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밤의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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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밤의 플레이리스트
[나의 선곡노트 ①]  
  • 주용진 TBS PD 
  • 승인 2022.04.22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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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PD저널=주용진 TBS PD] 오늘도 퇴근을 하고 집에 왔습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였구요. 저녁을 차려 먹고 한숨 돌리고 있습니다. 독거중년의 삶에서 밥은 참 중요하죠. 너무 방치하면 (독거)노년에 힘들 수 있으니 잘 챙겨 먹어야 합니다. 밥을 먹고 앉아 있다보면, 잠시 멍 때리고 있다보면 그렇게 혼자 있는 순간을 방심하면 마음이 급격히 아래로 내려가죠. 

그렇다고 나가서 산책하기도, OTT로 드라마를 보기도 그렇고 하지만 기분은 내고 싶고 너무 새것도 아니면서 익숙해서 친근하지만 그래도 조금 새로운 느낌을 받고 싶은 이럴 때 할 수 게 많지 않은데요. 뭐, 익숙한 멜로디에 신선한 리듬으로 대체해 보죠. 우리는 이런 거에 익숙하죠. 대.리.만.족. 이거라도 해야지 삶이 좀 촉촉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핸드폰을 블루트스 스피커에 연결합니다. 아 물론. 집에 오디오가 있어서 CD로 들을 수도 있지만 조금 적당한 감성과 인스타에 올릴 분위기 잡는 사진 찍기에는 이 방법이 더 좋겠죠. 

1. 이문세 / 알 수 없는 인생 (2012년, 앨범 <Re.Leemoonsae> 수록)
 
이문세 씨가 자신의 노래를 보사노바, 탱고 리듬으로 커버해서 발표한 앨범이 있습니다. 그 앨범 수록곡인데요. 원곡은 다들 아시다시피 노래방 애청곡으로 유명하죠. 신입시절 노래방에서 제가 이 노래를 부르려고 예약하면 계속 차장이 꼭 자기 노래라며 마이크를 뺏어 잡고 노래를 불렀는데요. 

'언제쯤 사랑을 알까요. 언제쯤 세상을 다 알까요.' 

저는 제가 지금까지 이러고 살지 몰랐어요. 독거청년에서 독거중년이 될 줄은 몰랐어요. 우리 모두 알 수 없는 인생을 여전히 어슬렁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리메이크 버전은 부르기용 노래를 감상용 노래로 바꿨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깜 살랑거리는 보사노바 리듬을 듣다 보면 따라 부르면 안될 거 같은, 노래에 심취하기보다는 조금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주죠. 

술 한잔 거하게 들이킨 후 부르는 '알 수 없는 인생'이 아니라 마음을 살짝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듣는 '알 수 없는 인생'이랄까요. 

2. 박라온 / 우울한 편지 (2011년. 앨범 <My Romance Car> 수록) 

비슷한 분위기로 계속 가는 게 좋겠죠? 현재는 '오늘(O:neul)'이란 밴드에서 활동하는 재즈보컬리스트 박라온씨가 부른 '우울한 편지'입니다. 유재하씨의 원곡은 봉준호 감독 '살인의 추억' 덕분에 비오는 스산한 장면을 불러오지만 이 버전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의 노래처럼 슬렁슬렁, 살랑살랑 분위기예요. 독거 중년이 '알 수 없는 인생' 덕에 사랑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옛날 생각이 안날 수가 없죠. 누구나 다 각자의 드라마가 있잖아요. 

흥행 성공과 실패의 차이 정도는 있겠지만요. 실패작이라도 해도 그때로 너무 빠지지 않게 적당히 이 노래가 잡아줍니다. 괜히 맥주라도 까면 오늘 밤은 힘들어지잖아요. 따뜻한 차 정도로 타협합시다. 자 가서 물을 끓이고 티백을 챙겨오세요. 

3. 진호 / 만약에 우리 (Samba ver.) (feat. 김정배) (2006년. 드라마 <연애시대> OST 수록) 

차를 마시면서 이 노래로 이어서 가야겠어요. 한때 국민 드라마였죠. '연애시대'. 최근에는 현빈씨와 결혼으로 화제인 손예진씨가 최고를 찍었던 드라마. 이하나 배우의 발견, 과거 부부였던 한지승 감독과 노영심 작곡가의 콜라보 등 여러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죠. 

드라마 OST에 진호씨가 부른 원곡을 삼바 리듬으로 편곡한 버전이 있는데요. 진호씨와 김정배씨가 같이 했습니다. 보사노바의 원곡보다는 조금 살짝 바삭한, 건조한 느낌이에요. 

우리는 맥주로 가면 안되잖아요. 앞에 놓여있는 차를 계속 음미해야죠 원곡이 조금 더 마음에 촉촉히 다가선다면 앞의 노래들처럼 역시나 거리두기를 실천한 버전입니다. 마음의 거리두기 중요하죠. 오늘 들을 노래는 다 거리두기용입니다. 스스로의 감정에 깊이 빠지지는 말자구요. 

4. 잠바(Jamba) /  사랑하기 때문에 (2011년. 앨범 <Competition> 수록) 

유재하 씨의 노래는 정말 리메이크 많이 됐죠. 오늘은 재즈보컬리스트 잠바씨의 버전으로 골라봤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눈물 그득하며 부르기 좋은 노래죠. 다들 경험 있으실 거잖아요. 없다고 하지 마세요. 가사만 보면 연애의 성공으로 보이는데 원곡의 멜로디는 애매하죠. 

이렇게 보면 성공이고 저렇게 보면 성공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사 중 '다시 돌아온 그댈 위해'를 '돌아올'로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멜로디니까요. 실제로 가끔은 그렇게 들리기도 하구요. 

하지만 잠바씨의 버전은 살짝 거칠게 말하면 강 건너의 상황을, 조금 더 포장하면 앞집 발코니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름다운 사랑 얘기로요. 시작부터 결말까지 다 뷰티풀이죠.  노래가 끝나갈 때쯤이면 차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겁니다. 

5. 정기고 트리오 / 샴푸의 요정 (2020년, 앨범 <Junggigo Sings Brazil> 수록) 

마지막 곡은 조금 고민했는데요. 리메이크로 갔으니 끝까지 가야겠죠. 익숙하지만 생경한. 

정기고씨는 소유씨와 함께한 '썸'으로 일약 스타로 떠올랐죠. 그런데 정기고씨는 알앤비/힙합만 부르는 게 아니라 트리오, 퀸텟으로 재즈씬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차를 다 마시면 잠을 자야할텐데요. 

예전 성시경씨 '잘자요' 멘트를 떠올리게 하는, 마음의 문을 마법처럼 없애고 순간이동 하듯 가슴 한가운데 들어와 앉아버리는 그런 목소리의 소유자죠. 아름다운 목소리와 노래로 마무리해야겠어요. 

빛과 소금의 노래를 커버했는데요, 원곡이 슬픔이란 느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처연하게 직진한다면, 정기고 씨의 버전은 변화구로 승부하는 느낌입니다. 내 감정 반 타인 감정 반 정도 버무려 거리두기를 시켜줍니다. 따뜻한 리듬과 목소리 톤이 마음을 따뜻하게 보호해 주죠. 

여지껏 사랑을 모르는 독거중년의 옛날 사랑도 미래의 사랑도 괜찮을 거라고 말합니다. 아련하지만 어느 순간 온기도 느낄 수 있고 목소리와 악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조금 더 포근할 거예요.

자 이제 노래도 끝나고 차도 다 마셨으니, 자야겠습니다. 오늘은 따뜻한 꿈을 꿀 수 있을 거 같네요. 다들 좋은 밤, 스윗 드림 하세요. 우리는 내일을 또 살아가야 하니까요. 

주용진 PD는 TBS 라디오 프로그램 <9595쇼> <달콤한 밤 황진하입니다> 등을 연출했으며, 현재는 새로운 콘텐츠 기획을 위해 잠시 큐사인을 멈추고 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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