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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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종영한 tvN 드라마 ‘블라인드’, '형제복지원 사건'과 진상규명의 중요성

지난 5일 종영한 tvN '블라인드'
지난 5일 종영한 tvN '블라인드'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그런데 피해자가 왜 그런 비극을 맞이하게 됐는가를 추적하다보니 과거 한 사건의 불편한 진실이 조금씩 들춰진다. 바로 ‘희망복지원’ 사건이다. 아이들을 납치해 감금하고 강제노동을 시키며 상습적인 폭력과 성폭력까지 저질렀던 사건. 심지어 죽은 아이들은 아무렇게나 암매장됐고, 때론 해부실습용으로 쓰이기까지 했다. 종영한 tvN 드라마 <블라인드>는 이처럼 들쳐보기 힘겨울 정도로 잔혹한 범죄스릴러를 보여준다. 

그저 드라마일 뿐이라면 좋겠지만 우리는 불행하게도 ‘희망복지원’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떠올린다. 부랑인들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이들을 감금하고 가혹행위를 했던 인권유린 사건. 1975년부터 1988년까지 무려 657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형제복지원’을 떠올리게 하는데다 특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블라인드>는 스릴러라고 해도 쉬운 작품은 아니다. 대중성의 차원에서도, 또 아동 학대를 스토리상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난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라인드>는 끝까지 흔들림 없이 사건의 전말을 훑어나간다.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한 이들은 희망복지원의 생존자들이었고, 살인은 복수극이었다. 물론 그 과정은 범죄 스릴러 특유의 반전의 반전을 이어간다. 처음에는 형사 류성준(옥택연)이 의심스런 행동으로 용의자처럼 비치지만, 금세 이야기는 어려서 입양되어 들어온 그의 형 류성훈(하석진)이 범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도 전말은 아니다. 마지막 즈음에 이르면 생존자들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고 이것이 통제불능 상태로 흘러갔다는 것도 밝혀진다.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가 갖는 긴장감을 이 드라마는 충실히 보여준다. 뒷부분에 가면 범죄스릴러는 순식간에 사회극으로 변하면서 진짜 정체를 드러낸다. 살인에는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희망복지원의 진실을 만천하에 알리려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지난 5일 종영한 tvN '블라인드'
지난 5일 종영한 tvN '블라인드'

이런 진실은 끔찍하면서도 너무나 불편하다. 괴물들이나 저지를 법한 일들을 너무나 평범한 이들이 자행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들 모두 누군가의 좋은 아빠이자 남편이었지만, 희망복지원에서는 아이들에게 폭력을 저지르거나 이를 남 일이라 치부하며 묵인하고 방조했다.

평범한 식품회사 직원이 빼먹은 부식비로 인해 복지원의 아이들은 배를 곯아야 했고, 관리를 해야 할 공무원의 태만 혹은 부패는 아이들을 상습적인 폭력과 강제노동에 쓰러지게 했다. 아이들을 치료해줘야 했던 간호사는 폭력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두려워 눈감았고, 이런 사실을 폭로했어야 할 방송사 PD는 돈을 받고 방송을 접어버렸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희망복지원은 갑자기 폐쇄됐고 거기 수용됐던 아동들은 해외로 입양되는 등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그렇게 모든 게 덮여졌다. 가해자들은 죗값을 그 누구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살아남은 피해자와 유족들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지금껏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또 사회적 편견 때문에 드러내놓고 과거를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블라인드>가 그리고 있는 희망복지원 이야기는 국가가 저지른 폭력에 희생된 피해자들이나 콘트롤타워 부재로 벌어진 갖가지 참사의 희생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뒤늦게 진상규명이 된 사안들도 존재하지만 여전히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이 많다. 

<블라인드>가 범죄스릴러라는 장르적 틀을 가져와 던진 메시지는 이러한 국가적 비극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해야 할 첫걸음이 바로 ‘진상 규명’이라는 사실이다. 불편해도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류성준은 결국 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다. 자신의 부모가 모두 이 희망복지원 사건에 깊게 연루되었다는 걸 찾아내고 그들의 손에 직접 수갑을 채운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또 다시 벌어진 이태원 참사를 마주하게 된 우리로서는 <블라인드>가 던지는 메시지가 무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고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고쳐나가는 일은 결국 불편하더라도 그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사태를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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