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정신' 안 보이는 5·18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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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정신' 안 보이는 5·18 보도
언론, 진상규명조사위 조사 결과 대신 '윤석열 통합 행보' 호들갑
5·18 진상규명 요청 기한 없는데...언론의 구조화된 무지
  • 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 승인 2022.05.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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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2주기 기념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광주전남사진기자회).©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2주기 기념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광주전남사진기자회).©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42주년을 맞았다. 묵직한 역사적 의미만큼이나 계엄군의 성폭력, 암매장 및 발포 명령자 확인 등 진상규명 과제가 산적해있다.

현재 활동 중인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1980년 5월 당시 장성급 지휘관들의 발포 명령 및 명령권자 이름이 적시된 문건을 발굴했고 계엄군 530여 명의 인터뷰 조사 끝에 ‘광주역 집단 발포를 최세창 3공수여단장이 직접 승인 요청했다’는 진술도 얻어냈다. 지난 12일 이런 내용을 종합한 대국민 보고회도 열었다. 그 내용을 자세히 독자들께 전하고 싶으나 여기서는 일단 언론에 할 말이 많다. 정작 언론이 보도를 안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아는 발포 명령자를 확정하지도 못한 채로 42년이 지난 지금, 언론은 ‘윤석열 대통령 기념식 참석’을 보도하기 바빴다. 조사위 발표가 있었던 5월 12일부터 17일까지 ‘5.18 광주’ 언급 보도는 641건에 달하지만 ‘조사위’나 ‘진상규명’을 언급한 건 각 38건, 36건에 불과하다. ‘발포 명령’은 22건으로 더 적다.(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 <조선일보>와 TV조선 등 아예 보도가 없는 매체도 수두룩하다.

반면 ‘윤석열 기념식 참석’ 언급은 223건, 이를 ‘통합’ 행보로 전한 것만 해도 131건이나 된다. 사설에서도 <新여권 광주 총출동, 尹대통령 통합 실천노력 평가할만>(헤럴드경제 5.17)과 같은 사례가 두드러진다. <조선일보>의 경우 ‘5·18 광주’ 언급 자체가 5건에 그쳤는데 이중 4건이 ‘윤석열 기념식 참석’ 단독보도를 포함한 ‘대통령과 여당의 광주 행보’ 보도다. 심지어 나머지 1건은 ‘최초로 광주에서 북한인권 세미나’이니 말 다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취임 첫 해에는 기념식에 참석했음을 고려하면 ‘진상규명’을 외면하면서 ‘윤석열 기념식 참석’에만 이리 호들갑 떨 일인지 당황스럽다. 

보도들을 보면 ‘헌법에 5·18 정신 수록’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당 의원 총동원령’을 윤 대통령만의 ‘이례적 통합 행보’로 꼽기는 한다. 다 좋은 일이기는 하나 언론이라면 반드시 물어야 할 게 있다. 전임 대통령에는 매사 따져물었던 ‘정치쇼 아니냐’는 질문이다.

지금 대통령실에는 방송에서 ‘5·18 북한군 개입설’을 유포한 장성민 씨가 정책조정기획관으로 있으며 여당은 강원도지사 후보로 똑같은 가짜뉴스로 공청회까지 열었다가 컷오프 되자 부랴부랴 사과한 김진태 전 의원을 내세웠다. 바로 그 공청회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은 ‘북한군 개입설 토론회’를 열어 ‘종북좌파가 5·18유공자라는 괴물 집단 만들어 세금 축낸다’ 등 희대의 망언을 남겼다.

18일 기념식에서 ‘오월 정신’을 외치는 대통령이 바로 그 ‘5·18 모욕’의 주역들을 중용한 모순적 장면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걸 따져 물어야 할 언론은 이상하리만치 질문에 인색하다. 올해에도 ‘윤석열의 통합’만 읊조린 보도들 중 <여권 핵심 5·18 기념식 총출동, 통합의 첫걸음 되길> 제하의 <세계일보> 18일자 사설은 정부 여당에 ‘북한군 개입설과 단절하라’면서도 민주당을 향해 ‘광주정신은 너희의 전유물로 여기지 말고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오월정신’ 외치는 대통령 곁에 버젓이 서있는 ‘북한군 개입설’ 주역들을 못본 척, 애먼 사람들만 몰아붙이는 모양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가끔은 악의보다 무지가 무섭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7일 국회 운영위에서 장성민 기획관의 ‘북한군 개입설 방송’ 관련 지적이 나오자 “몰랐다”고 답했다. 보도량으로만 보면 언론도 모르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비서관 인선이 있었던 5월 5일부터 17일까지 장 기획관의 ‘북한군 개입설’ 방송 이력을 언급한 보도는 고작 7건이었다. <'DJ 색채' 짙은 대통령실 비서관급 인선···尹믿을맨 '주진우'도 합류>(아주경제 5.5) 등 오히려 장 기획관 인선에 ‘통합’ 이미지와 ‘DJ 색채’를 씌워준 보도들이 많다.

‘오월 정신’이 꽃피운 ‘통합’과 ‘헌법 정신’의 가치가 언론 보도 속에서는 ‘오월 정신’을 은폐한다. 이런 비극은 무지보다 악의에서 비롯되는 게 차라리 자연스럽기는 하다. 언론이 의도했든 아니든, 지금까지 언론이 보여준 5·18에 대한 구조화된 무지는 역사적 과오다.

‘진상규명’에 관심을 좀 가져달라는 절실하면서도 오래된 요청엔 기한이 없다. 매년 반복되는 이 요청이 진부하기는 하지만, 언론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상 및 책임 규명에 지금이라도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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