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탄생', 탐미적이고 지적인 다큐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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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탄생', 탐미적이고 지적인 다큐의 진화
[홍경수의 방송 인문학⑥] KBS ‘다큐 인사이트-사유의 탄생’
  • 홍경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 승인 2022.06.23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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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의 성공으로 한국 영상시장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콘텐츠 시장은 누가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킬러콘텐츠를 만드느냐에 따라 '빅 머니'가 결정되는 게임장이다. 독창적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창의적인 콘텐츠를 분석하는 작업도 의미가 적지 않다. 방송 콘텐츠 전문가인 홍경수 아주대 교수가 2~3주에 한 번 꼴로 인문학적 관점으로 콘텐츠를 분석·비평한다. -편집자 주
지난 5월 20일 21일 2부작으로 방송된 KBS '다큐인사이트-사유의 탄생'
지난 5월 12일, 19일 2부작으로 방송된 KBS '다큐인사이트-사유의 탄생'©KBS

[PD저널=홍경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드라마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다른 장르에 대한 관심을 침식시키고 있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는가?

AR과 VR 등 실감 기술을 적용한 다큐가 몇 편 등장한 것을 제외하면 최근 텔레비전 다큐의 변화는 미미하게 느껴진다. 코로나 19로 인해 해외촬영이 어렵게 되면서 대작 다큐의 제작도 위축되었다. 이른바 다큐멘터리 가뭄 상황에서 한줄기 샘물 같은 희망을 발견했다. 지난 5월 12일,19일 방송된 KBS <다큐 인사이트-사유의 탄생>이 그것이다. 

<사유의 탄생>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가사유상 상설전시를 계기로 불상의 비밀을 탐색하는 미학 다큐로, ‘구원의 미소’(1편)와 ‘청춘의 초상’(2편)으로 구성되었다. 반가사유상의 보물로서의 의의를 탐색한 다큐는 몇 편 있었다. 하지만, 불상의 미소가 왜 아름답고, 손을 들어 턱에 괴는 모습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불상의 얼굴은 몇 살이며 어떤 고민을 담고 있는지 등 불상의 미학을 정밀하게 분석한 다큐는 보기 힘들었다. 

자칫하면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는 것으로 기울 수도 있고, 딱딱한 미학 강의로 흐를 수 있는 쉽지 않은 작업. 제작자는 두 가지 함정을 영리하게 피해나가기 위해 프리젠터를 엄선했다. 1편 ‘구원의 미소’는 91세의 노(老) 조각가 최종태가, 2편 ‘청춘의 초상’은 24세의 발레리노 임선우가 맡았다. 

KBS '다큐 인사이트-사유의 탄생' ©KBS
KBS '다큐 인사이트-사유의 탄생' ©KBS

반가사유상과 프리젠터의 삶의 혼융 

“얼굴만 웃는 게 아니고, 몸 전체에서 웃음이 느껴졌다는 것. 반가사유상에는 인간적인 고민이 없어요. 그걸 넘어선 거예요.”

가톨릭 신자이면서 불상의 미소를 평생 연구해온 최종태 작가는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이렇게 평가했다. 얼굴의 미소를 미시적으로 접근하기 쉽지만, 노 조각가는 몸 전체에 흐르는 웃음을 발견했다. 이 내레이션 하나만으로도 다큐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올랐다. 얼굴의 잔잔한 미소는 온몸의 지체와 근육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나의 행복 역시 나를 둘러싼 세상의 행복과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는 삶의 통찰이 묻어났다.

“불교에서 자비(慈悲)라고 하는 것이 참 묘한 거예요. 사랑과 슬픔, 비(悲)가 없으면 자(慈)가 못 나와요. 자(慈)만 이야길 안 하고 비(悲)만 이야길 안 하잖아요. 꼭 자비(慈悲)라고 그러죠. 그게 어찌 둘이겠어요? 하나여야죠.” 

조각가가 뱉어내는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같이 빛났다. 쥐어짠 대본이 아니라, 평생 불상의 아름다움을 고민해 온 조각가의 툭 뱉는 말이 동백꽃 떨어지듯 떼구르르 구른다. 진행을 하는 프리젠터보다는, 반가사유상을 대하는 조각가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나올 수 있는 대사였을 것이다. 

국립 중앙박물관의 전시 역시 국보 78호와 83호 반가사유상 2점을 한 공간에 함께 마주 놓았다. 마주 놓는 배치는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반가사유상 사이에 공간이 형성되고, 두 불상이 비슷한 자세로 미소를 띤 채 깊은 사유에 빠져있는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불상들 앞에 서게 한다.

<사유의 탄생>이 선택한 프리젠터의 배치 역시 유사하다. 다큐 사이사이에 프리젠터가 시간적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큐의 시간 내내 프리젠터의 삶이 함께 녹아드는 방식이다. 이러한 제작방식에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연출을 맡은 김종석 PD는 “불상의 미학을 탐색하는 역사다큐에 프리젠터의 삶을 담아내는 휴먼다큐의 성격을 더하고자 했다”고 연출 방향을 밝혔다. 노 조각가의 삶에서 우러나온 대사들이 반가사유상의 미학을 이해하는 최고의 설명이 되었다.

‘청춘의 초상’(2부) 역시 20대의 발레리노를 통해 불상의 사유와 청년의 불안을 연결했다. “딱 봤을 때 되게 친근했어요. 오래된 친구를 만난 느낌? ‘무슨 고민이 있니?’ ‘많이 힘들었구나?’ ‘그동안 고생 많았어’ 이렇게 말해주는.....” 직업수명이 짧은 발레리노가 발을 다친 뒤 다시 자신을 추스리는 과정에서 반가사유상을 만났다. 춤으로 표현한 사유의 재현도 탁월했다.

다만, 연출의도와 달리 겉보기에 화려한 예술가에게 어떤 처절한 고통과 불안이 엄습하고 있는지는 충분하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히키코모리나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는 청년이 불상을 마주하는 모습이 소망스러웠다. 자신이 힘겹게 떠안고 있는 삶의 무게를 반가사유상 앞에서 털썩 주저앉으며 쏟아내는 이미지는 과도한 욕심일까? 

KBS '다큐인사이트-사유의 탄생'
KBS '다큐인사이트-사유의 탄생'

영상의 부드러운 액체적 흐름(liquid flow)
  
다큐의 또 다른 탁월성은 반가사유상의 세밀한 부분을 샅샅이 포착한 데 있다. 박물관에 가서 보는 것보다 더 자세하게 반가사유상의 머리 부분인 보관, 가느다란 쌍거풀이 진 눈매, 다소 얇아 보이는 입술, 좁아 보이는 하관과 선녀를 연상케하는 손가락 등을 정교하게 담아냈다.

미니 크레인을 활용하여 포착한 초근접 영상은 끊임없이 흘렀다. 영상제작에도 콘셉트가 있다면, 액체적 흐름(liquid flow)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액체라는 단어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선취한 용어로 기존의 고체(Solid) 같았던 근대 사회가 현대에 들어 사람들이 삶이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이른바 액체 현대로 바뀌었다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했다.

영상의 콘셉트로서의 액체적 흐름이 액체 현대와 직접적인 관련은 적지만, 매끈한 이음새와 끊임없이 움직이는 영상의 흐름은 시청자에게 시각적 만족을 준다. 예전에 만들어졌던 반가사유상 다큐를 다시 보니, 화면이 덜커덩 거리듯 멈추고, 직선적인 화면변화가 여간 딱딱한 것이 아니다. 액체적 흐름은 반가사유상이 갖고 있는 인자한 미소와 심오한 사색의 표정을 닮았다. 반가사유상의 이미지를 영상으로 최대한 끌어낸 방식이 결국은 액체적 흐름인 것이다. 

결국 영상은 주제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 형식주의에서는 서사를 어떤 것을 이야기할 것인가를 나타내는 파불라와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뜻하는 수제로 구분했다. 다큐의 소재와 표현방식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2022년의 한국 다큐가 이 정도의 수준에 올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사유의 탄생>은 눈여겨 볼 만한 작품이다.

다큐는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가?

지상파의 경영 여건을 고려한다면, 중후장대한 다큐를 예전처럼 편성하기는 어렵다. 설령 예산이 확보된다 하더라도 굳이 대기획 류의 다큐를 편성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청자의 기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변화를 멈춘 장르에 더 이상 흥미를 갖지 않는다. 일반적인 상식에 과감하게 질문을 던지는 소재,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방식, 말이 아니라 영상과 사운드로 진행하는 서사방식, 틀에 박힌 편성길이의 파괴  등 다큐는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장르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사유의 탄생>은 탐미적이고 지적인 다큐의 진화를 보여준 사례로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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