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과 멘토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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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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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박재철 CBS PD] 얼마 전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8090 부모 세대가 좋아했던 히트곡을 자녀 세대가 커버해 노래하는 무대였다. 오디션은 누군가를 뽑기 위해 실기를 테스트하는 자리다. 실력과 기량에 따라 등락과 서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10대들의 끼와 재능을 맘껏 발산할 수 있게 해보자는 애초의 취지에 따라 오디션에 필수인 순위 매김과 경쟁 구도를 없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참가자가 즉석에서 멘토에게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시간을 넣었다. 조언과 격려의 말들이 오고 가길 바라서 심사위원이란 호칭도 멘토로 바꿨다.
 
오디션에 경쟁이 없으면 자칫 밋밋하거나 특유의 긴장감이 없어 헐거워지지 않을까 걱정을 좀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건 각자의 다양성을 충분히 드러낸 그들의 열의와 노력이었다. 부여받은 미션곡을 열심히 연습해 비교우위가 없어도 아이들 각자가 고유하게 자신을 보여주었다.

그에 더해 아이들의 물음에 대한 멘토들의 답변은 즉흥적이었음에도 실로 빛이 났다. 증발된 순위의 흥행성을 말의 밀도로 채워주었다. 제작자인 내가 들어도 연신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라면 어땠을까?” 저런 이야기들을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을 정도로 생각이 정리되어 있나?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 나왔던 질의응답 중 몇 가지를 옮겨본다.

“공부와 음악을 같이 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전 음악이 좋은데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고, 어떡하면 좋을까요?”(학생1)
 
“공부와 음악, 선택의 문제일까요? 제 경험으로 보면 이건 자세나 태도의 문제 같아요. 하나 때문에 다른 하나를 희생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란 거죠. 음악이 어느 정도 완성의 단계까지 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려요. 공부 포기하고, 다른 거 안 하고 오직 음악만 열심히 한다고 음악이 막 느냐? 그것도 아니에요. 지금은 열심히 해서 보상이 비교적 바로 오는 ‘공부’나 ‘교우 관계’에 집중하면 어떨까요? 음악은 열심히 해도 바로 보상이 없을 수 있어요. 긴 시간을 요하는 거니까. 사실 전 음악은 보상보다는 기쁨 같아요. 열심히 음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희열 같은 게 올 때가 있거든요. 그게 보상이라면 보상입니다.  그러니 공부와 음악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식으로 생각하지 말고 둘을 그냥 열심히 해보세요. 이것 때문에 저걸 못했다. 나중에 그렇게 말하지 말구요. 음악으로는 보상받으려고 하지 말고 즐기자, 그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멘토 가수 하림)   

“음악이라는 진로가 불안정한 측면이 많잖아요, 전 음악이 너무 하고 싶은데 부모님은 반대가 심하세요. 어떻게 부모님을 설득시키셨는지 궁금해요.”(학생2)
 
“대부분의 부모님이 자식이 음악 한다면 쌍수 들고 반대하시죠? 밥 굶기 딱 좋다고. 부모님 반대하면 너무 싫죠. 근데 부모님이 밀어주시면 어떨 것 같아요? 굉장히 부담일거예요. 기대에 부응해야 되니까. 부모님이 음악 하는 거 찬성하든 반대하든, 음악은 결국 자신이 홀로 가야 하는 외로운 길이에요. 재능과 열정이 있다면 자신만 믿고 가는 수밖에 없어요. 부모님 때문에 음악을 하네 못 하네, 이런 말은 솔직히 성립이 안 되는 거죠. 생각해보세요. 음악은 결국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거잖아요. 감동을 주려면 자기 절제 없이는 결코 안돼요. 자기 절제가 가능하려면 자기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또 안되구요. 스스로를 믿어야 음악이든 뭐든 할 수 있어요.”(멘토가수 유영석)   

“언더그라운드 래퍼였을 때의 삶과 현재 인기 있는 래퍼로서의 삶이 많이 다른가요?”(학생3)
 
“생각보다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아요. 진짜예요. 차나 돈, 여자 이런 거에 환상 같은 거 너무 갖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지금, 무대에서 랩 하면서 저에게 무언의 말을 마구 건넸잖아요.  '그래 뭔가 보여주겠어', '이 사람의 생각을 내가 바꿔 놓겠어!' 이런 거요. 전 여러분들의 랩 들으면서 이런 날것의 투지 같은 게 막 느껴지거든요. 그게 전 좋았어요. 래퍼는 그거 없으면 더 이상 래퍼가 아니에요. 당장 인기가 있든 없든 그건 나중에 따라오는 거구요. 그런 스피릿이 없으면 인기 있어도 오래 못가요. 본인들이 하는 랩에서 금세 드러나요. 지금 느끼고 있는 거, 어떤 도전이나 저항, 투지나 용기 같은 그런 감(感) 있죠. 이거 잊지 마세요. 지금의 그 감으로 앞으로 쭉 가는 겁니다.”(멘토 레퍼 영지)
 
먹도 종이가 받아들여야 스며든다. 그리고 글씨가 드러난다. 영어 표현 중에 경청을 "I am ears"라고 한다. 멘토들의 단어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자신의 온몸을 귀로 만들어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아이들을 통해서 앞으로 어떤 서체들이 새로 생겨날지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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