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기록’, 꿈이 있으면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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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기록’, 꿈이 있으면 청춘
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 불편한 ‘수저계급론’의 이면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0.09.2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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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
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금수저에서 금수저 나고 흙수저에서 흙수저 난다? 이른바 ‘수저계급론’이 건드리는 불쾌감은 태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는 운명론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모가 가진 돈과 지위가 자식에게 이어지는 건 우리 사회의 익숙한 풍경이 됐다. 70~80년대까지만 해도 가난한 집에서 좋은 대학을 간 수재가 신분상승을 하는 스토리는 개연성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끊긴 지금, 이런 이야기는 더 이상 개연성을 찾기가 어렵다.

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은 바로 그 수저계급론의 불쾌한 세상을 밑그림으로 가져온다. 같은 한남동에서 살며 같은 학교를 나왔으며 똑같이 모델 활동을 하다 이제 연기자의 길을 가려 하지만 사혜준(박보검)과 원해효(변우석)는 사는 모양이 너무나 다르다. 원혜효는 이미 배우의 길에 들어서 조금씩 이름을 알려가고 있지만 사혜준은 번번이 캐스팅에서 미끄러진다. 이유는 이른바 ‘부모 찬스’ 때문이다.

원혜효의 엄마 김이영(신애라)은 아들 모르게 감독도 기자도 만나 그 길에 레드카펫을 깔아준다. 사혜준의 엄마 한애숙(하희라)은 그런 김이영의 집에서 생계를 위해 가사도우미로 일한다. 물론 한애숙의 응원이 김이영의 통제보다 훨씬 더 바람직하게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캐스팅에서 늘 사혜준이 원혜효에게 밀리는 이유가 ‘인지도 부족’으로 포장되지만, 알고 보면 그것도 김이영이 돈과 관계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니 절실하게 노력해온 사혜준의 절망감은 얼마나 크겠나. 그는 환경에 의해 달라진 존재감의 차이와 상관없이 원해효를 친구로 대하는 걸 쿨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지만, 그의 매니저를 자처한 이민재(신동미)는 그것이 위선이자 자기 위안일 뿐이라는 걸 아프게도 말해준다. 사혜준은 조금씩 원해효에 대한 경쟁심을 느끼고 선선히 결과를 쿨하게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현실을 자각한 서혜준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흙수저’가 신분상승을 이루기 어려운 현실이지만 그 현실을 인정해야 방법도 찾을 수 있는 법이다. 사혜준이 본인이 원하는 배우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현실 자각을 통해 성장해나가는 것만은 분명하다. 

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
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

<청춘기록>은 이런 위치에 처한 청춘들을 ‘덕질’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들이 마주한 현실의 벽을 공감하고, 너무나 높은 그 벽 앞에 선 그들을 응원한다. 흥미로운 건 사혜준과 한 방을 쓰는 할아버지 사민기(한진희) 역시 이들 청년들과 다름없는 현실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사민기가 젊어서 친 사고들 때문에 아들 사영남(박수영)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헛된 꿈’ 대신 눈에 보이는 현실을 좇았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삶에 비추어 사혜준이 꾸는 꿈을 ‘헛되다’ 평가하고 그 길을 가로막는다. 심지어 사민기가 무언가를 하려는 것조차 하지 말라 막는다. 하지만 사혜준은 사민기에게 시니어 모델을 길을 제안하고 그들은 함께 꿈을 꾼다.

그래서 <청춘기록>의 청춘은 단지 특정 세대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꿈을 꾸는 자와 꿈꾸지 않는 자를 나누는 지칭이기도 하다. 꿈꾸는 사민기가 여전히 청춘인 반면, 꿈꾸지 않는 사영남이나 장남 사경준은 청춘처럼 보이지 않는다. 형편이 어려워 아들 친구의 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한애숙이 청춘인 반면, 그런 현실만이 전부라 생각하는 김이영은 청춘이 아니다. 

시니어 모델 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해 사민기가 사혜준과 안정하 그리고 김진우(권수현)와 함께 사진을 찍고 뒤풀이를 하는 장면은 ‘청춘의 기록’처럼 보인다. 흔히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를 나이로 나누지만, 진짜 세대를 나누는 건 그런 숫자가 아니다. 여전히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꿈을 꾸고 있는가 아닌가에 의해 나눠지는 것일 뿐.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아니다. 꿈을 꿔서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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