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보여준 산뜻한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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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우주와 모녀의 조합...일상을 판타지로 끌어올린 발랄한 시도 돋보여

극장가에 화제작으로 떠오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사진.
극장가 화제작으로 떠오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사진.

[PD저널=홍수정 영화평론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지금 극장가에서 가장 기상천외하고도 기발한 영화다. 멀티버스(다중우주)를 배경으로 스펙타클한 스토리와 다채로운 비주얼이 펼쳐진다. 그런데 이런 화려함과 반대로 이 영화가 다루는 감성은 꽤나 소박하고 가족적이다. 바로 '모녀 관계'. 그 익숙하고도 복잡미묘한 관계. 부딪치고 대치하고 잡고 도망치고 울다가 끌어안는 환장의 커플. 딸이자 엄마인 모든 여자들이 이미 느껴본 감정일 것이다.

그러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가장 낯선 세계와 가장 친숙한 세계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양면성이야말로 이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기상천외한 설정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이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는 큰 것과 작은 것, 낯선 것과 낯익은 것, 훌륭한 것과 한심한 것을 동시에 포용하는 특유의 양면성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스토리의 주인공은 미국에 이민 온 아시아계 중년 여성 에블린(양자경) 매일 똑같이 돌아가는 세탁기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 앞에 남편 웨이먼드(케 후이 콴)와 똑 닮았지만, 훨씬 강하고 똑똑한 웨이먼드가 나타난다. 그는 다른 다중세계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웨이먼드, 일명 알파 웨이먼드다.

그가 놀랄만한 진실을 말해준다. 우리는 '다중우주'에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다 새로운 우주가 탄생한다. A와 B 중에서 고민하다 A를 선택했다면, 어딘가에서는 B를 선택한 또 다른 내가 자신의 우주에서 살아간다('이휘재의 인생극장'이라는 옛 프로를 기억하는 형제·자매님들 있습니까? 그래, 결심했어!). 그런데 전 우주를 위협하는 어마무시한 빌런 '조부 투바키'가 지금 에블린을 찾고 있다. 이유는 모른다. 평범한 주부였던 에블린은 조부 투바키에게서 살아남아, 우주를 구할 수 있을까? 

에블린은 조부 투바키와 맞서기 위해 자신의 모든 우주를 동원한다. 그 무수한 우주들을 구경하는 것이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다. 그런데 사실 조부 투바키는, 다른 다중우주 속 에블린의 딸이다. 그러니까 사실 우주 최고 빌런은 에블린의 딸인 셈이다. 비록 심하게 흑화한 버전이긴 하지만. 거대한 스케일로 펼쳐지는 판타지 액션은 말 그대로 '모녀 싸움'인 셈이다.

우주와 모녀. 영화는 쉽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를 제법 잘 어울리게 섞어 놓는 데 성공한다. 아니, 어쩌면 저 두 가지는 원래부터 일맥상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딸, 두 여자들에게는 서로가 거대한 우주이니 말이다. 또 모녀의 싸움은 부자의 싸움과 달라서 정말 치열한 구석이 있다. 집이라는 우주를 뒤흔들고 붕괴시킬만한 일대 사건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사진.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사진.

영화를 연출한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들은 어떤 상황에 대해 느낀 감정을 하나의 공간으로 창조해내는 연출을 즐긴다. 그들은 전작 <스위스 아미 맨>(2016)에서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홀로 고민하는 남자의 외로운 처지를, 무인도에 표류된 채 시체와 대화하는 남자의 모습으로 표현한 바 있다. 그러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창조해낸 세계는 그들이 평소 모녀의 싸움을 보며 느꼈을 법한 감정을 구현해 낸 공간이라 짐작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모녀의 갈등은 우주 전쟁이 된다. 어찌보면 싱거운 농담 같은 이 설정을 영화는 유쾌하게 설득시킨다. 그 과정에서 모녀 관계는 우주로 확장되고, 전 우주는 두 여자에게 수렴한다. 이런 산뜻한 역설.

또 하나 영화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바로 '버스 점프'다. 이것은 다른 다중우주에 있는 또 다른 나와 접속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또 다른 내가 가진 능력을 그대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또 다른 내가 요리사라면 요리 기술을, 무술가라면 무술을 순식간에 익힐 수 있다. 

뭐야 이건 너무 좋잖아? 그런데 이 기술에도 제약이 있다. 다른 다중우주가 무한히 많아야 여러 기술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에블린이 특별한 이유가 등장한다. 그것은 그녀가 인생의 매 순간마다 후회를 남기는 선택을 무수히 해 온 최악의 에블린이기 때문이다. 모든 경우의 수에서 최악의 수만을 선택해 온 여자. 하지만 그 후회들 덕분에 그녀에게는 풍성한 다중우주가 있다. 빌려올 능력이 무궁무진하니, 성장할 가능성이 가장 큰 에블린인 셈이다. 순탄한 삶을 살아 온 사람에게는 없는 능력이다. 

실패는 성장을 위한 토양. 영화는 이 뻔한 소리를 세계의 규칙으로 흡수한다. 그리고 점점 강해지는 에블린을 보여준다. 실패가 성공과 접속하는 세계. 후회와 성장이 손을 잡는 기묘한 공간. 어쩌면 이것은 현실에서 에블린처럼 숨죽여 살아가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영화의 은근한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 영화가 양면성을 보인 이유. 낯선 것과 익숙한 것들을 저글링한 의도. 그것은 일상 속 우리를 판타지로 끌어올리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엄마와의 말다툼이 우주 전쟁으로, 쓰디쓴 후회가 버스 점프로 이어지는 이곳에서 우리의 일상은 판타지가 된다. 비록 현실에서는 후회는 영영 후회로 남고, 엄마와의 싸움은 등짝 스매싱으로 처참히 끝난다 하더라도 말이다. 한 손에 일상을, 다른 한 손에 판타지를 들고 무협을 선보이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그 발랄한 시도가 우리를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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