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실패해도 괜찮은 모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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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실패해도 괜찮은 모래밭
'샌드박사' 회사 이름에 담긴 불평등한 현실 비판과 청춘에게 보내는 응원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0.10.2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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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토일드라마 '스타트업' 스틸컷.
tvN 토일드라마 '스타트업' 스틸컷.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tvN 토일드라마 <스타트업>에 등장하는 샌드박스라는 회사의 이름은 동명의 회사를 떠올리게 한다. 사전 동의하에 쓴 이름이겠지만, <스타트업>이 굳이 샌드박스라는 이름을 드라마 속 회사명으로 사용한 데는 그 의미가 이 드라마의 메시지를 관통하는 측면이 있어서다.

‘샌드박스’는 모래상자라는 의미로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스타트업>은 가능성이 있는 젊은 창업자들이 넘어져도 다치지 않고 계속 도전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의미로 샌드박스라는 이름의 회사를 그려 넣었다. 

드라마 속 샌드박스라는 회사를 일군 윤선학(서이숙) 대표가 회사의 이름을 그렇게 지은 데는 서달미(배수지)의 아버지 서청명(김주헌)을 통해 들은 사연이 계기가 됐다. 딸이 그네를 타는 걸 좋아하는데 자꾸 떨어져 무릎을 다치자 그 밑에 고운 모래를 깔아 떨어져도 다치지 않게 해줬다는 것. 창업을 꿈꾸는 자들에게도 그런 샌드박스가 필요하다는 걸 일깨워준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서청명은 그 꿈을 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이혼해 엄마를 따라간 언니 인재(강한나)와 달리 아빠 곁에 남았던 서달미를 할머니 최원덕(김해숙)은 든든하게 보살펴준다. 그런데 서청명이 딸에게 샌드박스를 깔아줬던 것처럼, 최원덕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을 도와주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다. 고아원에서 나이 들었다며 나가라 해서 나왔지만 아직 미성년자라 은행계좌 하나 만들 수 없던 한지평(김선호)은 최원덕의 도움으로 성장해 대학에 가며 독립한다.

떠나는 한지평에게 최원덕은 이렇게 말한다. “약속해. 지평이 너 나중에 성공하면 연락하지 마. 부자 되고 결혼해도 연락하지 마. 잘 먹고 잘 살면 연락하지 마. 나 배알 꼬이기 싫으니까. 대신 힘들면 연락해. 저번처럼 비 오는 데 갈 데 하나 없으면 와. 미련 곰탱이처럼 맞지 말고 그냥 와.”

tvN 토일드라마 '스타트업' 현장 스틸.
tvN 토일드라마 '스타트업' 현장 스틸.

<스타트업>은 서청명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샌드박스라는 회사 그리고 최원덕이라는 인물을 동일선상의 의미로 세워놓는다. 그것은 꿈을 펼치려는 청춘들이 때론 넘어지고 엎어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공간이다. 최원덕은 IT기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지만, 그 캐릭터 자체가 ‘샌드박스’다. 모든 이들이 깃들고 성장하고 떠나가도 그들에게 바라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언제든 어려울 때면 찾아오라는 그런 존재. 

흥미로운 건 최원덕이라는 샌드박스 아래서 은혜를 입고 성장해 거대 벤처캐피탈 수석팀장이 된 한지평이 바로 그 빚을 갚기 위해 청춘들을 도우려 나서는 대목이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서달미가 의기소침해지지 않기 위해 할머니의 요구로 서달미에게 편지로 위로와 용기를 줬던 인물이다.

마침 당시 수학올림피아드 최연소 대상을 수상한 ‘남도산’이라는 이름을 도용해 썼던 그 편지가 인연이 되어 한지평은 진짜 남도산(남주혁)을 만나 서달미를 위한 연극(?)에 공조하게 된다. 드라마적 설정이지만, 이 인연은 코딩에서 남다른 능력을 가졌지만 사업적 안목은 떨어지는 남도산을 한지평이 옆에서 도와주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회사를 키우려면 대표를 먼저 영입하라는 한지평의 조언에 따라 남도산은 서달미를 대표로 초빙한다. 

<스타트업>은 청춘들이 창업의 꿈을 키워가는 성장 드라마이자 청춘멜로지만, 이야기 구조 밑바닥에는 지금의 청춘들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 이른바 ‘포기’ 세대로 불리는 지금의 청춘들이 ‘소확행’에 만족하게 된 것이, 꿈을 꾸려 해도 마음껏 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라는 인식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서청명의 샌드박스라는 회사와 최원덕에서 이어진 한지평이라는 투자자를 청춘들이 꿈꿀 수 있게 하는 밑그림으로 제시한다. 많은 청년들이 최소한 고층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 늘 저층 엘리베이터만을 전전하는 사이 누군가는 애써 키워놓은 회사를 피붙이에게 모두 넘겨버리는 그런 현실은 아니어야 한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스타트업>이 그저 뻔한 청춘 멜로에 머물지 않게 된 건 이런 현실인식이 인물들과 스토리 전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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