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효과·가해자 관점 투영된 범죄사건 명명 왜 안 바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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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한국언론학회‧MBC 공동주최 '저널리즘과 방송말' 세미나 개최

 

6일 한국언론학회와 MBC가 주최한 '저널리즘과 방송말' 세미나 현장 ⓒPD저널
6일 한국언론학회와 MBC가 주최한 '저널리즘과 방송말' 세미나 현장 ⓒPD저널

[PD저널=엄재희 기자] 낙인 효과를 초래하고 가해자 관점이 반영됐다는 비판이 꾸준하게 제기된 사건사고 명명은 왜 바뀌지 않을까.   

6일 한국언론학회와 MBC는 ‘저널리즘과 방송말’ 세미나를 열어 언론의 사건 사고 이름 짓기와 혐오표현의 실태를 진단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했다. 

'사건사고 보도에서 언론의 이름붙이기'를 발제한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방송은 범죄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의 이름, 성별, 연령대나 사건 발생 지역 위주로 별다른 고민없이 붙여왔다며 이로인해 지역 낙인 효과와 성차별 등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화성 연쇄살인사건' 사건명 때문에 화성 시민들은 큰 트라우마를 겪었다"면서 "최근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도 가해자인 전주환의 신원이 공개됐음에도 '전주환 살인 사건'으로 불리지 않는 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천안 여중생 폭행 사건'에서는 성별이 특정되어 들어가지만, 남학생 사이의 폭행인 경우 남중생 폭행 사건으로 하지 않는데 이런 부분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이 신당역 스토킹 사건을 '보복범죄'로 규정한 것과 관련해선 "보복범죄는 상대가 나에게 나쁜 일을 하고 그래서 보복한 것이라는 뜻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피해자가 주었다는 가해자의 관점이 들어있어서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라며 "보복범죄라는 표현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건식 MBC 공영미디어국장은 MBC의 'n번방' 사건 명명 회귀를 지적했다. 

MBC는 2020년 'n번방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 했을 때 '성 착취물 거래'라는 범죄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 '집단 성착취 영상 거래 사건'으로 바꿔 부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8월 'n번방' 사건과 유사한 범죄가 다시 등장하면서 MBC도 이를 '제2의 n번방' 사건으로 보도했다. 

박 국장은 "MBC에서 사건의 명명법 선언이 일시적 다짐으로 끝나고 말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며 "체계화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내부에서 정착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국장은 "언론에서 사건명을 지을 때 피해자는 보호하고 가해자를 드러내는 쪽으로 큰 전환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피해자를 부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피해자 보호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혐오표현 확산 방지를 위해 방송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1년 발표한 '온라인혐오표현 인식조사'에 따르면, 혐오표현을 접촉하게 되는 경로를 묻는 질문에 방송매체(56.4%)를 꼽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실제 시민들의 인식은 방송사를 통해서 차별과 혐오들이 유포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방송에서의 혐오표현을 어떻게 다룰까 여러가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방송에서 종종 혐오표현을 접할 수 있지만, 이를 규제하는 방송심의 규정에는 '혐오표현' 조항이 따로 없다. 

김 교수는 "방송 심의에서 혐오표현 논의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 비하' 등의 범주로 주로 심의한다"며 "방송심의 규정상 '혐오'의 정의가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차별과 고정관념이 방송을 통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특정 계층에 대한 부정적인 어휘와 성별 차이를 강조하는 단어를 대체하는 '포괄적 언어' 사용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예컨대 어미 모(母)자를 사용해 여성의 육아 책임만 품고 있는 '유모차' 대신 '유아차'로 바뀌 부르는 것이다. 

김 교수는 “도쿄올림픽 당시 ‘태극낭자’를 ‘태극전사’로 부르자는 요구가 나왔고, ‘여궁사’ 자막을 ‘궁사’로 바꿔 읽은 아나운서가 회자되는 등 시청자도 포괄적 언어에 관심을 보내고 있다”며 “'포괄적 언어'를 사용하면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도 없이’ 편견과 고정관념이 재생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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