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올림픽' 압박에 '순차편성' 유야무야...시청권은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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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갈수록 커지는 '적자 올림픽' 부담...검증된 인기 종목 위주 편성
여자배구 홀대 왜?...야구·축구 방송광고 단가 기타 종목 '4배'
방통위 '순차편성' 권고했지만, 중계 준비 촉박해 '협의 無'
"과도한 중복편성, 시청자 권익 침해...순차편성 등 원칙 다시 세워야"

대한민국 배구 여자대표팀 선수들이 7월 31일 오후 도쿄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예선 A조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8강행을 확정지은 뒤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대한민국 배구 여자대표팀 선수들이 7월 31일 오후 도쿄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예선 A조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8강행을 확정지은 뒤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김승혁 기자]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대표팀이 다양한 종목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지상파 중계방송은 인기 종목 위주의 편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적자 올림픽’에 대한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다 이번 도쿄올림픽은 개회 직전까지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아 ‘중복편성’의 비중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지상파 3사의 비인기 종목 홀대는 야구와 배구, 축구 빅매치 경기가 몰린 지난달 31일 중계방송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4개 채널 중에서 여자배구 경기를 1세트부터 중계한 채널은 한 곳도 없었다. 3사 PP채널에서 여자배구를 중계하긴 했지만, 모두 채널번호가 접근성이 낮은 100번대에 배정되어 있어 시청자들은 알음알음 채널 번호를 공유해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앞서 태권도 대표팀 이대훈 선수의 은퇴 경기였던 동메달 결정전, 허광희 선수가 세계 1위 모모타 겐토 선수를 제친 16강전도 TV를 통해 볼 수 없어 온라인에선 불만의 글이 올라왔다. 

도쿄올림픽에서 또다시 반복된 ‘중복편성’ 문제는 막대한 중계권료를 보전하려는 지상파 3사의 ‘각개전투’가 낳은 결과다. 광고 수익으로 중계권료를 보전하는 게 어려워지면서 검증된 인기 종목 위주로 편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PP채널과 온라인을 통해 되도록 많은 경기 중계를 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지상파 채널에서 중계할 수 있는 경기는 한계가 있다”며 “광고 수익을 간과할 수 없다 보니 국민적인 관심이 큰 위주로 편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올림픽 방송광고 판매도 축구와 야구 종목을 앞세우고 있다.  

SBS 방송광고판매를 대행하는 SBS M&C의 도쿄올림픽 본선 패키지 상품을 보면 축구와 야구 준결승전 결승전 단가는 기타 경기보다 4배 더 높게 책정되어 있다. 야구 결승전 7회초부터 8회말까지 60~90초 광고를 노출하는 패키지 상품의 경우 최소 1억 4979만원 이상 청약을 해야 한다.   

SBS M&C 관계자는 “중계권료 때문에 중계방송을 해도 적자가 나는 상황이라서 현실적으로 광고주가 선호하고 시청자 관심이 큰 종목을 편성할 수밖에 없다. 과거 올림픽 중계방송을 보면 구기 종목 시청률이 여전히 높은 편”이라며 “체조·육상 등은 경기 시간이 유동적이고, 국민적 관심사가 상대적으로 적어 적극적으로 판매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과거 시청률을 토대로 한 보수적인 편성 전략과 광고 편성의 안정성을 고려한 측면이 크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공급자 관점이 짙은 이같은 전략은 스포츠 종목에 대한 관심이 다양해지고 있는 시청자들의 요구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이 열리는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이 텅 비어 있다. ⓒ뉴시스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이 열리는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이 텅 비어 있다. ⓒ뉴시스

코로나19의 여파로 도쿄올림픽 중계 준비가 늦어진 것도 한몫했다.

또 다른 지상파 관계자는 “개최 한 달 전까지 하느냐, 마느냐 말이 나왔던 올림픽이라서 지상파 간에 순차방송 협의를 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고 전했다. 중계 준비 시간이 빠듯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권고한 ‘순차편성’에 대해 제대로 협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복편성 논란에 방송사들도 온라인과 모바일 등을 통해 중계 종목 수를 늘리고 있지만 폐막까지 중복편성 문제는 이어질 공산이 크다.  

2012년 런던올림픽 중복편성이 베이징올림픽과 비교해 크게 줄었던 이유는 지상파 3사가 순차방송에 합의한 영향이 컸다. 윤성옥 경기대 교수가 2012년 진행한 ‘런던올림픽 기간 중 중계방송 등의 편성현황 분석’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런던올림픽 당시 지상파 중복편성 비율은 21.8%로, 베이징올림픽(55.2%)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지상파 3사는 2011년 ‘스포츠 중계방송 발전협의회’를 구성하고 공동구매해 합동으로 방송하는 대회는 순차방송을 원칙으로 한다는 기준을 세웠다. 전파 낭비를 막고 다양한 시청권을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이같은 합의에 따라 2012년 지상파는 런던올림픽에서 수영, 양궁, 유도, 태권도 등 주요 관심종목 12개는 1사만 중계한다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시청권 보장을 위한 신사협정이 유야무야되면서 순차편성 등의 기준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찬민 인하대 스포츠과학과 교수는 “이번 올림픽은 코로나19 여파로 3사가 모여 순차편성을 논의하기엔 시간이 촉박해 인기 종목이나 메달 획득 가능성이 있는 종목 위주로 편성했을 것”이라며 “앞으로 방송환경 제약은 더욱 커질 것이고 광고 수익도 호전되기 어렵겠지만 중복편성 문제는 개선해야 한다. 방송법에도 ‘과다한 중복편성으로 시청자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된 만큼 방송사의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준성 연세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 교수는 “매체 환경 변화로 앞으로 스포츠 이벤트에서 OTT의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본다”면서도 “공공재 성격의 지상파는 보편적시청권 보장을 위해 중복편성 문제 해소 등의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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