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일이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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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일이 하고 싶었다
[비필독도서 36] '9번의 일'
  • 오학준 SBS PD
  • 승인 2020.10.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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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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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오학준 SBS PD] “공동묘지를 밀고 아파트를 지어서 불길한 거래.” 아파트 단지에서 누군가가 투신한 다음날, 학교에서 만난 친구는 내 귀에 대고 이 말을 속삭였다. 그 중학생 소년의 손엔 금빛으로 번쩍이는 L로드가 들려있었다. 이걸 들고 방에 들어가면 수맥을 찾을 수 있다는데, “침실에서 이게 움직이면 어쩌지?”

그날 밤 그의 걱정이 내게 옮았다. 옷걸이를 펜치로 잘라 두 손에 들고 방으로 살금살금 걸어 들어갔다. 달빛에 비친 그림자가 귀신처럼 보였다. 아무렇게나 말아 올린 커튼이 마치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듯하자 손아귀에 제멋대로 힘이 들어갔다. 안으로 굽어드는 옷걸이를 내팽개치고 안방으로 뛰어 들고 말았다.

얼마 뒤 그 친구가 사라졌다. 그의 아버지가 실직하고 난 후 벌인 사업이 실패해서 한밤을 틈타 짐을 쌌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그 친구가 있던 자리에서 다른 친구가 속삭였다. “공동묘지를 밀고 아파트를 지어서 불길한 거래.” 성장도 쇠퇴도 없이 정체하며 낡아가는 신도시 키드들은 ‘지기(地氣)’라는 이름으로 IMF의 상처들을 포장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거만했다. 살아남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동시에 쉽게 굴종했다. 그렇게 특별한 이유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언제고 나는 버려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 그러나 쓰이는 한에서는 특별한 대접을 받으리라는 비굴한 믿음을 벼렸다. 저항하다 사라지기보다 끝내 살아남는 사람이 위대하다는 신화도 이쯤부턴 사실이었을 것이다.

김혜진의 소설 <9번의 일>의 주인공도, IMF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 중 하나로 짐작할 수 있다. 많은 회사들이 도산하고, 남은 회사들도 인력을 감축해서 오락실마다 정장 입은 사람들이 가득하던 때에도 그는 일터가 있었다.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6년간 한 가지 일을 하며 살아온 그에게 회사는 생사고락을 함께 한 ‘동지애’의 대상이었다. 노조에 가입해 회사에 무언가 요구하기보다 회사가 자신의 애정에 대답해주길 바라는 ‘소박한 욕망’을 지니고 살았다. 상사가 권고사직을 권유하기 전까지는.

소설은 꿈꾸면 안 되는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한 평범한 노동자가 평생을 바친 회사의 갑작스럽고 부당한 요구에 순종하여 자신을 맞추어가다, 조금씩 인간성을 상실하고 마침내 괴물이 되어버리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왜 일하는지 묻지 못한 사람이 자신과 동료의 이름을 잃고 마침내 번호로 졸아드는 과정을 덤덤한 문체에 담았다. 

김혜진의 소설 '9번의 일'
김혜진의 소설 '9번의 일'

회사는 그의 애정에 관심이 없었다. 저성과자로 분류해 재교육을 받게 하고, 주인공을 영업직으로 보내고, 나중엔 업무지시마저 주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회사는 그를 내보내고자 한다. 그에게 회사를 그만두면 안 되는 경제적 이유들이 있었지만 그가 회사에 순종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오해는 곧 풀릴 것이고, 헌신한 나를 다시 불러들일 것이란 믿음.

믿음은 계속해서 배반당한다. 더욱 한갓진 곳으로 발령이 나고, 익숙하지 않은 업무들을 떠맡게 된다. 주변 사람들은 이제라도 다른 일을 해보자고 설득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내가 바보가 아니라, 나를 이곳에 보내 바보로 만드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항변하던 동료의 말도 그때뿐이었다. 저항하는 대신 회사가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모질게 대하고 나서 그가 도착한 곳은 78구역이라 부르는 통신탑 건설 현장이었다.

그에게는 주민들의 저항을 뚫고 통신탑을 세우는 일이 맡겨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다친 강아지를 주인에게 데려다 줄만큼의 인간적 면모는 남아 있었지만 회사는 틈을 주지 않았다. 남은 기한까지 일을 마치지 못하면, 더 이상 그는 회사에 남아 있을 수 없다. 예견된 비극의 순간이 이렇게 찾아온다. 트럭에 시동을 걸고 달리는 순간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것이 그가 바라던 삶이었을까? 멈추어 서서 질문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다. 다만 그가 질문하기를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쁜 사람이라서 괴물이 된 건 아니다. 오히려 평범했기에 괴물이 될 수 있었다. 그가 부당한 요구에 하소연할 때마다 상사들은 ‘나도 죽겠다’ 말하며 그를 조금씩 고사시켰다. 누구도 악인은 아니었으나 그들이 모여 괴물을 만들었다. 그의 시선 속에서 회사의 잔혹한 모습이 단편적으로만 등장했다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운 이유다. 그는 끝내 똑바로 응시하지 못했다.

아들이 대학교에 합격했단 소식이 그를 뒤흔든다.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다르게 행동한다. 여전히 타인에 대한 미안함이나 연민은 없다. 안타깝지만 통신탑이 흉물스럽다 깨닫고 무너뜨리는 일은 그리 숭고할 수 없다. 단지 일로부터 구해내지 못한 과거의 자신을 무너뜨리며, 내일도 일을 계속할 수 있기만을 희망하는 이기적인 행동일 뿐이다. 독자는 주인공의 이후를 기대해도 좋을까, 조금은 회의적이다.

부당한 요구에 맞닥뜨려도 자신을 둘러싼 구조의 불합리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온전하게 생존하진 못해도 연대엔 성공하는 이야기들이 더 소설 같다. 일에 대한 사랑과 순종은 필수 덕목이 되었고 무엇을 하며 살지, 왜 그 일을 하며 사는지 묻는 일은 사치가 되었다. 한번 사람들이 회사로부터 내쳐져 봤기 때문에 체념을 터득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주인공 역시 다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질문 없는 삶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일이라는 건 결국엔 사람을 이렇게 만듭니다. 좋은 거, 나쁜 거. 그런 게 정말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공포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듯한 불길함이 엄습했다.

비극이 끝난 줄 알았으나 어디선가 다른 사람의 삶에서 여전히 이어질 것이라는 암시가 가득한 마지막 문단을 읽으며, 일에 있어 변곡점을 지나는 내가 그 다음 차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인지 질문하는 일은 차일피일 미루면서 나 역시 조금씩 어떤 번호로 쪼그라들고 있는 건 아닌지. “공동묘지를 밀고 아파트를 지어서 불길한 거래.” 다시 이 말을 곱씹는다. 지금도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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