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필수템 여권에 담긴 배제와 포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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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필독도서 57] '여권의 발명'

무비자 일본 관광이 2년 7개월만에 재개된 지난 10일 인청국제공항의 모습. ©뉴시스
무비자 일본 관광이 2년 7개월만에 재개된 지난 10일, 인천국제공항의 모습. ©뉴시스

[PD저널=오학준 SBS PD] 하마터면 신혼여행을 시작도 못 해보고 돌아갈 뻔했다. 입국 심사장에서 지문과 사진을 찍고 간단한 질문에 답변을 던지고 나서 돌아보니, 아내가 난감한 표정으로 심사장에 붙잡혀 있었다. 얼굴에 난 점 하나를 뺐는데, 그 때문에 사진과 다르다며 입국 승인이 안 났던 것이다. 실랑이 끝에 사무실까지 불려갔고 초조하게 기다리며 인터뷰까지 마쳤다. 한국계 미국인 공무원이 아니었다면 1시간만에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여권 사진과 주민등록증 사진이 똑같은데다, 한국에서 출국할 당시에도 안면 인식에 문제가 없었으니 이런 일이 벌어질 거란 생각은 못했다. 덕분에 그간 자연스럽게 하나의 과정으로 묶어 생각했던 입국, 출국, 그리고 귀환의 과정들을 분리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여권이라는 작은 도장 수첩에 대해 보여주는 모국과 외국의 미묘한 태도의 차이에 대해서도 함께.

이 일을 예견하고 챙겨간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에서 읽으려 가져간 책 중 하나가 존 토피의 <여권의 발명>이었다. 무질서한 사증 도장으로 꾸며진 표지와 –그 어떤 담당자도 새 여권의 첫 번째 장에 사증 도장을 찍어주는 일은 없고, 다른 도장의 테두리를 침범하지 않는 도장도 없다–당연해 보이는 여권의 ‘발명’(invention)을 제목으로 삼은 부분에 눈이 갔다. 여권을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하는 와중에도 책은 흥미로웠다.

존 토피의 '여권의 발명'
존 토피의 '여권의 발명'

해외 여행에 제약이 별로 없는 한국 여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종종 까먹지만, 이 국경 사이를 이동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잡은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한국만 해도 1980년대까지 해외여행에 허가가 필요했고, 1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여권이 국가 간의 이동에 필수적이고 보편적인 신분 증명서로 자리잡진 못했다. 이 남색 빛이 도는 작은 도장 수첩과 그 위에 찍히는 무질서한 사증(비자) 도장이 국제 관례가 되는 데에는 시간과 자원이 필요했다.

토피는 여권이 근대국가가 국민들의 합법적인 이동 수단을 독점하고 개인들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발명된 신원 확인 문서라고 본다. 예전부터 ‘통행증’이라는 것은 있었지만,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국가가 국경 너머의 이동을 통제하고 그 발행과 관리를 담당하는 ‘여권’ 개념이 등장했다. 프랑스 혁명에 반대하는 망명자들이 언제든지 국내로 잠입해 반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는 공포는 내부자와 외부자를 구별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자는 요청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통행증의 발급과 관리는 지역의 영주나 교구의 주교가 담당했다. 농노들은 땅에 매여 있었고, 그들의 존재가 곧 지역의 부를 의미했기 때문에 이들의 통행은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그들의 신분은 거주하는 지역에 의해 증명되었다.

근대 산업혁명은 농노들을 땅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대신 도시의 산업 노동자가 되도록 강제했다. 이 경제적인 이유는 ‘통행의 자유’라는 정치적인 외피를 쓰고 나타난다. 노동자들은 이제 자유롭게 국내를 이동할 수 있지만, 대신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자신들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을 구비해야 했다. 국가의 관료체계는 이들의 신원을 관리하고 수집하는 부서들을 확충한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국가의 ‘장악’이다.

근대 국민국가는 국민들에 대한 장악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국민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를 정교하게 다듬어 나갔다. 위조가 어렵고 발급 당국에 올바른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는 수단들이 개발되는 것도 이 때다. 동시에 국가간 교역의 규모가 확대되고 시장이 점차 서로 연결되면서 사람과 물자의 이동에 제한이 될만한 것들을 해소하고자 하는 자본의 요구도 거세졌다.

이런 야누스적 요구는 한 편으로는 위협이 될만한 이들을 외부로부터 통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움이 될만한 이들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입국장의 풍경으로 나타났다. 길게 늘어선 입국 심사장의 대기선과 그 옆으로 빠르게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자동 출입국 심사장이 병존하는 오늘날이 그 결과물이다.

국가가 국민을 인구로서 완전히 장악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이동은 역설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여권 체제의 확립은 국가의 승리 선언과도 같다. 파악 가능한 존재가 되었고 그들에게 보장할 수 있는 문서를 제공할 수 있으니, 이 문서를 소유한 사람은 언제든 어디로든 이동 가능한 준-외교사절이 된다. 뒤집어 말하면, 그를 증명할 신분 확인 문서가 없다면 그는 어느 곳으로도 이동하기 어렵다. 문서의 진위를 보장하는 국가가 없는 난민은, 여권 제도가 확고해지며 극도로 갈 곳을 잃어버렸다. 포섭과 배제의 수단으로서 여권의 이면에 그들이 있는 것이다. 

개천절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9월 30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에서 시민들이 탑승수속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뉴시스
개천절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9월 30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에서 시민들이 탑승수속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뉴시스

9·11 테러와 연이은 서유럽 각국에서의 테러가 여권 제도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았다. 테러는 국제적인 인구 이동을 제한하려는 국가의 움직임에 힘을 보탰다. 1차 대전 직전까지의 서유럽의 자유로운 분위기나, 2차 대전 이후 유럽 공동체와 함께 더불어 논의가 된 솅겐 협정처럼 국경 너머의 이동의 제약을 완화하려는 흐름들은 언제나 있었지만 전쟁과 테러는 다시금 국경의 담을 높였다.

여권에 담긴 정보들은 점차 고도화되고, 그렇기 때문에 소유한 자들과 소유하지 못한 자들의 격차는 더욱 높아졌다. 전쟁이 만들어내는 난민들은 또 다시 국경 바깥에서 이동의 자유를 상실한 채 유령처럼 떠돌아다닐 것이다. 지금도 우리의 국경 앞에, 그들이 있다.

열흘 넘는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입국장을 통과하며 한참을 늘어서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밀려들어가는 이들을 보며 여권 없는 여행은 가능할지, 그러려면 세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할지를 생각했다. “여권은 한 국가가 원치 않는 자들의 입국에 대처하는 제1의 방어선”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원치 않는 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한 이 남색의 작은 도장 수첩을 연신 쓰다듬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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