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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3 13:50
  • 수정 2020.05.27 11:20

실버버튼에 도전한 KBS 신입 PD “유튜브 세계 만만치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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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 인사이트-시청률에 미친 PD들’, 10개월 동안 유튜버 체험한 정용재 PD 
“유튜브 문법 익숙한 세대 늘었지만 무작정 따라갈 수 없어...PD 체험형 프로그램 포맷화 바람”    

지난해 7월부터 10개월간 유튜브 채널 '용튜브'를 운영한 정용재 KBS PD.
지난해 7월부터 10개월간 유튜브 채널 '용튜브'를 운영한 정용재 KBS PD.

[PD저널=박수선 기자] 유튜브가 콘텐츠를 장악한 시대, TV가 설 자리는 어디일까. KBS <다큐 인사이트-시청률에 미친 PD들>은 이 존재론적 질문에서 출발했다. 

지난 21일 방송된 1부 ‘관종시대’에서 스스로 ‘관종’이라고 소개한 KBS 입사 2년차 정용재 PD는 조영중 PD와 유튜브 구독자·조회 수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왜 사람들이 TV는 안 보고, 유튜브만 보는지 ‘지피지기’ 정신으로 유튜버 체험에 나선 것이다. ‘실버버튼을 받겠다’는 호기로운 목표를 세운 정 PD는 브이로그, 공부법, 뷰티 등 유튜브의 온갖 장르를 섭렵하며 고군분투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구독자 3만명을 모은 정 PD는 육아 콘텐츠를 내세운 조 PD와의 승부에서는 이겼지만, 실버버튼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22일 KBS 연구동 사무실에서 만난 정용재 PD는 “엉망인 영상도 몇십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걸 보면서 ’내가 하면 저것보다는 잘 나올 텐데‘하는 망상이 있었는데, 막상 해보니 이 세계가 만만치 않았다”고 유튜버 체험 소감을 전했다. 

 <시청률에 미친 PD들>의 아이디어는 지난해 방송된 <회사 가기 싫어> 연출 PD들끼리 저조한 시청률을 놓고 대화하다가 튀어나왔다. 조영중 PD의 제안에 다섯 쪽짜리 기획안을 작성한 정 PD는 입사 2년차에 프로그램 공동연출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하지만 신입 KBS PD와 유튜버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었을 정도로 10개월 동안의 유튜버 체험은 녹록지 않았다. “유튜버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는 그는 이번 체험을 통해 유튜브에 대한 시선도 달라졌다고 했다. 

정 PD는 “(유튜브에서) 엑기스만 빼오겠다는 발상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돌아보면서 “휘발성이 강한 유튜브와 달리 방송사는 시간을 들여 콘텐츠를 만드는 길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KBS PD들이 쓴 ‘유튜브 보고서’의 결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 PD는 “PD가 카메라 뒤에 있는 것도 좋지만, 앞에 나와서 프리젠터 역할로 제작자의 고민을 직접 녹여내도 좋을 것 같다”면서 “앞으로 기회가 되면 PD가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포맷화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KBS '다큐 인사이트-시청률에 미친 PD들'. ⓒKBS
KBS '다큐 인사이트-시청률에 미친 PD들'. ⓒKBS

체험형 다큐는 KBS에서 좀처럼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인데, ‘시청률에 미친 PD들’ 기획 배경이 궁금하다.   

지난해 <회사 가기 싫어> 끝 무렵에 선배들과 술자리에서 대화하다가 나온 기획이다. <회사 가기 싫어> 시청률이 왜 안 나올까 푸념을 하다가 ‘계급장’ 떼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보면 어떨까 의견이 나왔다. 마침 <KBS 스페셜> 기획안 공모가 떠서 선배가 기획안을 써보라고 해서 냈는데, 덜컥 됐다. 당시에는 동기들에게도 자랑도 하고 엄청 설레었다.  

직접 유튜버로 활동해보니 어땠나.
 

입사 전부터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영상을 올릴 수 있는 유튜브 개인 채널을 열어보고 싶었다. 보기에 엉망인 영상도 몇십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걸 보면서 ’내가 하면 저것보다는 잘 나올 텐데 하는 망상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이 세계가 만만치 않았다. 로고도 직접 포토샵으로 만들고, 기획, 촬영, 편집, 썸네일 제작까지 혼자 하다보니 일주일에 영상 하나 올리는 것도 버거웠다. 신입 PD에게는 제작 연출의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데, 유튜브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할수 있으니까 그래도 초반에는 재미있었다.   

'용튜브' 구독자 수가 3만명대로 급격하게 증가한 계기가 있었다. 

‘지인 찬스’도 다 써버리고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을 때 BJ·유튜버로 활동하는 양팡을 만났다. 취재차 만난 것이었는데, 양팡의 라이브 방송까지 출연했다. 양팡 채널 출연 이후 혼란을 겪었다. 양팡의 라이브 영상에 남긴 댓글을 타고 양팡 채널 구독자들이 유입되면서 구독자수가 하루아침에 3만 명이 된 것이다. 이 때부터 댓글이 미친 듯이 달리는데, 다음 영상 언제 올라오냐는 글에 압박감을 많이 받았다.

지상파 PD 타이틀을 걸고 시작한 방송이라서 부담이 더 컸을 것 같다. 

‘지상파 PD보다 웬만한 유튜버가 더 영상 더 잘 만든다’는 말이 나오면 회사에도 누를 끼치는 것이니까. 게다가 우리 프로그램이 액자식 구성이라면, 액자도 만들어야해야 하고 액자 안에 담긴 그림도 그려야 하는 역할이었다. 

양팡 유튜브에 출연한 정용재 PD의 모습.
양팡 유튜브에 출연한 정용재 PD의 모습.

유튜브 성공 비결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나.   

유튜브에서 성공하는 콘텐츠가 무엇인지를 알면 신이다. 100만 유튜버들에게 성공 비결을 물었더니 모두 모른다고, 운이 좋았다고만 답했다. 두 가지 요소가 있긴 하다. 첫 번째는 성실성인데, 유튜브는 '얼마나 버티느냐'의 싸움 같다. 1일 1영상을 꾸준하게 올릴수 있어야 한다. 성공한 유튜버 중에서도 영상 하나가 터져 구독자들이 나중에 유입되는 채널이 많다. 그리고 타고난 끼도 있어야 한다. 유튜버에 특화된 재능은 나를 얼마나 드러낼 수 있느냐인 것 같다.

초반에 '유튜브에서 엑기스만 빼오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실현 가능한 계획이었나.  

엑기스를 빼오겠다는 발상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었다. 유튜브 콘텐츠는 휘발성이 너무 강하다. TV와 다르게 하루살이 콘텐츠가 많다는 게 유튜브의 특징이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목인데, 반면에 <차마고도> <순례> 같은 다큐멘터리는 다시 보는 분들이 있다. 기성 방송사는 시간을 들여 콘텐츠를 만드는 길 밖에 없다고 본다. 

유튜브의 문법이 익숙한 세대가 늘고 있다. ‘지상파 감성을 버려야 한다’는 선배 유튜버 양팡의 지적은 PD 입장에서도 유효한 거 아닌가.  

유튜브를 많이 보는 세대에겐 유튜브 특유의 빠른 호흡과 편집이 익숙하다. 그렇다고 지구의 리듬을 추적한 <23.5>같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유튜브처럼 초단위로 장면을 자를 수는 없다. 양팡 유튜브도 나름의 재미가 있고, <시사직격>도 나름의 재미가 있는 것이다. 재미를 느끼는 미각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정용재 PD가 운영한 유튜브 채널 '용튜브' 라이브 방송 화면.
정용재 PD가 운영한 유튜브 채널 '용튜브' 라이브 방송 화면.

방송사도 뉴미디어 전략을 강조하면서 유튜브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고 있지만, 성공 사례는 드물다. 

방송사가 뉴미디어 전략이 없는 이유는 소득이 없기 때문이다. <워크맨> <와썹맨>이 잘 나간다고 하지만,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수익 모델이 마땅치 않은 걸로 알고 있다. 방송사가 유튜브를 부수적으로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본격적으로 유튜브를 통해 무엇을 해보겠다는 하는 것은 ROI(투자자본수익률)가 안 나오는 경영 전략이다. 

그래도 2부에서는 나름의 답을 제시하는 건가.

1부가 저와 영중 선배의 유튜버 도전기였다면, 2부는 유튜브가 우리 사회에 순기능만 하는 것인지, 알고리즘 문제는 없는지 질문을 던질 예정이다. 유튜브가 중심이 된 시대에 TV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PD들의 고민도 담긴다. 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리얼하게 보여주면 시청자분들이 각자 판단하실 거라고 생각한다. 

지상파 위기 상황을 신입 PD들은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동기들끼리 침몰하는 화려한 배에 올라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TV는 없어지지 않겠다는 확신을 했다. 재난이나 큰 이슈가 발생했을 때 TV를 켜지, 유튜브에 접속하진 않는다. 지상파가 집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교통 발달로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저녁에는 집에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지상파 역할이 좁아졌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집을 잘 지켜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검증된 문법으로 살아남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은 (지상파 내부에서도)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KBS만이 할 수 있는 고품격, 고품질의 대기획 콘텐츠 제작과 함께 젊은 PD들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투트랙으로 가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용튜브의 활동은 이제 어떻게 되나.

용튜브는 이제 개인 SNS가 되지 않을까 싶다. 유튜버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웃음) 하지만 애착이 생긴 공간이라서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듯이, 일상을 올릴 것 같다.

신선하면서도 묵직한 기획을 첫 연출작으로 선보였다. 앞으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PD가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포맷화하고 싶다. PD가 카메라 뒤에 있는 것도 좋지만, 앞에 나와서 프리젠터 역할로 제작자의 고민을 직접 녹여내도 좋을 것 같다. 유튜버 모습에 공감하고, 유튜브 콘텐츠가 리얼하다고 느끼는 건 중간에 대리인이 없기 때문이다. 갈수록 리얼함을 추구하는 시대에 ‘시청자들을 이렇게 구워삶아야지’ 라는 발상은 통하지 않는다. 젊은 세대는 ‘가공한 거 말고 원저작물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제작자가 직접 셀링하는 게 더 리얼하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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