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못잡는 ‘n번방 방지법’ 우려가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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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악랄해진 미성년 성착취 범죄...사적대화방은 'n번방 방지법' 적용 제외
KBS 보도 이후 불법촬영물 145개 '접속차단' 받았지만...시정요구 이행률은 두고봐야

미성년 성착취 사건을 연속보도하고 있는 KBS 뉴스9의 ‘성 착취범 은신처 된 ’텔레그램‘ 리포트 갈무리.
미성년 성착취 사건을 연속보도하고 있는 KBS 뉴스9의 ‘성 착취범 은신처 된 ’텔레그램‘ 리포트 갈무리.

[PD저널=박수선 엄재희 기자] 텔레그램 단체방에서 활개를 치는 미성년 성착취 범죄 앞에 ‘n번방 방지법’은 속수무책이었다. 성착취 범죄자들은 텔레그램의 높은 보안성 뒤에서 악랄한 범행 행각을 벌이고 있지만, 디지털성범죄를 막겠다고 만들어진 'n번방 방지법'은 아무런 힘을 못 쓰고 있다. 
  
이른바 ‘제2의 n번방 사건’은 지난 29일 KBS가 추적단 불꽃에서 활동한 원은지 얼룩소 에디터와 함께 미성년 성착취 영상이 다시 유포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KBS 보도에 따르면 텔레그램에서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착취 범행을 저지른 ‘엘’은 ‘추적단 불꽃’을 사칭해 피해자들을 유인했고, 현재 확인된 피해자만 6명이다. 

정부는 2020년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을 만들었지만, 재발 방지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텔레그램 단체방은 ‘n번방 방지법’ 적용 대상에서 처음부터 빠져있었다. 인터넷 사업자의 불법촬영물 등 유통방지 책임을 강화하는 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은 공개된 온라인 공간만 대상으로 한다. 1:1톡방이나 단체방을 적용 대상에 넣지 않은 이유는 검열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사적 대화방에 올라온 정보는 불법촬영물 필터링의 대상도 아니다. 앞서 방통위는 사적 대화방의 디지털성범죄물 유통 방지 대책으로 신고포상제와 경찰의 잠입수사 등을 제시했지만, 결과적으로 미성년 성착취 사건을 막지 못했다.     

디지털성범죄 등 불법 촬영물을 차단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통신심의 결과도 실효성이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다. 

방심위 디지털성범죄소위원회는 ‘제2 n번방’ 사건 보도가 나온 이후 피해가 추정되는 145개 촬영물에 대해 시정조치(접속차단) 결정을 내렸다. 방심위는 해외사업자가 시정조치를 받는 경우 망사업자에게 URL 차단을 요구하는데, 망사업자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하는 의무는 없다.

방심위 관계자는 “ISP업체에 차단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고 시정요구 이행률은 기간을 두고 점검을 한다”며 “업체마다 차이가 있어 언제쯤 차단이 완료되는지 말하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법무부, 여성가족부, 검찰청, 경찰청 등 5개 부처가 디지털성범죄 대응과 관련해 관계기관 협의회 1차 회의를 열고 논의를 시작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와 법무부, 여성가족부, 검찰청, 경찰청 등 5개 부처가 디지털성범죄 대응과 관련해 관계기관 협의회 1차 회의를 열고 논의를 시작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의 ‘잊혀질(잊힐) 권리’ 보장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정부는 1일 범부처 합동 회의를 갖고 범죄 대응에 나섰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와 법무부, 여성가족부, 검찰청, 경찰청 등 5개 부처는 이날 관계기관 협의회 1차 회의를 열고 논의를 시작했다. 

관계기관 협의회를 주재한 김재철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장은 “n번방 사건 이후 범정부 차원의 디지털성범죄 근절대책이 마련되어 각 부처별로 이를 시행해왔으나, 최근 발생한 일명 ‘엘 성착취물 범죄’ 같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디지털성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부처간 유기적인 협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내달 고위급 관계기관 협의회와 플랫폼 사업자까지 포괄하는 ‘민관협의회’도 구성·운영하면서 디지털성범죄 대응책을 강구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텔레그램에는 여전히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해외사업자인 텔레그램 단체방에서 벌어진 ‘엘 성착취물 범죄’ 사건은 ‘n번방 방지법’에 포섭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내에서 이미 많은 이용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텔레그램 서비스를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현재로서는 경찰 수사를 통해 개별적인 사건에 대응하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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