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의 ‘반성과 쇄신’, 언론이 만든 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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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개편 전 나온 여론조사 결과로 "지지율 반등" 해석한 언론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 뭉클 객원연구원] 숫자 자체에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대통령 취임 100일을 즈음하여 갖가지 정치적 이벤트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8월 17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했고 바로 다음날엔 대통령실 인사 개편을 발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주변 경호 강화를 직접 지시하며 ‘협치 행보’라는 반응도 이끌어냈다.

100일만에 뚜렷한 성과나 변화가 나타나기는 어려운데 사적 채용, 비선 논란 등 대통령실 스스로의 실책으로 무너진 지지율 때문에 이목은 더욱 집중됐다. 언론은 대통령의 취임 100일 행보를 지지율 반등 여부와 결부시키는 보도를 쏟아냈다. 공교롭게도 추락했던 지지율이 22일 보도된 여론조사에서 반등 기미를 보였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여론은 대통령 행보에 반응했을까, 아니면 그걸 다시 그려낸 언론 보도에 반응했을까? 만약 후자라면 의도했든 안 했든 언론이 만든 착시는 아닐까?

이런 의문은 보도들을 살펴볼 때 단지 상상에 그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문재인 정부 비판에 집중된 ‘성과 발표’와 사적 채용, 비선 논란, 김건희 여사 의혹, 경찰국·파업 강경 대응·취학 연령 조정 등에서 드러난 정책 실패와 같은 ‘불편한 질문’이 사라진 질의응답에 그쳤다.

국정 실패에 대한 성찰이나 사과 메시지도 없었다. 이렇듯 사라진 요소들을 언론이 짚어줘야 했으나 상당수의 보도가 대통령이 외친 ‘분골쇄신’을 받아쓰며 ‘달라진 윤 대통령의 반성과 쇄신 선언’으로 갈음해버렸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임한 대통령을“몸 낮추고 신중해진 윤 대통령”이라 규정하며 “키워드는 국민과 반성”이라 강조한 보도(한국경제 <몸 낮추고 신중해진 尹…"저부터 분골쇄신 하겠다">8.17)는 물론, 빗발치는 전면적 쇄신 요구를 “나부터 쇄신하겠다”라는 말로 일축한 대통령에게 “자기주도형 쇄신”이라는 신조어를 붙여준 보도까지 나왔다.(중앙일보 <화두는 “분골쇄신”…떠밀리지 않는 자기 주도형 쇄신에 방점>8.17)

18일 예고하고 21일 단행한 대통령실 인적 개편도 마찬가지다. 이관섭 전 한수원 사장을 신설한 정책기획수석에 임명, 홍보수석을 김은혜 전 의원으로 교체하는 수준에 그쳐 쇄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간의 국정 난맥상이 정책 조율과 홍보의 실패에만 기인한다는 엇나간 현실 인식도 엿보인다.

하지만 보도 분위기는 달랐다. 21일 개편이 발표된 직후 첫 보도를 낸 연합뉴스부터 “103일만 첫 쇄신, 정책컨트롤타워·입 보강한 윤 대통령”와 같은 제목의 보도를 쏟아냈다. 조금 민망했을까, “5년 간 계속 쇄신”이라는 대통령실의 립서비스에 “이제부터가 쇄신 시작” “수시 개편 기조 잡았다”와 같은 보도도 잇따랐다(부산일보 <‘이제부터가 시작’ 대통령실 인적 쇄신 본격 시동>8.22).

특히 주목해야 할 보도는 대통령실 개편과 지지율을 엮은 사례들이다. 이런 보도는 18일 대통령실의 개편 예고 당시부터 나오기 시작해 지지율 30%를 넘어선 여론조사 사례가 나온 22일 폭발했다. 이미 20일부터 “하락세 끊어낸 윤 대통령, 분골쇄신 맞춰 조직·인사개편까지 속도전”(<아시아경제> 8.20)과 같은 보도가 나왔고, 22일에는 “2주 연속 오른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의 “저부터 분골쇄신” 발언 및 18일 “인전쇄식 방안 발표”에 기인한다는 식의 보도(<尹 지지율, 2주 연속 오른 32.2%…"핵심 지지층 결집">한국경제, 8.22)가 잇따랐다. 

정말 그럴까? 22일 보도된 여론조사는 리얼미터가 16~19일 사이에 수행한 것인데 인적쇄신 발표가 나오기도 전부터 여론이 반응하여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렸다는 것인가? 그보다는 반성 없는 기자회견을 ‘반성’으로, 쇄신 없는 개편을 ‘쇄신’으로 보도한 언론의 영향이 크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권력과 여론조사를 향한 언론의 습관적 편향은 이렇게 착시현상을 만들어내곤 한다. 언론과 독자 모두 권력과 숫자 앞에서 더 신중해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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