에서 논의를 하면 된다. ‘신문을 건드리려면 방송도 건드려라’ 아니면 ‘이대로 그냥 넘어가자’는 식의 물 타기는 이 사회 기득권 세력의 구태의연한 자기방어 수단으로 비춰질 뿐이다. (나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물 타기’와 ‘인신공격’의 전형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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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기획의도, 즉 문제 설정이 명확해야 한다. 필자가 프랑스 대학에서 논문을 쓸 때도 지도 교수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문제 설정(problematique)이다. 이 문제설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건 교육을 잘못 받았기 때문이거나 선거전이나 정치공작에서 사용되는 ‘물 타기’ 수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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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kbs 결산감사에서 미숙한 토론 진행자의 교체 건으로 일부 국회의원과 신문이 문제를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 설정에 미숙한 진행자는 토론에 치명적이고 패널 또한 마찬가지다. 다양한 이해집단들이 정책적인 문제설정과 합리적 토론에 임할 때, 우리 사회는 한층 더 성숙해질 것이다. 이제 국정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국감에서 다루어질 언론개혁 문제에서도 관련 당사자들의 정확한 문제 설정과 수준 높은 토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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