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국감’, 언론의 방조 혹은 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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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정책질의·'국감스타' 진짜 없었나
권성동·김문수 막말, 비판 대신 중계 택한 언론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제남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과 관련한 발언에 대해 신상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제남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과 관련한 발언에 대해 신상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윤석열 정부의 첫 국정감사에서 언론은 또 ‘막말 국감, 정쟁 국감’ 보도를 쏟아냈다.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 ‘막말 국정감사’를 언급한 보도가 10월 7일부터 17일까지 141건에 이르고 ‘정쟁 국정감사’는 197건에 달한다.

<국감스타·대안 없이 정쟁·막말 난무... '맹탕 국감' 현실화>(한국일보, 10.16)와 같은 보도는 제목만으로 우리 국회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매년 ‘맹탕·정쟁·막말 국감’만 반복된다는 게 사실일까? ‘정책 질의’와 ‘국감스타’는 진짜 없었을까, 아니면 언론이 보도를 안 한 걸까?

같은 기간,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디지털성범죄 대책 관련 질의를 한 10월 6일 법무부 국정감사 보도는 단 1건, 이탄희 의원이 평소에도 대통령실과 연락을 하느냐 따져 묻자 당황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화제가 된 10월 7일 국정감사 장면을 다룬 보도는 23건, 노동계 최대 현안인 ‘노란봉투법’을 두고 거센 공방이 벌어진 10월 5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보도는 18건이었다. 언론이 최소한 ‘막말 정쟁’이 아니었던 장면을 고루 보도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수치들이다. 

자극적인 장면만 취사 선택하는 언론의 습관에 따른 나비효과도 있다. 바로 ‘말’의 붕괴다. 이번 국정감사는 유난히 ‘말’의 수위도 높았는데 언론은 이를 방조 또는 유도했다. 관성적 중계 보도에 올라타기 위해 국회의원들은 질의가 아닌 일장 연설을 하고 그걸 또 언론이 확대·재생산하는 악순환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김제남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이 탈핵운동을 해왔고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됐다는 이유로 “혀 깨물고 죽지”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비판이 나오자 자신이라면 혀 깨물었다는 얘기라며 “선택적 환청”이라는 신조어까지 앞세웠다.

이 황망한 장면에 다수 언론은 놀랍게도 비판 대신 ‘중계’를 택했다. <권성동 “폭언 프레임 씌우는 민주당, 선택적 환청”>(중앙일보, 10.7)처럼 아예 권 의원 말만 받아쓰거나 <‘혀 깨물고 죽지’ 발언 논란…고민정 “또 듣기평가” vs 권성동 “선택적 환청”>(문화일보, 10.8)와 같이 싸움을 붙이는 보도가 지배적이었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 위원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라는 망언을 던졌고 여기서도 언론은 유사한 태도를 보였다. 민주당이 두 인물에 징계 및 고발을 추진하자 급기야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국감장은 개인의 양심을 시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상식을 가진 민주정당이 맞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며 ‘양심의 자유’와 ‘상식’을 거론했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종북 낙인을 찍고 ‘총살’을 운운하고, 사실상 ‘죽음’을 종용하며 다른 사람의 양심과 상식을 말살한 행위가 ‘양심’과 ‘상식’이라는 것이다. 전형적인 가해자 논리다.

한국경제 지난 14일자 사설.
한국경제 지난 14일자 사설.

‘양심’과 ‘상식’이라는 말만 무너진 게 아니다. 언론의 ‘막말 국감 중계’ 속에서 한국원자력안전재단과 경사노위 수장이 어떤 자리인지, ‘원자력 안전’과 ‘경제사회노동’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가 사라졌다.

그리 어려운 의미도 아니다. 한국원자력안전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이 공공기관의 목표가 “원자력 방사선의 예방적 안전관리 및 지원 통해 방사선 위해로부터 국민을 보호”라는 걸 쉽게 찾을 수 있다. 원자력 산업에 있어 독립적인 ‘레드팀’으로 작동해야 하는 기관이다. ‘탈핵운동’ 경력은 그 수장으로서 오히려 적합한 경력 아닐까?

‘경제사회노동’에서는 단연 ‘노란봉투법’이 노동자 생존권과 노동 3권의 관건으로 꼽히지만 10월 16일부터 17일까지 이틀간 ‘노란봉투법’이 언급된 보도는 21건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김대환 전 노동부장관의 “노란봉투법, 법치·노무현 정신 파괴 발상”이라는 발언을 받아쓴 게 6건이다. 반면 김문수 위원장의 ‘김일성주의자’ 발언은 같은 기간 여전히 96건이나 보도됐다. 독자들에게는 ‘노란봉투법’의 의미 대신, ‘법치 파괴’와 ‘김일성주의자’만 남는다. 

권성동, 김문수 두 사람처럼 꼭 막말을 하지 않아도 상황은 비슷하다. 10월 15일 카카오 먹통 사태로 국감에 김범수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증인으로 채택됐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 사태에 “독점이나 심한 과점 상태”에 대한 “국가적 대응”을 선언했고 언론도 ‘디지털 인프라를 국가가 관리해라’라고 외쳤다.

심지어 국가 관리가 안 된 책임을 ‘민주당 좌파 시민단체’로 돌리기도 했다.(<MB때부터 문제된 플랫폼 독과점, 매번 ‘자율규제’ 내밀며 피해갔다>조선일보, 10.18.) 그러나 불과 2년 전, 바로 그 ‘데이터센터 재난 국가 관리’를 도입하고자 했던 법안에 언론은 “정부가 관리감독 하면 안 된다”며 “제2의 민식이법”이라 조롱하기까지 했다.(<"민간 사찰, 국내외 업체 차별"… 말 많은 통신 3법>조선일보, 2020.5.15.) ‘데이터센터 재난’, ‘핵심 디지털 인프라’, 그에 대한 ‘국가 관리’라는 전문적이면서 중대한 ‘말’들을 언론이 정권에 따라 너무 쉽게 휘두르는 건 아닐까?

언론이 정치권과 함께 말을 ‘정치적으로 오염’시키고 있다. 정치인이 말의 의미를 망치고 제멋대로 바꿀 때, 그걸 바로잡는 게 언론이라는 상식을 기억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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