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느른'과 '산복빨래방', 미디어가 지역과 밀착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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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수의 방송인문학 ⑩]

<오징어게임>의 성공으로 한국 영상시장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콘텐츠 시장은 누가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킬러콘텐츠를 만드느냐에 따라 '빅 머니'가 결정되는 게임장이다. 독창적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창의적인 콘텐츠를 분석하는 작업도 의미가 적지 않다. 방송 콘텐츠 전문가인 홍경수 아주대 교수가 2~3주에 한 번 꼴로 인문학적 관점으로 콘텐츠를 분석·비평한다. -편집자 주
MBC '오느른'
 MBC 최별 PD의 유튜브 브이로그 채널로 출발한 지역 밀착형 콘텐츠 '오느른'

[PD저널=홍경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구독자 30만이 넘는 MBC 유튜브 채널 <오느른>이 올 7월 1일을 마지막으로 업로드를 멈췄다. 연출자 최별 PD가 본사 근무로 인해 김제에서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일을 본업으로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어른이 여러분, 오느른의 본캐 최별입니다..!:) 오느른 채널에 새로운 영상이 올라오진 않겠지만 오느른 채널은 이대로 계속 열려 있을 겁니다..! 그리고 종종 좋은 소식으로 글로, 라이브방송으로 때때로 찾아올게요..!”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2년간 총 조회수 37,026,508회를 기록했고, 영상마다 수백 개의 댓글을 남기게 했던 지역 밀착형 콘텐츠가 이대로 멈추는 것인가 우려하는 구독자들이 적지 않았다. 염려를 감안한 듯 후속 영상에는 ‘오느른이 전하는 인사’ ‘여길 떠나는 거냐구요’ ‘서울에서 김제까지 5도 2촌’ 등 앞으로의 행보를 예상케 하는 내용의 영상도 올라왔다. 구독자에게 인사를 하는 최별 PD의 아쉬움은 꼭꼭 눌러 담았음에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오느른>이 실천한 지역재생의 역할

<오느른>은 다양한 미덕을 가진 콘텐츠였다. 아무런 연고 없는 농촌마을에 방송사에 다니는 청년이 홀연히 나타나 빈집을 고치기 시작한다. 외지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쇠락해가고 있는 마을에 들어선 틈입자를 마을 주민들은 환대한다. 95세 된 옆집 할아버지와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고, 옆집 아주머니에게 찾아가 씩씩하게 밥을 청해 먹는 모습은 지방이 간절히 갈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젊음이라는 것을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구독자들도 한 젊은이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농촌마을에 들어와 활력을 불어넣는 모습을 응원했다. “참 좋은 일 하셨네요. 젊은이가 있는 곳은 밝은 에너지도 있는 거 같아요. 젊은이가, 농촌의 오느른이, 도시의 오느른이 함께 하는 복잡하면서도 푸근한 카페 되시길 바랍니다”, “지방에 빈집이 많다고 하는데 이렇게 활력 넘치는 곳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라에서 표창장 줘야겠어요.”

2년간 다양한 예술프로젝트를 열어 유키 구라모토가 신작로와 보리밭에서 피아노 공연을 하고, 선우예권이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마을 주민들을 그린 그림을 전시하는 행사도 벌였고, 심지어 펭수도 찾아왔다. 쌀농사를 함께 지어 쌀도 팔았고, 폐교를 활용해 마을호텔을 짓는 계획도 세웠다. 유튜브 채널 하나가 소멸위기에 놓인 마을에 힘을 불어넣는 모습은 정말 기적 같았다. 오랫동안 마을에 살며 국수가게를 연 주인 아주머니는 “맨날 동네사람들만 보다가 오느른 덕분에 타지 사람들 보니 기분이 좋고 살맛나는 세상이 되었다”고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유튜브 채널 하나가 죽어가는 마을을 ‘살맛나게’ 만들었다니, 지역 재생의 제대로 된 사례를 보는 것 같았다. 

최 PD는 본사 근무를 시작하면서도 다행스럽게 5도 2촌 생활을 하며 김제의 청년들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함께 일했던 김제 청년들과 협동조합 ‘오후’를 설립했고, 이들이 주축이 되어 지역 재생을 하는 것을 도운다는 것이다.

협동조합 ‘오후’의 직원인 김제 청년 이수정 씨와 통화를 통해 <오느른>이 중단된 이후의 죽산 소식을 들었다. “젊은이들이 김제에서 일하는 것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제가 본 죽산은 이렇게 예쁘지 않았거든요, 제가 색안경을 쓰고 본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저도 죽산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녀는 아버지의 고향인 죽산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젊은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이 신기했다고 밝혔다. 김제에 일자리가 없어서 서울 등 타지로 이주한다며, <오느른>과 협동조합 ‘오후’의 설립으로 일자리가 늘어나서 마을 활성화에 확실히 도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카페 외에도 커뮤니티 공간과 숙소를 운영할 직원도 더 필요해서 일자리가 늘어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오느른>이 시작된 후 많던 빈집도 이제는 구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오느른>의 마중물 역할로 지역 청년들의 활동이 본격화된 것을 감안하면, 지역 소멸의 위기를 어느 정도 늦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채널 브랜드로서 <오느른>은 어떻게 될까? 최별 PD는 “<오느른> 브랜드를 어떤 방향으로 리모델링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가을이면 종합 교양 채널로 로컬과의 연계성을 어떻게 가져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라고 계획을 터놓았다. <오느른>이 지역 청년들이 모여 지역을 새롭게 꾸릴 터전을 마련했고, MBC는 지역 재생의 성공적인 플랫폼을 일군 만큼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부산일보 기자들이 산동네에 차린 '산복빨래방'
부산일보 기자들이 산동네에 차린 '산복빨래방'

지역 밀착 미디어 <산복빨래방>, <심부름센터>

<오느른>이 업로드를 중단한 뒤 새로운 유튜브 콘텐츠가 화제에 올랐다. 부산일보의 젊은 기자들이 동네에 무료빨래방을 만들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프로젝트 <산복빨래방>이다. 젊은 청년 기자와 PD가 지역에 밀착하는 것을 목표로 고민하다 만든 기획이다.

무료 빨래방을 열어 빨래를 해주고, 대신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생각인데, 개업 첫날 많은 주민이 찾아와 대성황을 이뤘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동네, 젊은이들이 떠나고  활력이 떨어져가는 동네에 기자들이 찾아와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활력이 되었다. 기자들은 주민들과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나이 드신 주민들의 사진을 찍어드리기도 했다.

“‘산복빨래방은 부산 근현대사의 질곡을 담은 산복도로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들의 이야기를 듣는 공간입니다. 저희 자그마한 빨래방이 주민들의 '소통 공간'이자 '힐링 공간'이 되는 게 목표이자 바람입니다. 부산만이 가진 '부산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겠습니다.” 콘텐츠의 기획의도다.

영상의 구성이나 콘셉트를 생각하면 <산복빨래방>이 <오느른>의 또 다른 버전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동안 레거시 미디어가 귀기울여주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청년의 모습도 중첩된다. 

한편, 도영진 경남신문 기자는 오지 마을의 심부름꾼으로 일주일에 이틀 일한다. 경남 의령의 오지인 궁류면 운계2리 입사마을에서 농사일을 돕거나 노래방 기계를 고치고, 요리를 한다.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직원’이자 ‘마을기록꾼’을 자처한 도 기자의 방문만으로도 마을 주민들은 환호했다(최승영, 2022.8.16.). 지역 속으로 들어가는 미디어의 노력이 돋보이는 기획이다. <오느른>과 <산복빨래방>, <지역소멸 극복 심부름센터>는 청년과 지역과 미디어의 조화로운 결합의 좋은 사례다. 

경남신문이 지난 7월부터 시작한 지역소멸 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경남신문이 지난 7월부터 시작한 지역소멸 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지역소멸 대응기금의 효과적 활용 

한국 사회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위기다. 정부도 대응에 나서며 고향사랑 기부제를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고, 올해와 내년의 지역소멸 대응기금을 지자체의 투자계획 심의를 거쳐 총 2058억 원을 배분했다. <오느른>의 무대인 전북 김제시는 C등급으로 결정되어 140억을 배정받은데 비해, 전남 신안군을 포함한 4개 군은 A등급을 받고 210억 원 예산을 지원받았다. 김제시는 <오느른> 채널의 무대라는 자산을 가지고도 정부 지원금에서 아쉬운 성과를 얻었다. 

 지난 8월 26일 창원대에서 열린 부울경 언론학회 세미나는 ‘지역청년의 위기담론과 지역 방송을 통한 개선방향 모색’라는 주제로 열렸다. 필자는 발표를 통해 지역소멸 대응기금과 관련한 절차와 지원내용에 대해 제안했다. 청년을 포함한 지역 주민들이 직접 지역 재생 기획안을 지자체에 제출하고, 지자체는 이를 종합하여 행정부에 제출하는 방식과 더불어 지역소멸 대응기금 예산의 100분의 1이라도 지역친화적인 미디어 플랫폼을 활성화하는 데 배분하자는 내용이었다. 200억을 지원받는 지자체가 2억 원의 예산을 우수한 청년 미디어 플랫폼에 지원한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유튜브 채널 <오느른>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지금 지역 소멸 위기에 처한 곳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젊음과 상상력이라는 자원이다. 두  자원을 끌어들이는 마중물로서 미디어의 역할은 분명히 존재하며, 지역방송이 힘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행정부, 지자체, 방송사들이 머리를 맞대어 한국사회의 중요한 안건인 지역 소멸 위기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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