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진심인 PD의 게임 다큐 탄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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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EBS ‘다큐프라임-게임에 진심인 편’

지난 10월 10일부터 12일까지 3부작으로 방송된 EBS '다큐프라임-게임에 진심인 편' 예고화면 갈무리.
지난 10월 10일부터 12일까지 3부작으로 방송된 EBS '다큐프라임-게임에 진심인 편' 예고화면 갈무리.

[PD저널=박진우 EBS PD] 방송이 나가기 직전엔 사람이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초라한 몰골로 벌써 며칠을 회사에서 살았는지도 모르는 그때, 인터넷 커뮤니티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는 제보를 들었다. “범상치않은 EBS 다큐 3부작 제목” 우리 프로그램의 예고에 들어간 부제가 담긴 이미지였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삽시간에 다른 커뮤니티로 퍼져나가 몇 시간 만에 조회수가 10만이 넘고, 댓글도 수백 개가 달렸다. 유튜브 공식 채널에 올라간 예고도 다른 예고보다 조회수가 100배 가까이 높았다. 다행이었다. 내가 보고 싶은 다큐가, 다행히 남도 보고 싶은 다큐가 되었다는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게임에 진심인 편이었다. 어린 시절, 코묻은 돈이 아깝지 않았다. 차곡차곡 모아온 용돈을 꺼내 동네 문방구에서 8천원짜리 게임을 사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거의 생일만큼이나 기뻤다. 그런 97년의 어느 날들을 거치고 나서 어느새 잠을 한 두 시간 줄여가며 게임을 하는 고3으로 자랐다. 대학을 졸업할 땐 ‘디지털 게임의 미학적 가능성’을 주제로 졸업논문을 써내고, 창가로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동이 틀 때까지 게임을 하다 보면 모든 걸 잊거나 위로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게임에 대해 말해지는 것들은 어딘가 늘 부족하게 느껴졌다. ‘무언가로서의 게임’으로만 보는 기존의 이야기들은 게임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중독으로서의 게임, 산업으로서의 게임, 스포츠로서의 게임. 모두 게임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 사람의 게이머로 그 담론들은 아쉬운 구석이 많았다.

게임이 대체 뭐길래 중독이라는 거지? 게임의 무엇이 우리를 사로잡길래 이 산업이 이토록 거대해졌을까? 게임은 스포츠이기만 할까? 게임 그 자체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런 질문들에 대한 본질적인 답을 다큐에 담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아주 오래된 꿈이었다. 

EBS '게임에 진심인 편' 방송 화면 갈무리.
EBS '게임에 진심인 편' 1부 방송 화면 갈무리.

<다큐프라임> 공모 기획안 피칭을 할 때, 입사 면접 때 입었던 밝은 갈색의 코듀로이 자켓을 모처럼 꺼내 입었다. 신입으로 입사하던 시절, ‘이 회사에서 딱 한 편의 작품을 만든다면 게임을 소재로 다큐프라임 3부작을 만들겠다’는 초심을 다시 한번 떠올리기 위해서였다. 게임이 소재라면 자신이 있었다. 한때 게임은 나의 전부였고 나는 게임에 진심이니까. 나와 같은 시기를 거친 시청자들, 게임에서 내가 보고 겪은 것과 비슷한 것을 접한 사람들이 내 프로그램에 환호해주기를 바라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기엔 내용만큼이나 형식도 중요했다. 방송가에는 MZ세대는 다큐를 보지 않는다는 미신이 있다. 그러나 MZ가 다큐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MZ가 볼만한 다큐멘터리를 지상파가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그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스타일과 톤앤매너가 핵심이라고 봤다. 쉽고 재미있지만 깊이를 놓지 않는 다큐멘터리. 그를 위해서 내용과 형식의 얼개를 촘촘하게 설계해 나갔다. 내용적으로는 게임 그 자체, 즉 게임의 의미와 가치를 다루고, 장르적으로는 여지껏 다큐멘터리에서 시도되지 않은 방식에 도전해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바로 게임의 요소와 유머로 대변되는 인터넷 문화, 밈(디지털 유행 코드) 등을 제대로 다큐멘터리에 녹여내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밈들을 잔뜩 배치하고, 게임 화면을 인서트로 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내러티브의 주축이 되게끔 실제 게임 화면 안에서 서사가 이뤄지게끔 설계했다. 게임 속 세상을 탈출하기 위해 애쓰는 게임 개발자의 여정을 통해 게임을 알아본다는 1부 <내 장례식에 틀어줘>의 시놉시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에 오른 1부의 오프닝은 ‘생전 고인의 X쩌는 플레이를 감상하시겠습니다’는 밈에서 따왔다. 게임에서의 성취가 장례식에 틀 만큼 의미가 깊고, ‘성취감이야말로 게임을 다른 매체와 구분하는 결정적인 지점‘이라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포함하고 있을뿐더러 그 자체로 유머러스하기에 이를 영상화 하는 것이 최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게임계를 상징하는 인물로 부족함이 없는 전용준 캐스터의 캐스팅과 B급 감성의 합성 역시 수없이 바이럴 되었다. 

디테일한 부분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자 하였다. 2부 <너의 게임은。>은 이미 제목에서부터 MZ라는 타겟에 적중했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을 패러디한 제목에서, 사람들은 고리점(。)의 디테일함에 열광했다.

EBS '다큐프라임-게임에 진심인 편' 예고화면 갈무리.
EBS '다큐프라임-게임에 진심인 편' 예고화면 갈무리.

‘게임과 예술’이라는 주제를 다룬 3부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에서는 인기 스트리머 ‘침착맨’을 활용하여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 컨셉을 그대로 가져왔다. 여기서도 디테일이 생명이었다. 화면 오른쪽에 끊임없이 생성되는 채팅에는 특히 심혈을 기울였다. 실제 침착맨의 방송에 가져다 놓아도 위화감이 없을 만한 채팅 내용을 자막으로 쓰기 위해 무수한 자료조사의 과정에서 거의 ‘침붕쿤(침착맨 방송의 시청자)’ 소리를 들을 수준까지 하나하나 기존 침착맨 방송의 채팅들을 챙겨보았다.

방송이 나가고 난 후, 유튜브에 올라온 댓글을 하나씩 모두 정독하는 것이 일상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였다. ‘수신료의 가치’를 언급해준 많은 분들에게서 큰 힘을 얻었다. ‘이 다큐를 조금만 더 일찍 봤더라면, 다큐 제작자가 되는 꿈을 꾸었을 것 같다’는 말은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게임키즈로 가지고 있던 본격적인 게임 담론에 대한 갈증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이, 누군가의 목마름을 해소해준 것 같아 기뻤다.

기회가 된다면 여전히 게임 다큐멘터리를 더 만들어보고 싶다. 3부작에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게임에 대한 진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라는 들뢰즈의 말을 잠시 빌린다면, 언젠가 세상은 게임이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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