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비극 전시하고, '범인 색출' 편승한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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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선정적·추측성 보도 줄이어...2차 가해 우려
KBS "자극적인 화면 원칙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한 이튿날인 30일 오전 서울 순천향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한 이튿날인 30일 오전 서울 순천향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임경호 기자] 이태원 참사 보도에서 선정적 추측성 보도 관행이 재발하면서 언론계의 자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5개 언론단체가 ‘재난보도준칙’을 재정한 지 8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지켜지지 않는다는 우려들과 함께다.

이번 참사는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수많은 인파들이 이태원을 방문하면서 발생했다. 폭 5미터 내외의 경사로에 수많은 인원이 밀집하면서 통행에 어려움이 생겼고,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이 군중 사이에 끼이거나 인파 속에 깔리면서 154명이 죽고 149명이 다치는 인명피해(31일 오전 기준)가 발생했다.

29일 밤부터 쏟아진 속보에서 참혹한 현장의 모습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겨레신문>은 피해신고 2시간이 지난 30일 오전 12시 40분경 ‘[현장] 이태원 도로 곳곳서 심폐소생술…악몽이 된 핼러윈’ 기사를 통해 사람들이 깔려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트위터 갈무리)을 얼굴 부위만 모자이크 처리한 채 그대로 게재했다.

<매일경제>는 피해신고 3시간이 지난 시점에 사고 원인과 호송 환자들의 상태(사망) 등을 추정해서 작성한 ‘압사당한 친구에 아비규환…이태원 핼러윈의 비극’ 기사를 송고하기도 했다. 해당 기사에는 모포로 덮인 시신 사진을 모자이크한 <연합뉴스>의 사진이 게재됐다.

30일 새벽부터 특보를 전한 방송 뉴스에서도 심폐소생술을 하는 모습은 반복적으로 재생됐다. 

재난보도준칙에서 자극적인 보도(제2장 제15조 선정적 보도 지양)와 확인되지 않은 정보(제2장 제13조 유언비어 방지, 제14조 단편적인 정보의 보도)를 자제하고 있지만 대형 참사가 발생하자 또다시 답습되고 있는 부분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사고 원인에 대해서도 섣부른 추측이 난무했다. 

MBC는 뉴스특보에서 ‘단순 압사 사고가 아니라 약이 돌았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민 인터뷰를 내보냈다. ‘유명 BJ 방문으로 인파가 몰렸다’는 보도가 이어지자 지목된 BJ가 사실이 아니라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사고 당시 목격자와 현장 영상을 근거로 범인을 색출하려는 여론에 편승하는 보도도 줄을 잇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보도 모니터 보고서에서 "사건 초기 많은 정보가 뒤섞인 상황에서 언론의 신중하지 못한 보도는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며 "특히 혼란스러운 현장에서 단편적인 정보만 갖고 누군가를 특정해 사고의 원인을 찾는 듯한 보도는 시민들의 슬픔과 분노의 방향을 잘못 유도해 사건 피해자들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거나 무고한 사람을 주범으로 몰아갈 수 있어 대단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2차 피해가 우려되는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언론계 안팎에서 나온다. 

한국기자협회는 30일 “일부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와 확인되지 않은 SNS 게시물이 넘쳐나면서 수습 현장에 혼란을 주고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 2차 피해를 가하고 있다”며 재난보도준칙 준수를 회원사에 요청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31일 성명을 통해 “무차별적 인용, 확인 없는 추측성 보도는 참사 현장에 발붙여서는 안 된다”며 재난 상황에서의 언론 윤리 준수를 강조했다.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KBS는 "자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화면을 원칙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KBS 보도본부는 31일 “이태원 참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31일 오후 4시 뉴스 원고에서 사고 당시 상황을 직접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엄격하게 사고 현장 영상을 사용하기로 했다”며 "이런 원칙을 31일 오후 4시 뉴스특보부터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심미선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언론이 세간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개인 신상과 감정적인 문제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애도기간이라고 문제를 들추지 말라는 프레임이 있는데, 사고가 왜 발생했는지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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