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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초등학교 때였다. 서너해 동안 막내 삼촌은 우리 가족과 함께 살았다. 마음에 썩 드는 직업을 찾지 못했던 삼촌은 입대 전까지 우리 아버지 일이나 도우면서 앞날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비좁은 내 방의 절반을 덕분에 삼촌에게 내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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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에 이십대를 보냈던 삼촌 또래의 재산목록 1호가 대부분 그랬겠지만, 역시 삼촌보다 내 방에 먼저 입성한 것은 싸구려 통기타와 또 그만한 크기의 일제 소니 녹음기였다. 호러는 그 날부터 시작되었다. 저녁마다 고역이었다. 트윈폴리오나 양희은의 레퍼토리로 딩가딩가 울리던 기타 소리가 이제야 잦아드는구나 싶으면 여지없이 진츄아 아니면 멜라니 샤프카의 맬랑콜리한 목소리가 녹음기에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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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을 점령한 삼촌이 그 노래들을 불러서 싫었는지, 내가 안 좋아하는 노래만 삼촌이 불러서 싫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가끔은 귀까지 틀어막고 싶었다. 그 노래들이 초등학생인 내 귀에는 ‘제발 이 노래 좀 들어주세요’라며 애원하는 것처럼 들렸다. 돌이켜 봐도 삼촌의 선곡은 일백 퍼센트 청승맞았다. 그나마 삼촌의 대학가요제 수상작 메들리만 아니었어도 참을 법 했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싫어하는 영화 장면 중의 하나도 ‘박하사탕’의 야유회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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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에도 반전이 있듯, 괴상한 내 음악 취향도 서른살 즈음에는 유턴을 했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출근길이었다. 지금처럼 낙엽이 11월의 바람에 멜랑콜리하게 도로 위를 뒹굴고 있었다. 항상 몇 백미터씩 막히던 사거리 앞에서 행여나 촬영에 늦지 않을까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슬그머니 흘러나오는 음악은 양희은이 부르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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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멜랑콜리! 아, 궁상! 확 꺼버야지’라며 라디오 전원 스위치를 잡았다가, ‘에이 그럴 것까지야’라는 생각에 그만 뒀다. 목소리가 좋았다. 창밖 서늘한 가을 풍경만큼이나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꺼버렸다가 나중에 벌 받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양희은 좋아하면 안 되는데, 이러면 늙는 건데’하다 어느 대목에선가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그 날 퇴근길에 양희은과 이 노래를 처음 불렀다는 김민기의 cd를 주저하던 끝에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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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애의 최근 앨범 중에 ‘behind time’이라는 앨범이 있다. 50년대 이전의 가요를 새롭게 편곡해 부른 앨범이다. 옛 가요란 게 늙수레한 영감들이 양철 술판에 젓가락이나 두드리면서 부르는 노래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또 가슴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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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연이 가득한 부두, 수송선 앞에서 아우성치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고함을 질러보지만 피난민 속에서 잃어버린 동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결국 반도의 남쪽 끝 부산까지 내려와 오늘도 국제시장에서 장사치로 하루를 마감하지만 같은 하늘 아래 있을 동생, 금순이를 살아서, 살아서 꼭 만나리라. 영도다리 앞의 가슴 아픈 다짐을 담은 3절의 짧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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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서사가요가 내게는 영화 ‘타이타닉’이나 ‘태극기 휘날리며’보다 더 장엄하고 애달프게 들렸다. 그래서 한영애 공연을 밤새 편집하면서 내내 감탄사를 연발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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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제대로 들으려면 나이가 차야 한다더니, 항상 남들보다 조금씩 늦는 나는 이제야 그런 노래가 새롭고 귀하게 들린다. 그래서 그런가. 예전에는 별 생각 없이 스쳤던 꽃무늬 중년 아주머니도 정겹고, 때 맞춰 단풍놀이 떠나는 노인들도 흐뭇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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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도 이런 음악, 이런 그림들을 좀 더 봤으면 좋겠다. 하물며 삼십대를 절반만 건넌 나도 이런 데 어르신들은 오죽하실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분들 요즘 tv 보면 참 심심하시겠구나 하는 걱정이 드는 건 너무 건너뛴 결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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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덧붙이는 말이지만 ‘아름다운 사람’은 나윤선 버전도 끝내준다. 백번 넘게 들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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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 e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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