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대여한 미술품에 달라진 거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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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소유’ 꿈꾸다가 시선 돌린 ‘미술품 렌털’ 

[PD저널=이은미 KBS PD] 여성의 관심사는 세월이 흐르면서 옷, 가방, 그릇, 보석 그리고 그림 순서로 쇼핑 위시리스트가 바뀐다고 했던가. 스무 살이 되고 아르바이트와 취업으로 경제 활동을 한 이래로, 나의 쇼핑 목록은 이 말에 꼭 들어맞게 변해 왔다.

작년은 그 마지막 단계인 ‘그림 구입’에 꽂힌 한 해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른들의 말이나 항간에 떠도는 말이 인생의 단계 단계마다 딱딱 들어맞을 때면 나도 별 수 없는 우주의 한 점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진다. 하지만 ‘그림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삶을 즐길 정도가 되었고, 인생의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징표가 아니겠는가. 불혹이 넘어 인생의 ‘단계’ 혹은 취향의 ‘레벨’이 달라지는 느낌이다. 

 “나 올해는 그림 살 거야”라고 말하면 종종 미술관을 같이 다니던 친구들은 “오오”라고 놀란다. 잘 나가는 골드미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워킹맘 친구들 중에서 아직까지 모조품이 아닌 미술작품을 산 친구는 한 명도 없다. 휴대할 수 없고, 집에 걸어두고 혼자만 봐야하는 취미라니. 요즘 말로 ‘플렉스(Flex: 뽐내거나 과시한다는 뜻의 최신 유행어)’하지 않은가.

 한동안 ‘나를 위한 제대로 된 선물’을 미술 작품으로 하려고 방송 한 회, 한 회 제작을 마칠 때마다 보상심리에서 옥션이나 아트페어 정보를 찾아봤다. 하지만 작품 구경을 하면할수록 눈은 높아졌고, 마음에 드는 작품은 아껴 모은 용돈의 수십 배 아니 수천 배를 넘었다. 게다가 나의 첫 그림이라고 생각하니 이리재고 저리재고 하느라 도저히 결정할 수가 없었다.

한 경제학자가 가난하면 합리적 선택을 하기 위해 많은 정보를 모으고 여러 가지 가상의 시나리오를 생각한다고 하더니, 작년 가을은 그렇게 그림을 소유한다는 행복한 고민과 내가 모은 돈으로는 그림을 사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슬픈 현실을 직시하며 전시회를 다녔다. 그러다가 결국 집안에 일이 생겨 모은 돈을 흔적도 없이 써버렸다. 그래, 집도 좁은데 그림은 무슨. 아직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게 되면, 그때 미술 작품을 사는 것으로 미뤘다. 일 년간 계획했던 나의 프로젝트는 그렇게 끝났다.

집에 그림 걸기는 그렇게 지나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우연히 인터넷에서 ‘그림 렌털 비즈니스’ 광고를 보게 됐다. 한 달 커피 값을 절약하면 그림을 일정 기간 동안 개인 집이나 사무실에 걸어 놓을 수 있다. 많게는 하루에 다섯 잔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바로 필자다. 

커피도 마시고 그림도 렌트하면 이것은 합리적인 소비가 될 것인가. ‘내 것’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매달 일정 금액을 내는 것이 이성적인 판단일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일단 질렀다. 소유할 그림을 결정할 때는 그렇게 망설이고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빌리는 그림을 고를 때는 과감해졌다.

담당 큐레이터가 추천해 주는 작품들 중에서 초록색 이미지가 눈에 확  띄는 25호 크기의 작품을 골랐다. 어차피 빌리는 건데, 거실 크기를 고려하지도 않고 내 마음 가는 대로 선택했다. 큐레이터가 보내주는 작품 설명은 건너뛰었다. 어차피 석달 동안 두고두고 볼 텐데, 전문가들이 쓴 추천사나 작품 설명보다는 원초적으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석달간 대여한 미술품이 집 거실에 걸렸다. ⓒ이은미
석달간 대여한 미술품이 집 거실에 걸렸다. ⓒ이은미

그림을 고를 때는 설레던 마음이, 막상 작품 설치하는 날에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집도 좁고 살림살이로 어수선한데 설치기사와 큐레이터가 어떤 생각을 할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어수선한 살림들을 부끄러워 하니, 큐레이터가 다들 이러고 산다고, 그림을 설치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집도 많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줬다. 다들 사는 게 똑같구나 하는 안도감과 문화예술의 저변이 확대된다니 반가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이렇게 해서 집 거실에 걸린 첫 그림은 이용석 작가의 <정원-꿈 13-9>이다. 초록색 이미지에 코끼리, 낙타 등의 동물이 있고, 아래쪽에는 동양의 불꽃을 상징하는 듯한 형태가 자리잡고 있다. 자세히 보면 동양화에 가깝지만, 그림 전체를 보면 동화 같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접했더라면 가까이 다가가서 어떤 재료를 썼나, 제목이 뭘까, 무엇을 나타내려고 했을까 적극적으로 관람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집에 그림을 들여 놓으니 언제든지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감상하는 태도가 느슨해졌다. 그 느슨함이 여유와 환기를 주었다. 부엌을 오갈 때에나 작은 방을 청소할 때, 식탁에서 밥을 느릿느릿 먹는 딸아이에게 잔소리를 하려던 찰나에도 약간만 시선을 돌리면 보이는 나의 첫 초록색 그림. 거실 벽에 걸린 그림은 수시로 내 가시영역 안에 포착되었고, 단 몇 초라도 일상과의 단절을 선물하고 있다. 그 단절감이 주는 만족감이 크다. 

솔직히 말하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할만한 고상한 취미를 갖고 싶었다. 그림을 소유한다는 것은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술 취향보다는 인테리어를 하고 싶은 목적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림을 걸어 놓으니 내 스스로가 즐기고 있었다. 3개월 후 이 그림을 다른 누군가에게도 떠나보내야 할 때가 생각보다 금방 올지도 모른다. 소유 대신 잠시 빌린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완벽한 내 것이 아니기에 볼 때 마다 순간순간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지금도 또 한 번 ‘나의 첫 그림’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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