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외교', 국익 도모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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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외교', 국익 도모할 기회다
[히어로도 악당도 없는 세상 4]
  • 박정욱 MBC PD
  • 승인 2022.07.14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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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AP/뉴시스] 지난 11일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조조지 사찰을 찾은 시민들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은 이곳에서 12일 치러진다.
지난 11일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조조지 사찰을 찾은 시민들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은 이곳에서 12일 치러진다.도쿄=AP/뉴시스

[PD저널=박정욱 MBC PD]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불의의 총격에 사망했다. 치안을 자랑하던 일본에서 백주대낮에 전임 총리가 테러리즘에 희생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정중의 조의를 표했다. 대통령이 주한일본대사관을 찾아 직접 조문했고, 일본에는 조문 특사단을 파견했다. 아베 전 총리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정부의 조문 외교는 적절한 행보라고 생각한다. 조문 외교는 국익을 도모할 기회다. 난 국민들이 자신의 신념과는 별개로 정부의 그러한 기능을 이해하고 인정해주었으면 한다.

정부는 다양한 분야에서 생계에 종사하는 국민 전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지지세력이나 특정 이념만을 대변해서는 곤란하다. 그러하기에 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신중해야 한다. 자칫 정부의 선택에 해당국가와 교류하는 우리 기업이나 국민이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접국가와의 관계는 국민의 삶을 여러모로 따져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 외교는 감정이나 국내용 정략적 계산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북한과 관련해 우리나라는 두 차례의 ‘조문 위기’를 겪은 바 있다. 1994년 김일성 사망과 2011년 김정일 사망이 그 계기였다. 1994년 김일성 사망은 공교로운 시점에 일어났다. 그 직전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 폭격을 검토했다는 것이 후일 밝혀질 정도로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높았다. 그 위기가 일단락되면서 김영삼 대통령이 김일성과의 회담을 통해 한반도 정세 안정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극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김일성이 사망했다. 그리고 국내 정세는 또다시 극단으로 치달았다. 일부 야당 및 재야세력에서 김일성을 조문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이를 공격하면서 거꾸로 ‘공안정국’이 펼쳐졌다. 당시 서강대 박홍 총장이 “국내에 5만명의 주사파가 암약한다”며 이러한 분위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2011년에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에도 조문 문제로 정치권이 시끄러웠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정부 차원의 조문은 하지 않겠지만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유족에 대하여 북측의 조문에 대한 답례로 방북 조문을 허용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해 정부 차원의 조문이 이뤄졌어야 한다는 주장과 이에 대한 비판이 비등하면서 또 한차례 조문 외교의 기회는 물건너 가고 말았다.

[도쿄=AP/뉴시스] 8일 일본 도쿄에서 요미우리 신문사 직원들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피격 소식을 전하는 호외판을 배포하고 있다.
[도쿄=AP/뉴시스] 지난 8일 일본 도쿄에서 요미우리 신문사 직원들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피격 소식을 전하는 호외판을 배포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우리 정부가 조문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우리 안보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여길수록 그러해야 한다. <대부> 돈 코를레오네의 말처럼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두어야 한다. 이건 국민 개개인이 북한 지도자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하느냐와 별개의 문제다. 국가는 개인에게 신념을 강요할 수 없으며 개인적으로 김일성과 김정일의 죽음을 어떻게 여기는가는 오롯이 그의 판단에 달려있다. 국민에게는 타국 정상을 얼마든지 조롱하거나 칭송할 수 있으며 그의 죽음에 박수를 칠 수도, 조의를 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다르다. 인접국가일수록, 적대관계일수록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는 대화채널을 유지하고 물리적 충돌이 아니라 외교를 통해 갈등을 관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 상대국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 아니라면 말이다. 당신이 인정하건 말건 타국과의 외교관계 안정이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초석이다. 남북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일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일본 총리의 사망에 가슴 아파할 수도 있고, 고소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다르다. 응당 예우를 갖춰 타국 전직 정상의 비극적인 죽음에 조의를 표해야 한다. 정부 수뇌부가 일본을 친구로 여긴다면 당연한 행동이고, 만일 적으로 여긴다고 할지라도 당연한 행동이다.

한일관계는 크게 ‘과거사 문제’와 ‘독도 문제’로 발전이 가로막혀 있다. ‘독도’는 영토와 관한 이슈인 만큼 우리 정부가 양보하거나 물러설 수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과거사는 보다 ‘외교적’일 필요가 있다. 정부가 나서서 과거사 문제로 대립하거나 갈등을 노출시키기보다는 외교적 언어를 통해 이를 비켜가는 대신 국익을 위한 실용주의적 관계 설정에 앞장서는 게 적절하다. 물론 학계나 언론에서 과거사 문제를 파고드는 것은 바람직하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민-관이 역할 분리를 하자는 것이다. 한국이 일본의 지배로부터 독립한 지 80년을 향해가고 있다. 국제정세는 그 이후로 크게 변했으며 그에 따라 한일관계도 변해야 한다.

 '보수 정부'는 한일관계를 풀려고 하지만 대중들의 반일감정에 걸려 넘어지고, '진보 정부'의 남북관계는 반북정서로 제동이 걸린다. 보수는 '반북 몰이'를, 진보는 '반일 몰이'를 한다. 난 그래서 오히려 남북 관계는 보수 정부가, 한일 관계는 진보 정부가 푸는 게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보수 지지자들이 보수 정부의 '친북'을 마냥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고, 진보 지지자들이 진보 정부의 '친일'을 덜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 정치는 그만큼 더 발전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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