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꽃’ 전봉준은 왜 사투리를 쓰면 안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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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수 교수 “미디어의 차별적 방언 활용으로 표준어‧방언, 위계 형성”
“‘영웅성 부각’ 이유라지만...미디어 지역 감수성 높여야”  

지난 달 종영한 SBS 드라마 '녹두꽃' ⓒSBS
지난 달 종영한 SBS 드라마 '녹두꽃' ⓒSBS

[PD저널=박수선 기자] SBS <녹두꽃>에서 맛깔난 전라도 사투리를 쓴 인물들과 달리 전봉준(최무성 분)은 왜 표준어를 구사했을까. 고부(현 정읍)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전봉준이 사투리를 쓰는 게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KBS 공영미디어연구소가 발간하는 <방송문화연구> 6월호에 게재될 예정인 홍경수 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의 논문은 이런 의문에서 출발했다. 홍 교수는 ‘전봉준은 왜 표준어를 사용했나: SBS 드라마 <녹두꽃>의 방언활용 방식 또는 기준, 그리고 생산맥락에 관한 연구’를 통해 지난해 방송된 <녹두꽃>의 언어텍스트를 이항대립 구조로 분석했다.
  
요즘엔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투리는 지역적‧계급적 편견을 강화하는 장치로 쉽게 쓰인다. 당장 ‘중국동포 말투를 쓰는 조직폭력배’,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건달’을 꼽으라면 여러 캐릭터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홍경수 교수는 “그동안 한국의 대중문화는 호남 방언에 적절한 권위와 무게감을 부여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경상도 방언을 쓰는 사람은 사장, 전라도 방언을 쓰는 사람은 조폭, 충청도 방언을 쓰는 사람은 식모‘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로 미디어는 인물의 고정 유형을 조성하는 데 앞장서 왔다. 방언의 차별적 활용으로 방언 사이에도 위계가 형성되었고, 이것은 다시 미디어에서 방언의 편향적 반영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이런 관점에서 민중사극을 내세운 <녹두꽃>의 주요인물인 전봉준이 표준어를 사용하는 설정은 여러모로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이다. 대본집과 PD‧작가 심층인터뷰를 통해 <녹두꽃>의 방언 활용을 살핀 홍경수 교수는 ‘초영웅:아류 영웅’, ‘지식 있는 양반: 지식 없는 중‧하인’, ‘공식:비공식’을 나누는 기제로 방언이 작용했다고 봤다. 

전봉준 대립하다가 동지적 관계가 되는 백이강(조정석 분)은 사투리를 구사하는데, 여기에서 “초영웅:아류 영웅‘의 구분이 드러난다는 분석이다. 홍 교수는 논문에서 “고향 말투가 아닌 현대 표준어를 사용함으로써 전봉준은 민초들과 구별된 ’초 영웅‘으로 부각“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방언 활용으로 드라마는 민중이 주인공인 민중역사극으로 포지셔닝한 기획의도를 도달하는 데 온전히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오는 26일 첫방송 예정인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 예고 화면 갈무리.
지난해 SBS 금토드라마로 방송된 <녹두꽃> 예고 화면 갈무리.

또 지식 있는 양반인 황석주(촤영원 분)와 ‘어깨 너머로 글을 배운 마름’ 홍가(조희봉 분)가 각각 표준어와 사투리를 사용하는 설정 역시 “방언과 지역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꼬집은 홍 교수는 “현대 표준어의 활용은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특성을 친근하며 동질감 있는 존재로 느끼게 하는 반면, 방언은 구시대적이며 낯설고 거리감 있게 느끼게 하는 작용을 수행한다”고 강조했다. 

<녹두꽃> 여주인공 송자인(한예리 분)이 상황에 따라 방언과 표준어를 섞어 쓰는 인물로 그려지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일종의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것인데, 송자인은 아버지와 대화하거나 흥분할 때는 방언을 쓰고, 공적인 관계에서는 표준어를 사용하는 인물로 나왔다. 

홍 교수는 “송자인의 방언 활용 양상을 보면 ‘친근:거리감’,‘비공식:공식’, ‘감정:이성’ 등의 구분이 이뤄지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실제 방언 사용자들 중 상당수는 대화 상대와 상황에 따라 다중적인 활용을 하기 때문에, 이중적인 입말 활용은 리얼리티를 담보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녹두꽃>을 집필한 정현민 작가는 심층인터뷰에서 “최대한 지방색을 살린다는 기획의도였지만, 양반은 표준어를 쓰게 하고 아전들은 사투리를 정감있게 사용하자는 것, 등장인물 중에서 바깥 경험을 한 사람은 표준어를 쓰게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정 작가는 전봉준의 인물 설정과 관련해서는 “전봉준을 전국구 인물로 부각시키고 싶었다”는 바람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경수 PD는 전봉준도 방언을 쓰는 인물로 그려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홍경수 교수는 “‘전라도 방언을 사용하면 전라도 위인’으로 축소된다는 작가의 주장은 시대착오적인 부분으로까지 해석될 수 있다”비판하면서 “<녹두꽃>이 보여주는 방언 활용 방식은 기존의 미디어가 보여준 표준어와 방언 사이의 위계구조와 일치하고 있으며, 방언들 사이에서의 위계질서를 고답적으로 반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지역 감수성’ 개념을 제안하면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지역이 균형 있고 평등하게 재현되고 인식되는 것을 목표로 지역 차별적 요소를 없애고, 예민하게 분별해내는 지적 능력을 포함한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홍 교수는 “지역 감수성이 내제화된다면, 특정 지역의 수용자들이 불편한 감정을 느낄 우려가 있는 묘사는 현격히 줄어들 것”이라며 “수용자들이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수용하기만 하는 시대가 아니며, 시청자를 불쾌하게 만드는 표현이 방송에서 반복되는 일은 전파의 주인인 시청자를 인정하지 않는 결과가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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