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빈 행적 캐는 언론, 성범죄 본질 뒷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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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신상 공개 보도 이후 '댓글' '성적표' 들추는 보도 쏟아져
"가해자 강력 처벌과 재발 방지 등에 집중하는 보도 필요해"

SBS 23일 8시 뉴스 '[단독] ‘박사방’ 운영자 신상 공개… 25살 조주빈' 리포트 화면 갈무리.
SBS 23일 8시 뉴스 '[단독] ‘박사방’ 운영자 신상 공개… 25살 조주빈' 리포트 화면 갈무리.

[PD저널=박상연 기자]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피의자를 악마화하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언론이 가해자를 괴물로 묘사하는 보도에 집중하면서 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심각성과 범죄 예방 등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세)의 신상은 24일 서울경찰청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의 결정이 나오기 하루 전에 언론 보도를 통해 먼저 알려졌다. 지난 23일 단독으로 조주빈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한 SBS <8뉴스>의 보도가 방아쇠가 됐다. 

SBS는 ’[단독] ‘박사방’ 운영자 신상 공개… 25살 조주빈‘에서 조 씨의 대학 생활과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한 동료의 인터뷰를 통해 조 씨가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집중했다. SBS는 ’중대한 피해‘ ’국민 알 권리‘ 등을 신상공개 이유로 들었지만, 경찰의 신상정보 공개 결정 하루 전에 보도할 가치가 있었는지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이번 SBS 신상공개 보도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범죄 예방 등의 보도 목적에서 나온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며 “이번 n번방 사건이 워낙 심각한 만큼 언론은 강력 처벌과 재발 방지 등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SBS가 조씨의 신상을 공개한 이후 다른 언론도 앞다퉈 조씨의 행적을 쫓는 보도를 내놨다. 24일 다수의 조간신문도 조씨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면서 조씨의 ‘보육원 봉사활동’ ‘사기행각’ 등을 들췄다. 

<조선일보>는 24일 포털 사이트에 송고된 온라인 기사 <[단독] 고교생 조주빈의 댓글 “아동 음란물, 걸릴 확률 낮아요”>를 통해 조씨가 중‧고교생 시절 네이버 지식인에 쓴 댓글을 추적했다.

같은날 온라인판 <국민일보>는 <“조주빈, 일베 회원 맞아… 말 많았던 놈” 고교 동창 증언’>에서 조씨가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 이용자였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내 소문을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전문대 다닐 때 평점 4.17 우등생> 기사에서 대학 시절 학점을 들며 조 씨가 얼마나 “평범한 학생”이었는지를 강조했다. 조씨의 이중성을 드러내거나 평범한 외모 뒤에 감춰진 범죄자의 모습을 부각하는 보도다. 

3월 24일 '조주빈'의 이중성을 부각하고 개인을 악마화하는 듯한 기사 제목들. ⓒ PD저널
3월 24일 포털 뉴스 검색 화면. '조주빈'의 이중성을 부각하고, 사안과 무관한 사생활 정보 등을 강조한 기사들. ⓒ PD저널

언론이 조 씨의 이중성을 부각할수록 'n번방 사건'의 심각성과 처벌 구체화 등의 논의는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부교수는 “성범죄 가해자를 부각하는 보도는 결과적으로 가해자의 내러티브만 만들어준다”며 “디지털 젠더폭력과 관련된 너무나 일상화된 문화적 차원의 문제를 ‘가해자가 악마다’는 식의 문제로만 보게 한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이 24일 발표한 ‘n번방 보도’ 관련 긴급지침에서 “성범죄는 비정상적인 특정인에 의한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며 “‘짐승’, ‘늑대’, ‘악마’와 같은 표현은 가해 행위를 축소하거나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타자화하여 예외적 사건으로 인식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최진주 언론노조 성평등위원장은 “‘가해자가 어떤 학생이었다더라’ 같은 신상털이식 보도는 한 개인에 천착함으로써 성범죄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며 “이번 긴급보도지침을 빨리 내려보낸 이유도 언론 보도 방향을 성범죄 구조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현장 기자와 간부 사이에 젠더감수성 격차, 기사를 보는 관점 차이 등을 줄이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김수아 교수는 “디지털 문화에서 성을 재화로 삼는 산업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디지털 폭력을 사소한 폭력으로 치부하고 있는 현행법의 문제 등을 적극적으로 보도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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