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송 100주년 기념사업 시동...기원일 논란 종지부 찍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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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학회, ‘방송문화 100년: 역사적 의미와 기념에 대한 논의’ 세미나
전문가 과반은 한국 방송 출발점으로 '경성방송국 개국일' 꼽아

18일 오후 유튜브로 생중계된 '방송문화 100년: 역사적 의미와 기념에 대한 논의' 세미나 화면 갈무리.
18일 오후 유튜브로 생중계된 '방송문화 100년: 역사적 의미와 기념에 대한 논의' 세미나 화면 갈무리.

[PD저널=임경호 기자] '경성방송국 개국 100주년'을 5년여 남겨두고 한국 방송의 기원을 정립하는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방송학회는 지난 18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후원한 ‘방송문화 100년: 역사적 의미와 기념에 대한 논의’ 세미나를 열고, 한국 방송 100년의 의미와 쟁점을 되짚었다. 

한국 방송은 거의 한 세기가 흐를 정도로 역사가 쌓였지만, 기원일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못했다.  

방통위가 올해 업무계획에서 ‘한국 방송 역사 정립 및 발전방향 모색’을 추진하겠다고 하면서 한국 방송의 기원일을 못박지 못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방통위는 조선총독부 산하 경성방송국이 개국한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의 조선인 직원들이 비밀리에 미국의소리(VOA) 단파방송을 듣고 전황을 전파한 1942년 12월 27일, 라디오(무선전화방송)을 공개실험한 1924년 12월 17일 등을 예시로 들었다. 

송인덕 중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날 세미나에서 “1927년 처음으로 방송을 송출한 경성방송국의 호출부호 ‘JODK’는 일본 고유 부호”라며 "강점기라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방송 출발 기원을 경성방송으로부터 카운팅 하는 게 사회적 합의 가능하고 용인 가능한지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방송의 역사적 출발점에 근거해 ‘방송의 날’을 지정해 왔는데, 1977년에 경성방송 개국일로 기념일을 변경했다가 굉장한 사회적 논란을 낳은 적이 있다”며 “일제 강점기 아래 일본이 설립한 방송국의 개국일을 어떻게 우리 방송의 날로 정할 수 있냐는 반발에 부딪혀 이듬해 기념일을 9월 3일로 변경했다”고 부연했다. 

'방송 100주년' 기념사업을 위해 꾸려진 방송학회 연구팀이 전문가 1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과반(54.6%)은 우리나라 방송의 역사적 출발점으로 ‘경성방송국 개국일’을 꼽았다. 23.0%는 한국 호출부호(HL)를 사용해 방송을 시작한 날(1947년 10월 2일)을, 나머지 22.4%는 한국 호출부호 배정일(1947년 9월 3일)을 출발점으로 봤다.   

‘경성방송국 역사도 한국 방송사의 일부로서 객관적·비판적 수용이 필요하다’는 질문에는 74.3%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 응답자를 포함하면 89.8%에 이른다. 경성방송국의 20년 역사를 포함한 '방송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 필요성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과반(52.6)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송 교수는 “전문가들은 경성방송이 근대 방송문화의 도입 및 수용과 해방 이후 독자적 방송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봤다”며 “그러면서도 기념의 대상이 아니라 객관적 평가와 고찰, 비판적 수용 대상으로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해석했다. 

방송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 명칭으로는 '방송 역사 100주년'이 가장 많은 선택(40.8%)을 받았다. 이후 '방송 100주년'(20.4%)과 '방송 도입 100주년'(19.1%) 순으로 득표율이 높았다. 이날 세미나의 명칭에서 사용된 '방송 문화 100주년'은 12.5%의 선택을 받았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한국방송 100주년'에 앞서 우리나라 방송 역사의 기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건식 KBS 공영미디어연구소장은 “경성방송이 개국한 1927년을 방송 100년 역사의 시작점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고, 이에 따라 2027년을 ‘방송 100년’이 아니라 ‘방송문화 100년’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이번 논의를 통해 방송 기원에 대한 고민의 종지부를 찍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방송 역사의 기원 논란을 마무리 짓고, 보다 생산적인 논의의 장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방송 역사의 기원을 어디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결국 방송 역사를 바라보는 사관과 닿아있다. 윤상길 신한대 미디어언론학과 교수는 ‘한국방송 100년의 역사적 의미와 역사 서술’ 발제를 통해 “방송 100주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 방송 현실을 조금 더 포괄적으로 ‘상대화’ 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며 “현재와의 ‘비판적 거리두기’를 통해 모호해 보였던 것들을 명확히 식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방송 100주년 사업의 내실을 다지는 다양한 제언도 나왔다. 

김용희 동국대 교수는 “사회, 학문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다각적인 관점의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며 “지상파 중심의 행사가 아니라 폭넓게 문호를 개방하고, 논의 범주를 확대해 방송과 사회적 책무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준비해야한다”고 했다. 또 “방송의 역사를 영상, 텍스트, 이미지로 집대성 하는 이벤트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며 “의미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노력과 공공 방송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백미숙 서울대 교수는 “오늘날 한류 콘텐츠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내용을 채워줄 수 있는 사료가 각 방송사사 아카이브 속에 개별적으로 존재한다”며 “지금부터라도 자료를 수집하면 이를 통해 향후 한국방송 100년사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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