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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오숙희 변상욱의 행복한 세상-겨울맞이 특별기획, ‘2004 한국의 사회안전망’> (월~토 오전9시5분~11시30분)

|contsmark0|“시골에서(온) 우리 같은 사람들 (누가)알아주기나 한답니까? 무작정 서울에 일자리 구하러 올라왔는데, 아는 사람이 없어서…영등포역에서 사흘을 굶었어요.”(영등포 쪽방촌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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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누구하고 사세요?”, “테레비하고 저하고 단 둘이 삽니다. 이 눔보고 울다가 웃다가….”(강서구 독거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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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지독한 외로움에 떨었고, 청취자들은 감동의 목소리를 나누며 떨었고, 우린 알 수 없는 슬픔과 서러움에 떨었다. 한 달 내내 떨면서 방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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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맞이 특별기획, 2004 한국의 사회안전망>은 원래 모놀로그형 특집 프로그램이었다. 손근필 pd가 57일간의 노숙체험을 통해 노숙자의 시선으로 우리 시대 소외계층의 문제점을 점검해 보려고 기획한 작품이었다. 그는 서울역을 비롯한 여러 노숙인들의 터전을 돌며, 이미 극빈층의 생활에 뛰어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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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평일 프로그램 제작 여건상 제 아무리 날고뛴다는 손 pd에게도 취재시간은 충분치 않았다. ‘모놀로그’를 준비하기에는 데드라인, 곧 겨울이 성큼 다가온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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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작진은 무서운 결단을 내렸다. 정규프로그램에서 소화하자! 일주일간 우리 사회 복지의 사각지대로 내몰린 사람들의 얘기를, 사회 지도층의 체험을 통해 전달하고 정책을 점검하면서 1인1계좌 후원천사를 모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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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어떤 명사가 그 구질구질한 데 가서 빈곤체험을 하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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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저 같아도 싫을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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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를 하면서 나눴던 우리의 대화는 말이 씨가 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했다. 섭외는 첫 바퀴부터 삐걱거렸다. 누구는 국회에 나가야 했고 누구는 연말이라 바빴고 누구는 예산을 짜느라 못나온다고 응답해 왔다. 그 중에 모 장관은 방송 시작 1주일 전까지 무려 100여통의 전화를 돌려 겨우겨우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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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프로젝트는 시작됐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취재에 나섰다. 빈곤 현장에서 우리는 무척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우리가 사는 사회와는 달랐다. 열심히 살고 싶고 그렇게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숙자란 이유로, 장애인이란 이유로 배제되는 사람들. 그래서 그 삶은 비참했고 우리는 그들에게 내일의 안녕을 물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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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머리가죽이 벗겨지고 한쪽 귀마저 잃은 이주 노동자, 줄라. 그녀의 소원은 무사히 몽골로 돌아가 다섯 살짜리 어린 아들을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 심장병 환자였던 생활보호대상 빈곤여성의 소원은 비가 새지 않는 지붕을 갖는 것이었고, 옷이 없어서 한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다니는 결식아동의 소원은 친구들에게 놀림 받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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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방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는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던지 찾아간 우리 허리를 껴안고 뼈에 사무치게 울부짖었다. 참기 위해 입을 틀어막아도 흘러나오던 울음. 그날, 할머니의 눈물은 회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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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현실은 낙망적이었고 시시때때로 우리를 굴복시키려 했다. 그럴수록 우리는 오기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복지 전문가와 정책 입안자를 초청해 우리 복지의 현실을 진단하고 제대로 된 정책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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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여성부 장관과 국회의원 등은 쪽방촌같은 현장을 찾아 빈곤체험을 하고 스튜디오에 다시 출연해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사회안전망 다시 짜기’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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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들은 앞 다퉈 빈곤층 후원천사를 자청했다. 곧, 우리 시대 사회안전망의 문제는 국가 정책과, 사회적 관심과 개인의 선의라는 삼각 시스템이 동시에 작동돼야 완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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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15시간에 걸쳐 우리가 강조한 복지는 ‘배부른 복지’가 아니었다. 국민들이 배고픔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그것이 우리가 프로그램을 통해 진단하고 요구하고 추구한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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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맞이 특별 기획…>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현장 체험을 통해 만난 독거노인의 울부짖음과 부상당한 이주 노동자의 불안한 시선은 여전히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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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맥도널드를 입에 물고 낄낄거릴 이 시간에도 그들은 여전히 사회안전망의 그물에 매달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으리라. 그런 사실을 비로소 체득한 이상, 내 마음 속의 ‘특별 기획’은 여전히 ‘-ing’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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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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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제작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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